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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측량선 한국 EEZ 진입, 위안부 판결 이어 갈등 쌓인다

중앙일보 2021.01.13 00:02 종합 10면 지면보기
지난해 말부터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물밑에서 움직여왔던 정부가 최근 법원의 위안부 배상 판결에 이어 또 하나의 암초를 만났다. 11일 한국 해양경찰청 소속 경비정이 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중첩 구역에 진입한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측량선에 퇴거를 요청한 데 대해 일본 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양국 EEZ 겹치는 지역에 들어와
해경 경비정과 40시간 동안 대치
한국 “사전 동의 없어” 중단 요구
일본은 “해양조사 계속하겠다”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장관은 12일 정례 브리핑에서 “조사는 일본의 EEZ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중단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이와 관련, “우리측에 사전 동의를 받지 않은 일본측 해양조사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는 요구를 분명히 했다”라고 밝혔다.
 
한국 해경선과 일본 측량선 대치 위치.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한국 해경선과 일본 측량선 대치 위치.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NHK 등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해상보안청 소속 측량선 소요(昭洋)호는 10일 밤 11시경부터 나가사키(長崎)현 고토(五島)열도 메시마(女島)섬 서쪽 140㎞ 부근에서 지질 조사를 했다. 11일 새벽 3시 30분경 한국 해경 소속 경비정은 “한국 해역에서 해양과학조사를 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소요호는 “일본의 EEZ에서 정당한 조사 활동을 하고 있다”고 응수했고 이후 약 40시간 동안 대치했다. 지난해 8월에 이어 5개월 만에 유사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
 
이 지역은 양국간 EEZ가 겹치는 ‘중간 해역’이다. EEZ란 자국 연안으로부터 200해리(370.4km)까지 모든 자원에 대해 독점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유엔 국제해양법상의 수역이다. 한·일은 해안선의 거리가 가까워 EEZ가 중첩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 경우 국가간 협의를 통해 EEZ를 정하는데 그동안 합의를 보지 못해 양국이 주장하는 EEZ에 포함되는 ‘중간지대’가 존재해왔다.
 
양국은 1998년 체결된 한·일 신어업협정에 따라 이 중첩 지역에서는 상대국 국민과 어선에 대해 자국의 법령을 적용하지 않고 있다. 또 어획량 등에 대해서는 협의를 통해 조정하고, 어업 자원은 공동으로 보존·관리한다. 하지만 이번처럼 정부 소속 선박의 해양조사 활동과 관련해선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국제법 및 각국 규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
 
도쿄의 한 외교소식통은 “원칙적으로 타국의 EEZ에서 조사 활동을 벌일 경우 상대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며 “한국 해경은 이 원칙에 따라 퇴거를 요청한 것이고, 일본 역시 자국의 EEZ 원칙에 따라 정당한 활동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독 지난해와 올해 이 문제가 부각된 것은 한·일 관계 악화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소식통은 “이전엔 이런 일이 발생해도 일회성으로 지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며 “최근 서로의 동향에 민감해지면서 이런 갈등 하나하나가 수면 위로 불거지는 상황이 된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본은 2월 말까지로 예정된 이번 조사를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도쿄=이영희·윤설영 특파원
서울=박현주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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