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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일군 어부처럼 고난 극복, 화사한 ‘바깥 세상’ 꿈꾸다

중앙선데이 2021.01.16 00:21 720호 22면 지면보기

시로 읽는 세상 

지난 한 해 역병 시대의 삶을 응축한 열쇠 말 중 하나는 ‘거리’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거리라는 게 점거하고 나니까, 별안간 삶이 메마르고 막막해졌다. 가족 말고는 만나는 이들이 소수의 직장 동료들과 몇몇 동네 주민들로 줄어들었다. 그것도 띄엄띄엄, 그리고 잠깐씩이었다. 대면은 최소화되고 거리는 최대화되었다. ‘사회적 거리’는 단절과 고통의 풍경을 일상 곳곳에 심어 놓았다.
  

김종삼의 ‘어부’ 김광규의 ‘밤눈’
코로나 탓 ‘안팎’ 황량하고 위축
메마르고 막막한 삶의 고통 지속

거리두기 단절의 아픔 이겨내고
‘갔다 올게’가 일상이 되는 삶 희망

알렉산더 페트로프 감독의 러시아 애니메이션 ‘노인과 바다’의 한 장면. [중앙포토]

알렉산더 페트로프 감독의 러시아 애니메이션 ‘노인과 바다’의 한 장면. [중앙포토]

#그래서 또 다른 열쇠 말로 ‘안팎’이란 말을 떠올리게 된다. 다양한 강도의 집합 금지 명령과 영업 제한 조치로 ‘바깥’은 황량해지고 ‘안’은 위축되었다. 일하러 나가서 공치고, 공치고 들어와 집안에 갇혔다. 안과 바깥의 지속적인 차단 가운데 집은 우울한 방황의 장소일 때가 많았다. 방역과 경제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두 과제 사이에서 ‘거리 두기’가 단계를 바꿔 가며 시행되고, 집과 바깥의 경계가 무시로 요동치는 걸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그 삶이 새해에도 고강도로 계속된다.
 
전염병 대유행 시절에 바깥은 모두 어렵고 힘들다. 더 다급한 바깥들도 있다. “배달을 중단하라. 지금 곳곳에서 라이더들이 넘어지고 있다” 같은 말을 뉴스에서 읽을 때, ‘중대 재해 기업 처벌법’ 제정 촉구 농성장에서 타전되는, “‘갔다 올게’라는 일상이 가능한 삶을 위해”란 말을 들을 때, 불에 덴 듯 ‘바깥’을 떠올리게 된다. TV와 SNS로 쉼 없이 바깥이 주입되지만, 비대면의 일상은 상황의 절박함을 때로 잊게 만드는 것 같다.
 
우연히 손에 잡혀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어 보았다. 험악한 바깥에 나갔다가 기진해서 돌아오는 사람의 이야기다. 쿠바 아바나 항의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84일 동안 바다에서 한 마리의 물고기도 못 잡다가, 85일 째에 먼 바다로 나가 이틀간의 사투 끝에 거대한 청새치를 포획한다. 하지만 곧 상어 떼의 습격을 받는다. 그는 뼈만 남은 물고기를 끌고 빈손으로 돌아와 지쳐 쓰러진다.
 
소설은 노인의 불굴의 의지와 영웅적인 응전을 묘사한다. 더불어 사람과 물고기와 상어 떼의 투쟁이 벌어지는 ‘바다=자연’의 무대 위에서,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선 성찰의 일면을 내비치기도 한다. 환희는 곧 실망으로 바뀌지만, 작가는 이 인물을 통해 승리에도 패배에도 허무에도 젖지 않는, 원숙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 준다.
  
 바닷가에 매어 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거린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머얼리 노를 저어 나가서
 헤밍웨이의 바다의 노인이 되어서
 중얼거리려고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김종삼, ‘어부’
 
이 시는 바로 『노인과 바다』의 인유이자 패러디인데, “고깃배”를 의인화해 어부인 화자의 소박한 인생관을 들려준다. 시련 속에도 결국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소설 내용을 참고해 읽으면, “살아온 기적”과 “살아갈 기적” 사이엔 84일간의 허탕과 허탈과 목마름이 고여 있다고 해야겠다. 산티아고는 삶의 85일째 날을 “행운”이라 말하고, 김종삼은 “기적”이라고 강조해 말한다.
 
행운보다 기적이 더 센 말인 만큼이나, 이 시의 화자가 좀 더 천진한 목소릴 낸다고 해야 할까. 산티아고는 전력을 다한 끝에 커다란 행운을 손에 쥐었다. 그러나 늙고 쇠약한 그는 길이 5.5m에 무게가 700kg이나 되는 청새치를 끌어 올릴 수가 없어 뱃전에 묶어야 했다. 그래서 상어들에게 행운을 빼앗기고, “물고기였던 물고기”만을 데리고 포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한국 시인 김종삼은 저 망망대해 위의 사투를 잘 알면서도, 제 마음을 작은 배에 실어 “화사한 날”을 꿈꿔 보려 한다. 기적 같은 희망이 ‘바깥’에 대한 그의 태도였다. 험난하고 궁핍한 시대를 살았던 시인의 마음을 집‘안’의 침울하고 게으른 내가 이해할 수 있을까. 천진해서 숙연한 이 시의 목소리를 다 흉내내긴 어려울 것 같다. 시인은 시집 도처에서 이런 생각을, 그러나 깊은 숙고 끝에 내놓는다.
  
 내가 재벌이라면
 메마른
 양로원 뜰마다
 고아원 뜰마다 푸르게 하리니
 참담한 나날을 사는 그 사람들을
 눈물 지우는 어린것들을
 이끌어 주리니
 슬기로움을 안겨 주리니
 기쁨 주리니.
 -김종삼, ‘내가 재벌이라면’
 
이런 식이다. 그의 시의 중핵 부위에는 얼핏 보면 어린아이 생각 같은 말들이 놓여 있다. 그런데 그저 웃을 수 없는 것은, “재벌”이 물질의 부자만이 아니라 마음의 부자를 뜻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욕심 없는 마음의 재벌이 꼭 되어서, 세상 후미진 곳의 가난과 고통들에게 이끎과 지혜와 기쁨을 주고 싶다고 말하는 데 이 시의 감동이 있다. 시는 때로 바보의 말 같다. 이런 사례들은 드물지 않다.
  
 겨울밤
 노천 역에서
 전동차를 기다리며 우리는
 서로의 집이 되고 싶었다
 안으로 들어가
 온갖 부끄러움 감출 수 있는
 따스한 방이 되고 싶었다
 눈이 내려도
 바람이 불어도
 날이 밝을 때까지 우리는
 서로의 바깥이 되고 싶었다
 -김광규, ‘밤눈’
 
연인이거나 벗일 두 사람은 눈 내리는 노천 역에서 정처가 없다. 사랑과 연민을 지녔음에도 함께 깃들 곳이 마땅치 않다. “집”과 “방”은 그래서 마음의 품이고 상상의 둥지인데, 추운 바깥에서 떨면서도 이들은 서로를 위해 한사코 “바깥”이 되려 한다. 바깥이 없으면 “안”도 없다는 걸 아는, “따스한” 바보들이다.
 
“행운”이 불운으로 바뀌어도 “기적” 같은 희망을 품고, 바깥을 지키려는 목소리들을 응원하게 된다. 바깥이 있어야 안이 있다. 우리 모두가 바깥에 목숨을 걸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갔다 올게.” 바깥에 나갔다가 무사히 집에 돌아오고 싶은 삶은, 재해로 자식을 잃은 부모의 외침만이 아니라 모두의 바람이 되었다. 역병과 한파 속에서, 바깥을 안전하게 지켜내야 한다.
 
이영광 시인·고려대 교수
고려대 국문과 대학원에서 서정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 계간 문예중앙으로 등단했다. 서정성과 불온함이 공존하는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시집 『끝없는 사람』 『깨끗하게 더러워지지 않는다』 등을 냈다. 고려대 미디어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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