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북 순창 강천산은 높은 산은 아니지만 산세가 수려하다. 단풍철 못지 않게 한겨울 눈 덮인 풍광도 근사하다. 약 20㎝의 적설량을 기록한 지난 7일 강천산은 수묵화 한 폭 같았다. 현수교 전망대에서 전남 담양 산성산 쪽을 바라본 모습이다.
마흔 돌 맞은 한국 첫 군립공원
최근 순창지역 폭설로 천하절경
광덕산·산성산과 ㄷ자로 연결
정강이 높이 눈길 걷는 재미도

삼한 시대 전설이 서린 구장군폭포가 바짝 얼어붙었다.
지난 6일 강천산 군립공원에 도착했다. 정초에 날이 풀린 까닭에 도로에는 눈이 녹았지만 깊은 산속은 햇볕이 덜 들고 기온도 훨씬 낮아 눈이 많이 남아 있었다. 양원준(50)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몸풀기로 계곡 길부터 걸었다. 병풍폭포~구장군폭포 2.7㎞ 산책로는 봄부터 가을까지 맨발로도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순한 길이다. 눈이 덮여 있었지만, 거의 평지여서 아이젠이 필요 없었다. 살얼음 낀 계곡물 소리 들으며, 웅장한 절벽과 폭포를 감상하며 유람하듯 걸었다. 양원준 해설사는 “겨울 강천산은 누구나 힘들이지 않고 설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라며 “사계절 다 아름답지만, 겨울이야말로 여유롭게 운치를 느끼기 가장 좋다”고 말했다.

강천산 계곡에 폭 안긴 강천사에도 하얗게 눈이 덮였다.
우연히 만난 해넘이
강천산은 한국 1호 군립공원이다. 1981년 1월 7일 환경청(현 환경부)이 강천산 일대 15.8㎢를 군립공원으로 지정했다. 양원준 해설사는 “규모가 작을 뿐 수려한 경치는 여느 국립공원에 뒤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본격적인 산행을 하면서 이 말을 실감했다.
등산로는 다양하다. 북쪽 강천산, 서쪽 산성산, 남쪽 광덕산이 ㄷ자 모양으로 이어져 있다. 광덕산 신선봉(425m)을 다녀오는 1코스를 택했다. 구장군폭포에서 걸음을 돌려 현수교 쪽으로 올라갔다. 산책로와 달리 산길은 눈이 수북했다. 아이젠을 장착하고 발목이 푹푹 잠기는 산길을 올랐다.
일명 구름다리로 불리는 현수교를 건너 광덕산으로 넘어갔다. 나무계단이 설치돼 있었지만, 만만치 않았다. 경사가 극심한 데다 미끄러지지 않으려 온몸에 힘을 주니 금세 숨이 찼다. 낮은 산이라고 얕잡아 볼 게 아니었다. 신선봉 팔각정에서 숨을 고르며 절경을 감상했다. 정확히 ㄷ자 모양의 산세가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연봉이 질서정연하게 어깨를 겯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오후 5시 즈음 옥호봉 전망대에서 본 해넘이.
예기치 못했던 대설특보

공원 초입 산책로에 줄지어 선 메타세쿼이아 나무.
신설(新雪)이 뒤덮은 산을 보고 싶었다. 거북이 속도로 차를 몰고 다시 강천산을 찾았다. 입구에 들자마자 전혀 다른 풍광이 펼쳐졌다. 완벽한 적요가 감도는 눈 천지였다. 소나무와 바위가 양송이버섯 같은 눈덩이를 이고 있었고, 우직한 메타세쿼이아 나무도 흰옷을 걸치고 있었다. 병풍폭포는 완전히 얼었고, 조잘조잘 계곡물 소리도 자취를 감췄다.
설경을 굽어보기 위해 현수교를 찾았다. 아이젠을 차고 구름다리 오르는 지름길로 들어갔다. 누적 적설량 30㎝가 넘는 탓에 정강이까지 푹푹 잠겼다. 비록 짧은 오르막이었지만, 눈을 헤치며 길을 내는 겨울 산행의 기술 ‘러셀’을 제대로 체험했다. 현수교 전망대에 섰다. 멀리 산성산 자락이 희미하게 보였다. 새빨간 구름다리만 빼면 완벽한 수묵화 한 폭이었다. 이따금 우짖는 산새 소리만 길게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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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산
순창=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