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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지지자를 속인 대통령의 최후

중앙일보 2021.01.12 00:09 종합 28면 지면보기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내 대통령이 내게 거짓말을 한 것인지 알고 싶어요.” 미국 의회가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승리를 최종 승인한 지난 6일. 한 공영 방송이 전화로 연결한 아이다호 주민 태미가 울면서 말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투표한 열성 지지자였다. 이때까지 “내가 크게 이겼다”는 트럼프 말을 철석같이 믿다가 진실을 알게 돼 충격받은 모습이었다.
 
울음에 잠긴 목소리는 마치 사이비 종교단체에 심취했다가 구출돼 바깥 세상을 알게 된 사람을 연상케 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만들어 놓은 ‘대안적 진실’ 세계에서 헤어나왔지만, 의회로 몰려가 난동을 부린 폭도들은 여전히 의회도, 법원도, 주 정부도 모두 잘못됐다고 믿고 있다. 태미는 한 마디 덧붙였다. “오늘 총 맞고 숨진 그 여성의 가족에게 대통령이 사실을 말해줬으면 좋겠어요.”
 
의회에 침입한 시위대는 창문을 깨고 본회의장 진입을 시도했다. 깨진 창문을 넘어가던 한 여성 지지자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허무한 죽음은 그뿐만이 아니다. 한 경찰관은 시위대가 내려친 소화기에 머리를 맞고 사망했다. 시위대는 쇠파이프와 야구방망이를 들고 의회를 점거했다. 의원들은 바닥을 기어 탈출했고, 보좌관들은 가구로 문을 막고 책상 밑에 숨어 4시간을 버텼다.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가 6일 “트럼프가 크게 이겼다”고 쓴 푯말을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가 6일 “트럼프가 크게 이겼다”고 쓴 푯말을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지지자를 폭도로 변하게 한 건 ‘정신적 지주’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는 “약해서는 결코 나라를 되찾지 못한다. 힘을 보이고 강해져야 한다”고 선동했다. 또 “우리는 의회로 갈 것이다. 나는 여러분과 함께 갈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는 함께 가지 않았다. 이런 사소한 것부터 선거에서 이겼다는 큰 거짓말까지, 진실을 말하지 않는 건 어느덧 트럼프 대통령에겐 일상이 됐다.
 
언론은 팩트체크를 통해 대통령 말의 참과 거짓을 구분했지만, 트럼프 입만 바라보는 지지자들에게는 무의미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남발한 거짓말은 결국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제도에 대한 신뢰를 흔들고 최소 5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참사로 발전했다.
 
미국인들은 이번 사태를 9·11테러 이상의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적이 아닌 미국인이 미국을 공격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대통령의 거짓말로 잘못된 정보가 입력된 군중이 분노를 폭발시켜 국내 테러리스트가 됐다. 경제와 외교, 보수의 가치 제고 등 나름 성과를 낸 트럼프 대통령의 최후는 거짓으로 나라를 위기로 내몬 선동가로 기록됐다. 분노한 군중, 잘못 입력된 정보, 거짓말하는 대통령은 어디에나 있다. 세계가 미국을 보고 경악하면서 제 일처럼 걱정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 같다.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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