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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해경-日해상보안청 해상 대치…EEZ, 또 다른 갈등 불씨되나

중앙일보 2021.01.12 19:39
서울지방법원의 위안부 판결 등으로 경색 일로인 한·일관계가 또 하나의 암초를 만났다. 11일 한국 해경 선박이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진입한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측량선에 "우리측 수역에서 나가라"고 요청한 데 대해 일본 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협의없이 EEZ 진입" 日조사선 퇴거 요청
日 "우리 EEZ, 받아들일 수 없다" 주장
해당 지역은 양국 EEZ 겹치는 중간 지대
어업 외 규정 없어 대립 이어질 가능성

12일 제주 해경과 대치 중인 일본 해상보안청 측량선 소요호. [사진 제주해경청]

12일 제주 해경과 대치 중인 일본 해상보안청 측량선 소요호. [사진 제주해경청]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일본 관방장관은 12일 오전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이 일본에 해양조사 중단을 요구한 데 대해 외교루트를 통해 항의했다며 "조사는 일본의 EEZ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중단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NHK 등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측량선 소요(昭洋)호는 10일 오후 11시경부터 나가사키(長崎)현 고토(五島)열도 메시마(女島) 섬 서쪽 140㎞ 부근에서 지질 조사를 했다. 다음날 새벽 3시 30분경, 한국 해양경찰청 선박으로부터 조사를 중단하라는 무선 요청이 들어왔다. 
 
해양경찰청 선박은 당시 "여기는 한국 해역"이라며 "이 해역에서 해양과학 조사를 하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소요호는 "우리는 일본의 EEZ에서 정당한 조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응수하며 버텼다. 양측의 대치는 12일 오후 4시까지 약 40시간 이어졌다. 
 
지난해 8월에도 이번 사건이 일어난 인근 해상에서 일본 측량선 '헤이요'(平洋)가 조사활동에 나서 한국 해경 선박이 중단을 요구한 일이 있었다. 당시에도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에 항의했다. 
 

양국 간 EEZ 겹치지만 관련 합의 없어

지난해에 이어 같은 대립이 일어난 것은 이 지역이 양국 간 EEZ가 겹치는 '중간 해역'이기 때문이다. EEZ란 자국 연안으로부터 200해리(370.4km)까지의 모든 자원에 대해 독점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유엔 국제해양법상의 수역을 말한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워낙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EEZ가 중첩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EEZ가 겹치는 경우 국가 간 협의를 통해 정하도록 하고 있지만, 한·일의 경우 독도 영유권 등의 문제로 합의하지 못해 양국 EEZ에 공통으로 속하는 해역이 존재하게 됐다. 
 
한국 해경 선박과 일본 측량선이 대치한 메시마 서쪽 139㎞ 해상은 제주 서귀포 동남쪽에서 126km에 이르는 곳으로, 한국과 일본이 각자 설정한 EEZ에 모두 포함되는 지역이다. 
 
양국은 1998년 체결된 한·일 신어업협정에 따라 이 중첩 지역에서는 상대국 어선에 대해 자국의 법령을 적용하지 않고 있다. 또 어획량 등은 협의를 통해 조정하고, 어업 자원은 공동으로 보존·관리한다.  
 
하지만 이번처럼 정부 소속 선박의 조사 활동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가 없어 국제법 및 각국 규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 도쿄의 외교소식통은 "원칙적으로 타국의 EEZ에서 조사 활동을 벌일 경우 상대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며 "한국 해경은 이 원칙에 따라 퇴거를 요청한 것이고, 일본 역시 자국 원칙에 따라 정당한 활동이라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일관계 냉각 이후 갈등 부각 

지난해 이전에도 일본 정부 선박 활동에 한국 해경이 매뉴얼에 따라 경고 방송을 하는 일은 여러 차례 되풀이돼 왔다. 지난해와 올해 유독 이 문제가 부각된 것은 한·일관계 악화와 관련이 깊다. 
 
외교소식통은 "이전엔 이런 일이 발생해도 일회성으로 지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 양국이 서로의 동향에 민감해지면서 이런 갈등 하나하나가 표면으로 불거지는 상황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한국 측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2월 말까지로 예정된 이번 조사를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대치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말부터 악화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물밑에서 노력해왔던 한국 정부로서는 또 하나의 악재를 떠안게 된 셈이다.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12일 일본 정부의 항의가 있었음을 확인하고 "일본 측에 우리 관할 수역에서 (해경이) 정당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달하고, 우리측에 사전 동의를 얻지 않은 일본 측 해양 조사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는 요구를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도쿄=이영희·윤설영 특파원, 서울=박현주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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