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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맞히면 살릴 수 있는데, 왜 살처분만 고집하나”

중앙선데이 2021.01.16 00:33 720호 5면 지면보기

닭·오리 조류인플루엔자(AI) 비상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15일 기준 AI가 발생한 가금류 농장은 60곳이다. 이 중 39곳이 지난해 12월 나타났다. 앞서 11월 전북 정읍시 육용 오리 농가에서 올겨울 처음으로 고병원성(H5N8형) AI가 확인되면서 2년 8개월 만에 국내에서 재유행하는 모습이다. 이날에도 충남 홍성과 경기 안성 농장에 대한 AI 확진 판정이 나왔다. 경남 하동에서는 의심사례가 발생해 반경 3㎞ 내에서 사육 중이던 33농가 4만9000여 마리에 대해 긴급 매몰을 했다.
 

윤종웅 한국가금수의사회 회장
항원뱅크서 몇 시간 내 백신 생산
비용 절감, 바이러스 60~80% 차단

반경 3㎞ 이내 몰살은 자원 낭비
백신 접종 - 살처분 병행 고려해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333개 농가에서 닭, 오리 등 1897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사람뿐만 아니라 가축도 전염병 위기에 놓인 것이다.
 
윤종웅 한국가금수의사회 회장

윤종웅 한국가금수의사회 회장

사실상 매년 겨울철마다 AI 감염이 반복되면서 살처분 중심의 기존 방역 대신 백신 정책 도입으로 질병 예방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윤종웅(사진) 한국가금수의사회 회장은 “긴급 백신이나 예방 백신이 60~ 80% 이상 효과가 있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연구와 해외 사례를 통해 입증됐다”며 “백신을 접종해 살처분을 최소화할 수 있는데도 살처분 정책만 고수하는 건 편의적인 조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규정한 긴급행동지침에 따르면 AI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바이러스 발생 농가뿐만 아니라 반경 3㎞ 이내 농장의 가축도 ‘예방적 살처분’ 대상에 속한다. 1~2년에 한 번씩 AI가 유행할 때마다 수백만 마리의 닭과 오리가 떼죽음을 당하는 이유다.
 
윤 회장은 지역 농가에서 근무하며 농장주와 함께 가축들의 죽음을 지켜본 가금류 전문 수의사다. 그는 수년째 윤리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방역과 경제적 측면에서도 백신 활용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AI 백신 개발이 기술적으로 어렵나.
“전혀 그렇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는 항원뱅크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항원뱅크를 통하면 몇 시간 만에 긴급 백신을 생산할 수 있다. 그걸 가지고 AI 발생 농가 주변의 농가 가축들에게 주입하면 된다. 그럼 AI 발생 농가 인근에 위치한다는 이유만으로 같이 살처분당하는 일은 막을 수 있다.”
 
항원뱅크가 무엇인가.
“쉽게 말해 냉장 보관된 백신같은 개념이다. 이걸 필요에 따라 보조제를 넣어 백신 완제품을 만드는 방법이다. 생산 비용도 굉장히 저렴하다. 마리당 200원꼴이다. 반면에 살처분은 마리당 1만~1만 5000원 정도 투입되고 보상비까지 고려하면 어마어마하다. 백신 통해 방역 예산도 엄청나게 줄일 수 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백신은 얼마나 효과가 있나.
“여러 논문 사례를 살펴보면 백신과 유행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타입이 일치할 경우 100% 닭들을 살릴 수 있다. 실제 2009년 국내에 저병원성 AI가 유행했을 당시 일부 양계 농가가 백신 효과를 경험했다. 지금 퍼지고 있는 고병원성 AI 역시 백신으로 일정 수준 이상 방어할 수 있다고 본다.”
 
당국이 백신 활용을 주저하는 이유는.
“2003년 국내에서 AI가 최초 발견됐을 때 바이러스 숙주를 박멸하기 위해 수백만 마리를 긴급 살처분 했다. 그 방식이 10년 넘게 이뤄지고 있는 것뿐이다. 백신을 우려하는 쪽에선 육계·산란계·오리 등 종류가 많고 변이 바이러스 때문에 ‘맞춤 백신’이 어려워 백신 효과를 걱정한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말이다. 그렇다고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무조건 안 된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백신 도입하면 살처분은 안 해도 되나.
“아니다. 최소한의 살처분은 불가피하다. 백신 효과가 나타나려면 접종 후 2~3주는 지나야 한다. 하지만 육계는 30일 키우고 출하하기 때문에 백신을 맞혀도 효과를 보기가 어렵다. 오리 역시 품종 특성상 백신 접종만으로 질병 예방이 충분치 않다. 그렇다면 축종과 상황에 따라 백신만 쓸 것인지, 백신과 살처분을 병행할지, 휴지기를 통해 방역할지 등 다양한 방역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 일괄 ‘반경 3㎞ 이내 매몰’ 방식은 생명을 불필요하게 희생할 뿐이다.”
 
수의사가 수백만 마리에게 일일이 백신을 놔줘야 하는가.
“수의사 1명이 몇만 마리에게 백신 주사 놓는 건 불가능하다. 지금 살처분팀을 운영하듯이 백신팀을 마련하면 된다. 지자체마다 백신팀을 구성해 접종에 나서면 된다. 대신 지역 수의사들은 백신 제품을 관리하고 사후 효과에 대해 평가해야 한다. 모니터링이 관건인 만큼 주기적으로 예찰 검사를 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인체에 대한 위험성은.
“AI는 호흡기 바이러스기 때문에 닭과 계란을 섭취한다고 감염되는 구조가 아니다. 바이러스가 발생하는 사육 환경에 노출될 때 감염된 사례가 있을 뿐이다. 설령 감염되더라도 치사율이 굉장히 낮다. 해외도 극히 일부 사례로 꼽힌다. 인체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백신 투여가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근본적으로 백신은 바이러스를 완전히 불활성화 만든다.”
 
김나윤 기자 kim.na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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