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 최초의 페라리 소유자, 뭐 하는 사람이길래

중앙일보 2021.01.13 06:30
1992년 중국 천안문 광장 앞, 페라리 옆에 선 남자가 통화를 하고 있다. 이 페라리는 중국에 처음 상륙한 페라리 348 TS 모델이다.  

ⓒZAKER

ⓒZAKER

1992년 페라리 제조업체는 베이징 야윈춘(亞運村) 컨벤션 센터를 찾아 전시에 참여했다. 당시 중국 경제는 이제 막 성장 궤도에 돌입할 시기였기에  당사 제조업자들은 중국 시장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첫 구매자가 나타났다. 한 중년 남성이 당시 베이징의 10개 아파트 가격에 해당하는 13만 8천 달러를 지불해 페라리를 구매한 것이다.
ⓒZAKER

ⓒZAKER

중국 본토에서 제로 돌파구를 뚫은 페라리는 베이징 천단(天壇) 공원에서 구매자를 위한 인수식을 개최했다. 프랑스 일간지 피가로(Le Figaro)는 해당 인수식 촬영 장면을 파리 공항과 리옹 벨쿠르 광장에 내걸기도 했다.  
 
"중국 경제 도약의 축소판"이라 칭송받은 페라리의 주인은 중국의 억만장자, 리샤오화(李曉華)다.
ⓒZAKER

ⓒZAKER

그는 애초에 재벌도, 부유한 집에서 자라온 것도 아니었다. 베이징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특별히 부유하지 않은 가정 사정으로 어린 시절부터 일을 시작했다. 건설업, 주방장, 짐꾼, 외판 사업 등 다방면에서 돈을 벌고자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렇게 순탄치만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내오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1978년, 중국에 개혁개방 바람이 불며 서구 문물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의 기나긴 사업 스토리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사업의 기회를 찾기 위해 광저우 박람회를 방문한 리샤오화는 청량음료 제조기를 마주하게 됐고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인 3600위안(한화 약 60만 원)을 털어 해당 기기를 구입했다.  
ⓒZAKER

ⓒZAKER

그는 음료 기계를 가지고 중국의 유명한 피서지 베이다이허(北戴河) 해변으로 갔다. 그가 판매하는 5마오(毛) 남짓 되는 음료를 사기 위해 긴 행렬이 늘어섰고, 단 한 번의 계절에 10만 위안 이상을 거둬들였다.  
 
그러나 모방품이 속속들이 나올 것으로 예상한 그는 과감히 음료 사업을 떨쳐내고 허베이성 친황다오에 비디오방을 개업했다.
 
주로 홍콩 영화를 상영했던 그의 비디오방은 전례 없는 영화 감상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1위안짜리 입장권이 10위안에 암거래될 정도였다. 1984년, 이미 백만장자의 대열에 합류한 리샤오화. 그러나 그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ZAKER

ⓒZAKER

1985년, 그는 일본 경영을 심층적으로 탐구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다. 무역 회사의 수습생의 신분으로 일하던 중, 탈모 치료제인 장광101(章光101)이 불티나게 팔리는 것을 보고 일본 독점 판매권을 따냈다. 곧이어 장광 101은 일본, 홍콩, 한국 등지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어 그에게 돈벼락'을 안겨주었다.
리샤오화.ⓒ바이두 백과

리샤오화.ⓒ바이두 백과

리샤오화는 멈추지 않았다. 1989년, 수많은 홍콩인이 이민을 계획하고 혼란을 겪던 시기에 그는 과감히 홍콩으로 건너갔다.  
 
모두가 떠난 그곳에서 그는 닥치는 대로 건물을 사들였다. 당시 재벌들은 자산을 해외로 빼돌리기 위해 헐값에 빌딩을 내놓았고, 그는 굴러다니는 부동산을 대량으로 살 수 있었다.  
 
그의 선택은 도박이 아니었다. 90년대에 들자 홍콩을 떠난 주민들은 다시 돌아왔고 홍콩 부동산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하는 일마다 승승장구한 셈이다.
조지 부시 부부와 리샤오화. ⓒ财经中国网

조지 부시 부부와 리샤오화. ⓒ财经中国网

그의 통찰력은 어디까지인 걸까. 리샤오화는 말레이시아까지 손을 뻗쳤다. 한때 말레이시아 정부는 한 중소도시의 도로부지 매도 및 도로 보수공사 프로젝트의 공개입찰을 내놓았다. 그러나 교통량이 적어 어떤 회사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리샤오화는 철저한 조사 끝에 해당 도로에서 멀지 않은 곳에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었다는 정보를 접했고 과감히 투자에 나섰다.
 
그는 모아둔 자금을 쏟았고, 그것도 모자라 은행에서 대출까지 받았다. 순전히 도박이었다. 유전의 최종 평가가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3개월 이상 전전반측의 밤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나 유전 최종 승인이 완료되었고 매수한 도로 부지 가격은 다섯 배 이상 올랐다.  
트럼프와 리샤오화. ⓒ海外网

트럼프와 리샤오화. ⓒ海外网

그는 현재 홍콩화다(华达)투자 그룹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그의 사업 영역은 무역, 부동산, 가전제품, 식품 가공, 요식업 등을 아우른다. 리샤오화는 2001년 포브스 선정 중국인 부호 16위에 이름을 올렸으며 홍콩에서 활약하는 베이징 출신 기업인 중 제일가는 부자다.
 
리샤오화는 사업 이외에 두 가지 일에 몰두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기부다. 
 
그는 불우이웃을 돕는 희망공정(希望工程)운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선사업가다. 페라리를 인수한 1992년부터 그는 줄곧 중국의 빈곤 아동들에게 기부하고 있으며, 2016년 그의 총 기부금은 6억 3천만 위안에 달했다.  
 
이 공적을 인정받아 그는 96년 3월엔 중국 천문학계가 발견한 소행성의 이름이 '리샤오화 별'로 명명되는 등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그는 현재 중국적십자기금회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좌) 1992년 희망공정에 기부한 리샤오화. (우) 1996년 3월 ″리샤오화별″ 명명식. ⓒ财经中国网

(좌) 1992년 희망공정에 기부한 리샤오화. (우) 1996년 3월 ″리샤오화별″ 명명식. ⓒ财经中国网

 
그가 몰두하고 있는 다른 분야는 바로 차(車)다. 그는 명실상부한 럭셔리 카 광(狂)이다.
ⓒ바이두 백과

ⓒ바이두 백과

가난한 어린 시절,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 다녀야 했던 그는 차에 대한 애정이 상당히 깊다. 리샤오화는 중국 최초의 페라리 소유자일 뿐만 아니라 중국 최초의 벤츠 S클래스 600sl의 차주이기도 하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가 보유한 고급 차량 수만 해도 15대가 넘는다.  
ⓒ凤凰网

ⓒ凤凰网

ⓒ凤凰网

ⓒ凤凰网

총자산 40억 위안, 30여 개의 기업, 수 십대의 럭셔리 카. 그의 성공은 단순히 운이었던 걸까?  
 
거대한 부를 일궈낸 비결은 그의 물실호기(勿失好機)한 자세에서 비롯되었다 볼 수 있다. "기회가 오면 절대 놓치지 않는" 그의 통찰력과 결단력이 오늘날의 위치를 만들어낸 게 아닐까.
 

"이 세상 모든 돈을 한 사람이 다 벌 수는 없다. 벌 만큼 벌고 손을 떼라, 남이 벌도록 양보해라."  

-리샤오화(李晓华)

차이나랩=김은수 에디터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