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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vs 8부 리그, 토트넘-마린 대결…FA컵은 축제다

중앙일보 2021.01.12 00:03 경제 6면 지면보기
간이의자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손흥민(노란 원)과 조제 모리뉴 토트넘 감독(빨간 원). 경기장 옆 주택 지붕에서 지켜보는 팬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AP=연합뉴스]

간이의자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손흥민(노란 원)과 조제 모리뉴 토트넘 감독(빨간 원). 경기장 옆 주택 지붕에서 지켜보는 팬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AP=연합뉴스]

11일(현지시각) 영국 머지사이드주 소도시 크로스비(인구 5만 명)의 한 축구 경기장(마린 트레블 아레나). 아침부터 주민이 모여들었다. 오후가 되자, 수백 명으로 늘었다. 인파는 하나같이 까치발을 하고 경기장 진입로를 주목했다. 정체는 프리미어리그(1부) 토트넘 홋스퍼 선수단을 구경하려는 지역민이었다.
 

최대 전력 차에도 훈훈했던 한판
지역주민이 주축인 8부 리그 마린
대진 확정되자 토트넘 맞을 준비
스타 예우에 감사 표시한 토트넘

토트넘은 크로스비가 연고지인 8부 리그 마린AFC와 이날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 64강전에서 맞붙었다. 1894년 창단한 마린은 아직 1부(프리미어리그) 팀과 경기한 적이 없었다. 팬이 몰려들자 경찰은 울타리를 치고, 토트넘 선수단 버스를 에스코트했다.
 
도착한 토트넘 버스에서 에이스 손흥민이 내려 경기장으로 향하자, 플래시 세례와 환호가 터졌다. 손흥민은 손을 흔들어 답례했다. 영국 스카이스포츠는 “FA컵 149년 역사에서 가장 전력 차가 큰 팀 간 대결이다. 현재 토트넘과 마린의 순위를 계단식으로 따져보면 160위 차이”라고 전했다.
 
열띤 취재 경쟁 속에 구단 버스에서 내린 손흥민. [AP=연합뉴스]

열띤 취재 경쟁 속에 구단 버스에서 내린 손흥민. [AP=연합뉴스]

예상대로 경기는 싱겁게 끝났다. 토트넘은 주포 손흥민·해리 케인을 빼고도 5-0으로 크게 이기고 32강에 진출했다. 애초부터 마린에게 결과는 중요하지 않았다. 잉글랜드 축구는 1~4부가 프로, 5~6부가 세미프로, 7부 이하는 아마추어다. 마린 선수들은 대부분 다른 일을 하는 ‘투잡’ 선수다. 교사(주장 나이얼 커민스), 자동차 딜러(골키퍼 베일리 패산트), 환경미화원(미드필더 제임스 배리건), 배관공(공격수 닐 캥니) 직업도 다양하다.
 
이들에게 토트넘전은 그야말로 ‘꿈의 대결’이었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마린 선수들은 토트넘 선수단 쪽으로 달려들었다. 유니폼을 교환하기 위해서다. 주장 커민스는 자신의 우상인 손흥민에게 향했다. 허사였다. 코로나19 방역 수칙에 따라 유니폼 교환은 금지됐다. 토트넘 구단은 선수들의 새 유니폼을 별도로 준비해 마린에 전달했다.
 
마린 팬들도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코로나로 경기는 무관중으로 진행됐다. 팬들은 경기장 주변에 몰렸다. 마린 구장은 담장이 낮다. 경기장 옆 주택의 베란다나 옥상에서 경기를 볼 수 있다. 토트넘 벤치 바로 뒤 건물 지붕의 한 축구 팬은 조제 모리뉴 토트넘 감독, 손흥민과 함께 중계 화면에 잡혔다.
 
마린 구단은 토트넘과 대진이 확정됐을 때부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축제를 준비하듯 토트넘 맞이 준비를 했다. 경기장 입구에 “토트넘 선수단 방문을 환영한다”고 적힌 간판을 설치했다. 허름한 라커룸 대신 경기장 내 연회장을 개조해 토트넘 선수단이 제공했다. 스타 선수에 대한 예우였다. 식사는 5성급 호텔 도시락으로 준비했다.
 
마린 구단은 역시 8부 리그 클리트헤로이 감독인 데이비드 린치(27)를 1박 2일간 선수로 임대해 전력을 강화하는 이벤트도 벌였다. 린치는 출전하지 않았다.
 
머지사이드주 1부 팀 리버풀과 에버턴도 마린을 도왔다. 토트넘의 경쟁자인 두 구단은 마린 선수단을 초청해 훈련장을 내줬다. 모리뉴 감독은 “지도자로 한 번도 8부 팀과 경기한 적 없었다. 마린 구단과 선수들 노력에 감동했다. 결과를 떠나 훌륭한 승부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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