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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파전도 이긴다"는 김종인, 박원순 잊고 박찬종만 떠올렸다

중앙일보 2021.01.13 05:00 종합 8면 지면보기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3차 온택트 정책워크숍에 참석해 주호영 원내대표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날 한 라디오에 출연해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3자구도'로 치러지더라도 "승리를 확신한다"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3차 온택트 정책워크숍에 참석해 주호영 원내대표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날 한 라디오에 출연해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3자구도'로 치러지더라도 "승리를 확신한다"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3개월가량 앞둔 야권이 ‘후보 단일화’문제로 들끓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제3지대에서 출마를 공식화한 뒤 여론조사 선두로 치고나가면서다. 선거 승리를 위해선 야권 후보 단일화가 최선이라는 데엔 이견이 없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을 놓고 제1야당 국민의힘과 안 대표 사이에 신경전이 오가더니 국민의힘에선 "우린 제 갈길을 가겠다"는 목소리도 커진다.   
 
특히 안 대표와의 연대에 소극적인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오전 CBS 라디오에 출연해 오는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3자구도로 치를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야권 단일화가 무산돼 여당 후보와 제1야당인 국민의힘 후보, 제3지대의 안 대표간 3파전이 벌어져도 김 위원장은 "(국민의힘 후보의) 승리를 확신한다"고 했다.
 

①김종인이 그리는 95년 모델

민주당의 서울시장후보 경선에 뛰어든 조순 전 한국은행 총재가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악수하는 모습. 1995년 선거에서 DJ는 조 전 총재를 전폭 지원했다. 중앙포토

민주당의 서울시장후보 경선에 뛰어든 조순 전 한국은행 총재가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악수하는 모습. 1995년 선거에서 DJ는 조 전 총재를 전폭 지원했다. 중앙포토

김 위원장은 1995년 첫 민선 서울시장 선거를 언급했다. 당시 선거에서 여당인 민주자유당은 국무총리 출신인 정원식 후보를, 제1야당인 민주당은 한국은행 총재 출신인 조순 후보를 내세웠다. 하지만 초반 선거전의 승기는 변호사 출신 무소속 박찬종 후보가 잡았다. 김 위원장은 “처음엔 다 박찬종이 무조건 된다고 생각했다. 조순씨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그 때 내가 이야기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조순씨가 이번에 된다고”라고 말했다.
 
실제로 선거는 조 후보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김 위원장은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지금 국민의힘도 (참패했던)지난 4ㆍ15 총선 때와는 당이 달라졌다”며 “지금 변화의 바탕을 깔고서 4월 7일까지 가면 우리가 이긴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95년 선거의 조순 자리에 국민의힘 후보를, 박찬종의 위치에 안 대표를 대입시키며 '안 대표가 계속 당 밖에 머물다간 결국 박 후보처럼 낙선할 것'이란 주장을 편 셈이다. 김 위원장은 “3자구도에서도 이길 수 있다는 말이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그는 “당연하다. 2자로 가면 좋겠지만, 단일 후보가 안 돼서 자기(안 대표)가 (선거에) 나가는 걸 막을 순 없다”고 답했다.  
 
1995년 민주당 조순(가운데) 서울시장 후보는 당시 인기 TV드라마였던 '판관 포청천'을 빗댄 '서울 포청천' 이미지를 강조했다. 왼쪽은 당시 조 후보의 선거전략본부장을 맡았던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 중앙포토

1995년 민주당 조순(가운데) 서울시장 후보는 당시 인기 TV드라마였던 '판관 포청천'을 빗댄 '서울 포청천' 이미지를 강조했다. 왼쪽은 당시 조 후보의 선거전략본부장을 맡았던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 중앙포토

하지만 정치권에선 95년 선거 때와 현재의 상황을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전문가들이 많다. 제1야당 후보 조순의 당선은 정치판을 호령했던 ‘3김’ 중 두 사람의 강력한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정계 복귀를 앞둔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지원을 받았던 조 후보는, 선거 나흘 전 충청 지역의 맹주였던 자민련 김종필(JP) 총재의 공개 지지까지 끌어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성사된 이른바 DJP(김대중ㆍ김종필) 연합에 앞서 두 사람이 조 후보 지지로 한 배를 탄 셈이다. 1995년 야권의 상황과 달리 현재 야권엔 선거의 큰 흐름을 좌지우지할 만한 거물 정치인이 없다.   
 
당시 민주당의 막강한 조직력은 조 후보의 승리에 일조했다. 당시 조 후보의 선거전략본부장이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였다. 흰 머리카락에 흰 눈썹인 조 후보를 당시 유명 TV 드라마 ‘판관 포청천’에 빗대 ‘서울 포청천’이라고 부르며 이미지 메이킹에 나선 민주당의 전략도 주효했다. 반면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잇따른 선거 패배로 인해 국민의힘의 조직력은 대폭 약화돼 있다. 
 

②안철수의 절치부심, 11년 모델

이 때문에 야권에선 2011년의 ‘박원순 모델’을 떠올리는 이도 적잖다. 야권이 똘똘 뭉쳐 단일 후보를 만들어낸 뒤 여당과 1 대 1 대결을 벌여야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안 대표도 이날 김 위원장의 ‘3자구도’ 발언에 대해 “야권 지지자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야권 단일후보가 서울시장에서 승리하는 것 아니겠냐”며 “제 간절함과 야권 지지자의 절실함이 만나면 결국 야권 단일 후보가 (성사)되고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2011년 10월 서울시장 선거 야권 후보 경선 TV토론회에 나선 당시 박영선 민주당 후보와 박원순 무소속 후보. 중앙포토

2011년 10월 서울시장 선거 야권 후보 경선 TV토론회에 나선 당시 박영선 민주당 후보와 박원순 무소속 후보. 중앙포토

2011년 서울시장 보선 당시 박원순 후보는 선거 초기만 하더라도 시민운동가 출신의 군소 후보로 대중에 인식됐다. 선거를 불과 50일 앞둔 2011년 9월 5일 중앙일보-갤럽 여론조사에서 박 후보 지지율은 3.0%였다. 하지만 같은 조사에서 39.5% 지지율을 기록하며 대세론을 굳히던 안철수 대표가 돌연 불출마를 선언하고 박 후보의 손을 들어주면서, 박 후보의 운명이 달라졌다. 박 후보는 같은 달 17일 같은 조사(양자 대결)에서 45.8%의 지지율로 나경원 후보(37.0%)를 8.8%포인트 앞질렀다.
 
박영선 후보와의 단일화 경선에서 승리(2011년 10월 3일)한 박원순 후보에겐 민주당이라는 든든한 ‘뒷배’까지 주어졌다. 당시 문재인ㆍ유시민ㆍ이해찬ㆍ심상정 등 쟁쟁한 야권 인사들이 박 후보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지원에 나섰다. 결국 선거는 박 후보(53.4%)가 나 후보(46.2%)를 꺾으면서 끝났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1995년과 2011년의 두 선거는 박찬종과 박원순이 무소속이었다는 공통점 외에는 조직력과 구도 면에서 완전히 다른 선거였다”며 “올해 선거는 제3지대 돌풍이 국민의힘과 어떤 방식으로 결합하느냐가 승패를 가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손국희ㆍ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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