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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린이라고요? 중딩이 100만원 들고 수익률 30%…미성년 투자 급증

중앙일보 2021.01.14 05:00
13일 서울 노원구 태랑초등학교에서 졸업식을 마친 학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뉴스1

13일 서울 노원구 태랑초등학교에서 졸업식을 마친 학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뉴스1

“중딩인데요, 제 나이에 적정 투자금은 얼마인가요?”

“고딩 ‘주린이’인데요, 돈은 있는데 지식이 없어요. 주식 필독서 추천해주세요”

회원 수 10만여 명의 주식 관련 페이스북 비공개 그룹에 자신을 청소년으로 소개하며 올라온 글들이다. 주식 시장에서 용돈 벌이에 나선 10대가 늘면서 온라인 세계에서는 이미 익숙한 현상이다.
 
고교 2학년인 이모(18)양은 지난달 아버지에게 부탁해 주식계좌를 열었다. 미성년자는 비대면으로 증권 계좌를 만들 수 없고 부모와 함께 증권사 지점이나 은행을 찾아 가족관계증명서 등 필요 서류를 내면 주식계좌를 낼 수 있다. 이양은 아르바이트 월급 등을 모은 50만원을 들고 주식시장에 입성했다. 이달엔 삼성전자에 투자해 5만원을 벌었다고 한다. 이양은 “아르바이트할 때 몇 시간 동안 일해야 버는 돈을 주식으로 벌어서 신기하다”고 말했다.
 

주식 광풍 올라탄 10대들

회원 수 10만 명이 넘는 한 페이스북 페이지에 청소년들이 올린 글. 사진 페이스북 캡처

회원 수 10만 명이 넘는 한 페이스북 페이지에 청소년들이 올린 글. 사진 페이스북 캡처

실제로 미성년자들의 계좌는 크게 늘었다. 13일 키움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미성년자 신규 계좌 개설 건수는 11만5603건이다. 2019년 6838건에서 17배 가까이 늘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자녀가 부모를 설득하기도 하고, 부모가 자녀에게 주식을 증여하거나 재테크 교육에 나서는 등 미성년자의 주식 계좌 개설 이유는 다양하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흐름은 나이를 가리지 않고 확산하는 ‘주식 열풍’으로 인한 추세로 보고 있다”고 했다.
 
이들의 나이만 보고 함부로 ‘주린이’(주식+어린이)로 보면 곤란하다. 본인 의지로 주식을 시작한 10대들은 주식 투자 기간은 짧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왕성하게 정보를 수집하고 투자를 하기 때문이다. 경기도 파주시에 사는 중학생 김모(15)군은 지난해 5월쯤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는 친구의 말에 주식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했다. 그는 부모님의 허락을 받기 위해 투자계획서도 만들었다. 현재 용돈 100만원을 ‘굴리고’ 있다. 지금은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 코스피 ‘대장주’에 투자하고 있으며 수익률은 15~20% 정도다. 김군은 “유튜브로 주식을 공부하고 있다. 주식을 배울수록 또래 애들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간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고딩 ‘주식 전도사’까지

13일 오전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뉴시스

13일 오전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뉴시스

‘주식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선 10대들도 있다. 경남 창원에 사는 고등학생 신제원(19)군은 친구들에게 주식 투자를 권유하고 SNS에 주식 종목 분석 글을 올리고 있다. 신군의 ‘총알’은 150만~200만원. 신군은 “금수저가 아닌 학생이 합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주식밖에 없었다”면서 “주식투자로 얻은 돈을 용돈으로 쓰고 있다. 지난해 6~12월 항공주 관련 수익률이 30% 정도가 나왔다”고 말했다. 
 
15세 차모 군은 주식 관련 페이스북 페이지와 그룹 운영을 이달 시작했다. 차군은 ‘은행에 돈을 넣어도 바뀌는 건 없다. 차라리 내가 벌어보겠다’는 마음에 지난해 8월부터 용돈 200만원을 가지고 주식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차군은 “중학생도 공부하면서 투자하는 것이 주식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 페이스북 페이지를 열게 됐다”고 말했다.
 

“자본주의 한복판 느낀 아이들, 씁쓸한 현상” 

일부 10대 투자자들은 주식 투자를 계속할지 고민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이양도 학업이 신경 쓰인다고 했다. 이양의 아버지는 “딸이 주식 관련 질문을 할 때마다 기특하면서도 불안함을 느낀다”고 했다. 딸이 기업과 경제에 관심을 보이는 건 좋지만, 아직은 다른 공부도 더 열심히 해야 할 나이라는 게 이양 아버지의 생각이다. 그는 “자칫 주식에만 빠져들 수 있다는 점도 걱정”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10대들의 주식 투자 현상이 지금의 사회상을 반영한다고 분석한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래가 불안하고 다른 투자에 대한 희망이 안 보이니 10대들까지 주식 투자에 쏠리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SNS나 유튜브 등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통로가 늘어난 것도 10대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10대의 주식 투자 현상을 “씁쓸한 결과”라고도 했다. 그는 “경제·금융 교육을 담당할 학교는 자본주의와 담을 쌓고 있지만, 막상 아이들이 느끼는 현실은 자본주의 한복판에 있다. 공부만으로는 안 된다는 인식이 10대에까지 퍼진 것”이라며 “10대들이 투기나 도박성 투자를 멀리하고, 주식을 미래 성장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도록 부모가 조언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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