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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사람한테 나는 짠맛, 쓴맛, 감칠맛…당신은 무슨 맛?

중앙일보 2021.01.13 09:00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66)

새해 첫 아침, 아내가 떡만두국을 끓였다. 과거 기준으로 한다면 아내 자랑은 팔불출 중에 하나라고 했지만, 아내의 음식 솜씨는 꽤 좋은 편으로 자랑할 만하다. 내 칭찬의 표현은 항상 아내로부터 핀잔을 듣긴 하지만. “오~ 이거 맛 난데? 우리 음식점이나 차릴까?”
 
우린 안다. ‘뭐, 뭐나 해 볼까’라는 말은 성공 가능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괜히 해본 소리라는 것을. 그 대표적인 것이 식당이나 해 볼까, 농사나 지어 볼까이다. 그러니 내 칭찬이 칭찬일 리 없다. 그런데 기껏해야 패스트푸드를 기본으로 적당히 요리해 내오는 것이 희한하게 맛이 있으니 그런 농담을 할 수밖에. 희한하게 맛있는 음식, 이를 손맛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손맛이란 개념은 없다. 그럼 그 맛을 무슨 맛이라 정의할까?
 
인간이 미각으로 느끼는 맛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에 나오는 네 가지다. 단맛, 쓴맛, 매운맛, 짠맛이 그것이다. 그런데 지난 2000여 년 동안 정설로 여겨져 오던 미각으로서의 네 가지 맛이 깨졌다. 감칠맛이라는 맛이 발견된 것이다. 감칠맛이란 현대에 들어 MSG라고도 일컬어지는데, 그 자체는 사실 별다른 맛을 느낄 수 없다. 일본인 이케다 기쿠나라는 사람이 20세기 초에 해조류의 국물에 함유된 글루타메이트 성분이 이 맛을 낸다고 하면서 이 맛을 ‘우아미(감칠맛)’라고 했다. 나는 감칠맛을 자체의 맛이라기보다는 조화미라고 부르고 싶다. 무엇이 함께 어우러져야 맛을 내는 맛, 그게 감칠맛이고 우리가 흔히 이제껏 손맛이라고 칭찬했던 그 맛이 아닐까 한다.

 
내 칭찬의 표현은 항상 아내로부터 핀잔을 듣긴 하지만. “오~ 맛 난데? 우리 음식점이나 차릴까?” 우린 안다. ‘뭐, 뭐나 해 볼까’라는 말은 성공 가능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괜히 해본 소리라는 것을. [사진 pxhere]

내 칭찬의 표현은 항상 아내로부터 핀잔을 듣긴 하지만. “오~ 맛 난데? 우리 음식점이나 차릴까?” 우린 안다. ‘뭐, 뭐나 해 볼까’라는 말은 성공 가능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괜히 해본 소리라는 것을. [사진 pxhere]

 
새해 벽두에 맛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사람에게도 맛들이 존재하고, 사람을 말할 때 그 맛을 들어 평가하는 데 착안해 감칠맛(?) 나는 사람에 대해 말해 보기 위해서다. 우리는 욕심 많고 자신만을 위하는 사람을 일컬어 짠돌이, 짠순이라고 한다. 자신의 욕심만을 차리는 사람은 짠맛이 난다. 사사건건 시비를 붙고 사람 대하기를 꺼리는 사람에게는 쓴맛이 난다. 화를 잘 내고 남 비난하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매운맛이 돈다. 남 칭찬하기를 아끼지 않고 웃음을 띠고 사람을 대하는 사람, 함께 있어 행복한 사람에게는 단맛이 느껴진다. 이런 맛을 모두 아우르며 뭔가 모르는 매력을 지닌 사람이 감칠맛 나는 사람이다. 나이가 들어 인생 후반부를 사는 사람이 갖춰야 할 맛은 무엇일까? 나는 감칠맛 나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랜 경륜과 삶의 달관을 통해 무르익어 향기로운 사람, 그게 가능한 세대가 인생 3막을 사는 사람이다. 또 그렇게 살아야 한다.
 
몇 해 전 1950년대에 출간됐던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책이 재해석돼 발간된 바 있다. 우리가 알고 있던 방탕하고 무책임하며, 부도덕한 인물의 대명사인 조르바와는 조금 다른 버전이다. 나는 그 책이 카잔차스키가 추구했던 가치를 제대로 번역한 책이라고 본다. 그래서인지 그해 교보문고가 50대 장년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책으로 선정된 바 있다. 왜 은퇴를 앞둔 장년 세대가 카잔차스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 다시 열광하게 됐을까? 재해석 된 죠르바가 풍기고 있는 감칠맛 나는 인간상에 매료되어서이지 않을까 감히 짐작해 본다.
 
인생 후반부는 이래저래 채인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든 나이다. 그런 연령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환영받는 삶의 맛은 어떤 것일까? 바로 이웃과 사회와 함께하는 자세를 가진 감칠맛 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감칠맛 나는 사람으로서의 기본은 이웃에 봉사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삶의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사회환경을 개선함으로써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고 떠나는 것, 당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다는 것으로 인해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이 성공한 삶이다.”
 
이 말은 세계 최대부자인 빌 게이츠의 아내 멜린다 게이츠가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고교졸업식 답사로 인용했던 미국 철학자 랄프 왈도 에머슨의 말이다.
 
새해가 밝았다. 가뜩이나 추운 계절, 사람의 온정이 그리운 시절이다. 나눔과 베풂으로 감칠맛 나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인생 후반부 삶의 자세가 아닐까? [사진 pxhere]

새해가 밝았다. 가뜩이나 추운 계절, 사람의 온정이 그리운 시절이다. 나눔과 베풂으로 감칠맛 나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인생 후반부 삶의 자세가 아닐까? [사진 pxhere]

 
현재 세계 최대규모의 기금으로 운영되는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공동의장인 멜린다는 다 알다시피 제3세계 사람의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다양한 공헌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퇴치를 위한 각국의 백신 개발을 지원함으로써 주목을 받는 여성이다. 메란다 여사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나는 그 맛을 감칠맛이라고 여긴다. 감칠맛이란 자신의 색을 감추고 함께 어울려 빛을 발하는 맛이다. 사람에게서 감칠맛이 난다는 것은 바로 자기만의 영욕을 버리고 이웃을 위해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기여하며 공헌하는 자세에서 느낄 수 있는 맛이다.
 
옛글에 ‘수지청즉무어 인지찰즉무도(水至淸卽無魚人至察卽無徒)’라는 말이 있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 수 없으며, 사람이 너무 모질면 사람이 따르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정이 없고 지나치게 차가운 사람에게는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다는 말이니, 베풀지 않고 나누지 않으면 외로울 수밖에 없다. 베풂과 나눔이 함께하는 자세이며, 이웃과 함께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어야 감칠맛이 난다. 결국 베푸는 사람이 감칠맛 나는 사람이다.
 
새해가 밝았다. 가뜩이나 추운 계절, 사람의 온정이 그리운 시절이다. 나눔과 베풂으로 감칠맛 나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인생 후반부 삶의 자세가 아닐까? 올 한해 감칠맛 나는 인생 3막을 살아 보자.
 
푸르메재단 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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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익종 한익종 푸르메재단기획위원 필진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 봉사는 자기애의 발현이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만이 남에게 봉사할 수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 연대가 줄면서 자존감이 떨어지는데 봉사는 나를 필요로 하는 대상을 찾아, 내 존재를 확인하게 해준다. 내 존재를 확인하고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 봉사다. “봉사하라, 봉사하라! 오래 가려면 함께 하자”고 외치는 필자의 봉사 경험을 통해 봉사가 어렵고 거창한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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