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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유달리 소통 강조한 대통령이 불통으로 비치는 이유

중앙일보 2021.01.14 00:13 종합 29면 지면보기
박경서 번역가·문학평론가(영문학)

박경서 번역가·문학평론가(영문학)

새해에도 한국 정치는 여전히 먹구름에 휩싸여 있어 암울해 보인다. 사회 곳곳에 소통 대신 불통이 스며들어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연설문을 찾아 다시 읽어봤다.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습니다.…때로는 광화문 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습니다. 군림하고 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2017년 5월 10일 국회의사당 로텐더홀에서 행한 문 대통령의 취임 연설은 불통을 소통으로 바꿔놓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긴 명문이다.
 

논증과 논리 부족한 때문 아닌지
정치 현안에 자주 기자회견 열길

그런데 3년 반이 지난 현실은 어떠한가. 소통이라는 글자는 희미하게 지워졌고, 팔림세스트(Palimpsest: 양피지에 씌어있던 글자를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쓴 것)처럼 그 자리에 불통이라는 단어가 덧씌워진 듯하다.
 
지난 11일 대통령의 신년사를 귀담아들어 봤지만, 적극적인 통합과 소통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국민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비껴간, 소통 노력이 부재한 불통의 신년사라 실망스러웠다.
 
소통과 불통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레토릭(수사학)』에 나오는 설득의 3요소를 지금 한국사회에 소환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라고 갈파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적 공동체에서 말을 서로 주고받으며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해준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레토릭』에서 말하기의 기술인 설득의 수단으로 에토스(Ethos), 파토스(Pathos), 로고스(Logos)를 제시했다. 에토스는 말하는 사람의 인품이나 성격을, 파토스는 청중의 심리적·감정적 상태를, 로고스는 화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증과 논리를 각각 가리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화자의 인품이나 성격(에토스)을 가장 높이 평가하지만, 논리(로고스)를 갖추지 못하면 결국 설득에 실패한다고 지적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소통)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에토스·파토스·로고스 순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말이나 행동으로 솔직하고 진정성 있게 다가가 믿음을 먼저 구축하고, 상대방의 감정을 끌어낸 뒤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말할 때 비로소 설득(소통)에 성공한다는 것이다. 틀린 곳이 없는 말인데도 청중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고, 왠지 싹수가 없어 보인다면 그에게는 에토스와 파토스가 부족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대다수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왜 불통의 정치를 할까. 굵직한 정치문제에 대해서 무결점과 무오류의 ‘선한 임금님’ 모드를 유지하며 한두 마디 덕담 수준의 말만 던질 뿐이다.
 
문 대통령의 레토릭이 로고스 수준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에토스의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열혈 지지층이 ‘우리 이니’라고 외치는 것도 그의 에토스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의 레토릭을 원용해보면 문 대통령 레토릭의 경우 자기편은 빼고 대다수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는 결과가 도출된다. 국민과 소통하고 언론에 브리핑하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은 안 지키는 것인가, 못 지키는 것인가. 안 지킨다면 그것은 정치적 계산이 깔린 것이고, 못 지킨다면 로고스 부족 탓이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각각 150회나 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회, 불통 이미지로 각인된 박근혜 전 대통령조차 3년 차까지 다섯 차례나 했다. 소통을 그렇게 강조하고도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 여섯 번이 고작이다.
 
이제 국민은 진영 논리와 불통 정치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초미의 정치 현안에 대해 국민은 대통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기자회견을 통해 자주 듣고 싶어 한다. 불통을 소통으로, 진영 정치를 포용 정치로 바꿔 놓을 사람은 대통령밖에 없다.
 
박경서 번역가·문학평론가(영문학)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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