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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아들 김원진이 유도를 하는 이유였다

중앙일보 2021.01.12 16:54
김원진은 12일 마스터스에서 우승했다. 생애 첫 메이저 대회 금메달. 하지만 아버지의 별세 소식을 듣고 오열했다. [중앙포토]

김원진은 12일 마스터스에서 우승했다. 생애 첫 메이저 대회 금메달. 하지만 아버지의 별세 소식을 듣고 오열했다. [중앙포토]

카타르 도하 루사일 스포츠 아레나에서 12일(한국시각) 열린 유도 마스터스 남자 60㎏급 시상식. 우승자 김원진(28·세계 12위)은 환하게 웃었다. 태극마크를 달고 딴 첫 메이저 대회 금메달이었다. 그런데 시상대에서 내려온 그는 금호연 남자유도 대표팀 감독과 몇 마디 나누더니 갑자기 오열했다. 아버지 별세 소식을 전해 들은 것이다.
 

아버지 영전에 첫 메이저 금메달
부친 별세 모른 채 마스터스 우승
시상식 직후 소식 전해 듣고 오열
합숙훈련으로 한 달 전 마지막 봐

김원진의 아버지 김기형(55)씨는 10일 등산 도중 심근경색으로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가족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원진이한테 알리지 말아달라"고 대한유도회와 대표팀 관계자에게 부탁했다. 김원진이 모처럼 출전한 국제대회를 끝까지 잘 마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이번 대회는 지난해 2월 독일 뒤셀도르프 그랜드슬램 이후 11개월 만에 열린 국제대회다. 국제유도연맹(IJF)은 코로나19로 그간 대회 개최를 중단했다. 마스터스는 각 체급 세계 32위 이내 선수만 출전하는 대회로, 도쿄올림픽(7월)의 모의고사 격이다.

마스터스 결승에서 이기고 기뻐하는 김원진. [사진 IJF]

마스터스 결승에서 이기고 기뻐하는 김원진. [사진 IJF]

 
김원진은 대회 내내 최고의 경기를 펼쳤다. 결승까지 5경기 동안 상대에게 한 포인트도 내주지 않았다. 결승전에서는 양유웨이(대만·세계 11위)를 1분 19초 만에 한판승으로 꺾었다. 경기 초반 수세에 몰렸던 김원진은 순간적으로 누워서 던지기 기술을 넣어 승부를 뒤집었다. 2013년 국가대표 1진이 된 이후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이다.
 
김원진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최민호를 이을 차세대 경량급 기대주였다. 2015년 세계선수권 동메달을 시작으로 그랑프리·그랜드슬램 등에서 꾸준히 입상했다. 2016년 리우올림픽을 앞두고는 세계 1위로 올라섰다. 급성장한 탓일까. 올림픽에서는 경험 부족을 드러내며 조기 탈락했다. 이후 슬럼프를 겪었다. 한동안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다. 김원진은 2017년 66㎏급으로 한 체급 올렸다. 하지만 선발전에서 번번이 이 체급 최강자 안바울에게 밀렸다. 2018년 다시 60㎏급으로 돌아왔다. 한 체급 위 선수들과 겨루며 근력을 키운 김원진은 복귀와 동시에 60㎏급을 다시 평정했다.
아버지 김기형씨는 김원진(오른쪽)이 유도하는 이유였다. 아버지는 아들이 경기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사진 대한유도회]

아버지 김기형씨는 김원진(오른쪽)이 유도하는 이유였다. 아버지는 아들이 경기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사진 대한유도회]

 
아버지는 김원진이 운동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였다. 강원도 철원에서 전자대리점에서 근무한 아버지는 1남 2녀 중 장남인 김원진을 끔찍이 아꼈다. 김원진은 신철원초 2학년 때 유도를 시작했다. 아버지는 아들 경기가 열리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든 찾아갔다. 김원진도 대회 대진표가 나오면 사진 찍어 제일 먼저 아버지한테 보냈다. 
 
초등학교 시절 은사인 오정석 철원군유도회 감독은 "원진이 아버지는 '아들이 커서 올림픽 금메달 따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고 했다. 부담될 수 있어 원진이한테는 직접 말한 적은 없다"고 전했다. 또 "효심이 깊은 원진이도 그런 아버지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항상 '아버지 목에 올림픽 금메달을 걸어드리겠다'고 말했다. 도쿄올림픽만 바라보고 열심히 했다. 이번 대회 우승은 그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김원진이 아버지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건 꼭 한 달 전이다. 지난달 10일부터 카타르 출국 때까지 진천선수촌에서 합숙 훈련했다. 코로나19로 외출과 외박을 삼갔다. 가족에게 금메달 소식을 전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금호연 남자팀 감독은 김원진이 도쿄올림픽 금메달을 따서 아버지의 꿈을 이뤄주기를 바란다. [중앙포토]

금호연 남자팀 감독은 김원진이 도쿄올림픽 금메달을 따서 아버지의 꿈을 이뤄주기를 바란다. [중앙포토]

 
금호연 감독은 "시상식까지 끝나고 아버지 별세 소식을 원진이에게 전했다. 처음에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두 눈만 끔뻑끔뻑하더라. 시간이 좀 지나자 울먹울먹했다. 망연자실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찢어졌다"고 전했다. 한국 유도는 김원진과 안바울(66㎏급)을 앞세워 이날 걸린 대회 금메달 2개를 석권했다. 금 감독은 "소식에 충격이 컸을 텐데도, 원진이는 팀부터 생각하더라. 경기가 남은 동료들이 흔들릴까 봐 자신이 먼저 귀국하는 걸 동료들에게 비밀로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김원진은 가장 이른 13일 오전 비행기 편으로 귀국했다. 발인은 이미 12일 마친 상태다. 가족은 아버지 유골함을 집에 모셨다가, 김원진이 도착하면 함께 장지로 이동할 계획이다. 금 감독은 "원진이한테 '지금처럼 더 열심히 유도하는 게 아버지가 가장 바랐던 일이니, 힘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원진이도 알겠다고 했다. 원진이가 도쿄올림픽 금메달을 아버지 영전에 바칠 수 있기를 대표팀 모두가 간절히 기도한다"고 말했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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