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인이 살인죄 논란…캐리어 계모 사건으로 본 미필적 고의

중앙일보 2021.01.12 06:00
생후 16개월 정인이를 숨지게 한 혐의로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기소된 양모 A씨에 대해 서울남부지검은 13일 첫 재판 전 살인죄를 추가로 적용할지 결론 내린다. 검찰은 이를 위해 전문 부검의 3명으로부터 정인이 사인에 대한 정밀 재감정 결과도 받았다. 정인이 양모에게 살인죄를 적용할지 최대 쟁점은 당시 16개월 여아가 숨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폭행을 계속했다는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할 수 있느냐이다. 
 

“숨이 안 쉬어져요”란 아이, 母 7시간 가두고 짓밟아,
정인이, 16개월 여아 췌장 등 장기손상 '외력' 밝혀야
檢 전문부검의 3명 재감정 결과로 살인죄 기소 곧 결론

대장·소장은 물론 안쪽 췌장이 절단될 정도로 양모가 가한 '외력'의 실체가 무엇인지 재감정 결과 밝혀졌느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수사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특히 정인이 사건 직전인 지난해 6월 벌어진 천안 캐리어 계모 사건은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무엇인지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꼽는다.  
 

천안 계모, 당일 오전 11시 50분~오후 7시 15분 아이 가둬  

 
지난해 6월 1일 오전 11시 50분. 당시 9세인 A군은 1살 터울인 의붓형 B군과 ‘게임기’로 실랑이가 벌어졌다. A군의 의붓엄마이자 B군의 친모였던 성모(43)씨가 개입하며 일이 커졌다. 성씨는 A군에게 “네가 게임기를 망가뜨리려고 만진 것 아니냐”며 윽박질렀다. 그러면서 가로 50㎝, 세로 71.5㎝ 정도의 여행용 가방(캐리어)에 들어갈 것을 지시했다.
 
1년 전부터 A군과 함께 살기 시작한 성씨의 학대는 이날이 처음이 아니었다. 옷걸이나 나무 주걱 등으로 때리는 일은 허다했다. 요가 링을 아이 머리에 휘둘러 찢어지는 일도 있었다. ‘전설의 매’라고 부른 나무 막대기로 발바닥을 때리다가 A군의 발가락에 멍이 들기도 했다.
 
선생님과 이웃 주민은 경찰관을 꿈꿨던 A군을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아이로 기억했다. 하지만 아이는 잦은 체벌에 잘못을 가짜로 인정하는 일이 늘었다. 아이는 학대에 가까운 성씨의 체벌을 저항없이 감내하곤 했다.
 
[사진제공=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사진제공=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이날도 A군은 “아니에요”라며 뒷걸음질 치다가 별다른 저항없이 가방 안에 몸을 웅크리고 누웠다. 성씨는 곧장 가방 지퍼를 잠궜다.

 
약 20분 뒤 성씨는 점심 약속으로 집을 비웠다. 성씨가 돌아온 오후 3시 20분 쯤 성씨의 친자녀들은 “얘가 가방에서 나오려 일부러 소변을 눴다”고 했다. A군은 좁은 캐리어 가방 안에서 땀과 소변에 젖어있었다. 
 

"숨 안 쉬어진다" 아이 호소에 테이프로 밀폐까지  

성씨는 더 작은 캐리어 가방을 꺼냈다. 불과 가로 44㎝, 세로60㎝, 너비 23㎝의 캐리어였다. 아이는 “아니에요. 아니에요”라고 뒷걸음쳤다. 그러나 성씨는 재차 가방에 들어가라고 지시했다. 성씨는 다시 가방을 잠궜다.
 
오후 4시쯤 아이는 가까스로 “엄마 숨이 안 쉬어져요”라고 말했다. 성씨는 가방을 열고 “정말 숨이 안 쉬어져? 거짓말 아니야?”라고 추궁했다. 평소처럼 위축된 아이는 “네. 거짓말이에요”라고 대답했다. 다시 지퍼가 잠겼다.  
 
가방은 안방에서 옷방으로, 옷방에서 안방으로 이리저리 옮겨졌다. 아이는 웅크린 채 지퍼 끝의 박음질이 된 천을 뜯었다. 실오라기가 뜯어지자 성씨는 완전 밀폐를 위해 뜯어진 곳에 테이프를 붙였다.
 
오후 6시 10분. 성씨는 친자녀들과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A군은 호흡 곤란 등으로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가방의 뜯어진 부분에 손을 내밀었다. 성씨는 “넣어”라고 했다.   
 
동거남의 9세 아들을 여행용 가방에 가둬 숨지게 한 여성이 구속영장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뉴스1

동거남의 9세 아들을 여행용 가방에 가둬 숨지게 한 여성이 구속영장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뉴스1

 

계모와 자식들 160㎏, 캐리어 위에서 23㎏ 아이 짓밟아 

이번에 아이는 따르지 않았다. 성씨는 분노했다. 73kg의 체중인 성씨는 캐리어 가방 위에 올라가 뛰고 밟았다. 두 아이에게도 올라오라고 했다. 같이 캐리어 가방 위에서 제자리걸음을 하며 가방을 밟았다. 최대 160kg의 무게에 자그마한 아이(23kg)가 짓눌렸다.
 
아이가 다시 손가락을 가방 밖으로 뺐다. 분노한 성씨는 지퍼를 열고 이번에는 드라이기로 온풍을 불어넣었다. 다시 가방 위에 올라가 밟기도 했다. A군은 울면서 “숨, 숨”이라고 고통을 호소했다.
 
오후 7시 15분. 아이가 움직이지 않았다. 매일 게임기로 다투던 의붓형 B군조차 “빨리 119에 신고하자”고 했다. 성씨는 신고 대신 아이의 얼굴에 물을 뿌렸다. 심폐소생술도 했다. 그러나 성씨는 심폐소생술을 배우거나 해본 적이 없다.
 
오후 7시 56분. 119구급차가 출동했다. 그러나 병원에서 진료를 받던 A군은 이틀 뒤 ‘질식에 의한 저산소성 뇌손상 및 합병증 등’으로 숨졌다. 비좁은 가방 속에서 살갗을 비벼야 했던 A군의 얼굴 곳곳에는 생채기가 나 있었다.
 
A군이 병원으로 옮겨지는 모습. [연합뉴스]

A군이 병원으로 옮겨지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9월 사건 1심 재판부인 대전지법 천안지원 형사1부(부장 채대원)는 “계모 성씨는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결과가 발생할 것을 충분히 인식했고, 미필적으로나마 그 결과를 용인했다고 넉넉히 인정된다”며 성씨에게 살인죄 등을 적용해 징역 22년을 선고했다. 7시간 이상 밀폐된 여행 가방에 가두고 지속적으로 폭행해 계모 성씨가 아이가 질식사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았기 때문에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계모 성씨의 항소로 대전고법이 오는 29일 오전 10시 2심 선고를 한다. 
 
김수민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