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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노총 안전마크 개발 “현장 잘 아는 노조, 대안 내야”

중앙일보 2021.01.12 00:02 종합 8면 지면보기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TCO(스웨덴 사무전문직 노총) 본부 건물 전경. [사진 구글어스]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TCO(스웨덴 사무전문직 노총) 본부 건물 전경. [사진 구글어스]

2015년 11월 삼성전자는 홍보자료를 냈다. “글로벌 안전 규격 전문기관인 스웨덴 사무직 노총(TCO)으로부터 ‘TCO Display 7.0’ 인증을 획득했다”였다. 2006년에도 “21인치 LCD 모니터 싱크마스터 215W가 ‘TCO 06’ 인증을 세계 최초로 획득했다”는 자료를 전 세계 언론에 배포했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보도자료를 낼 정도면 TCO 인증을 받기가 까다롭다는 뜻이고, 상당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사무직 노총 TCO, 안전 등 1년 연구
근로자 사용 물품 규격인증 만들어
TCO 마크 없으면 EU 수출도 못해
“안전은 노사 함께 예방해 지킬 영역”

TCO(Tjänstemännens Centralorganisation)는 스웨덴의 여러 노총 가운데 하나다. 스웨덴은 직종별로 노총이 설립돼 있다. TCO는 사무 전문직 노총이다. 140여만 명의 조합원을 거느리고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지난해에야 각각 100만 명의 조합원을 확보한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큰 노동단체다.
 
TCO 인증 마크

TCO 인증 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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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동단체를 삼성전자는 ‘글로벌 안전 규격 전문기관’으로 명시했다. TCO는 어떻게 세계적인 산업안전기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까.
 
TCO는 1990년대 들어 생산 현장의 자동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컴퓨터에 의존하는 업무가 확산하는 것에 주목했다. 눈의 피로, 근골격계 질환을 호소하는 조합원이 늘어났다. 한국 같으면 산재 인정 투쟁, 기업주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을 텐데 TCO는 완전히 다를 길을 갔다.
 
근로자가 사용하는 컴퓨터를 비롯한 전자제품, 휴대전화, 헤드셋 등을 정밀히 조사했다. 조합원을 상대로 설문조사와 건강진단도 벌였다. 각종 전자제품 등을 사들여 뜯어보고 연구했다. 연구의 초점은 명확했다. 안전한가, 친환경적인가, 변화하는 근무 여건에 맞춰 근로자의 피로도를 줄일 수 있는가 등이었다. 조작 편의성과 무리성, 유해물질 함유 또는 배출, 재활용 가능성, 청색 가시광선 정도 등 근로자의 안전과 건강,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는 모조리 검증하고 최적의 조합을 찾았다.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연구를 거듭한 TCO는 92년 ‘TCO 인증(TCO 92)’을 내놨다. 이 조건을 충족하는 제품을 쓰도록 산하 노동조합에 권고했다. 경영계도 호응했다. 산업현장에서 노사가 협의해 이 인증에 부합하는 제품을 쓰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웨덴 정부가 TCO의 인증을 국가 표준으로 채택했다. 몇 년 뒤 유럽연합(EU)이 표준 규격으로 삼았다. TCO 인증 마크가 없는 제품은 유럽으로 수출할 수 없다.
 
TCO 인증은 거의 매년 업데이트된다. 고도로 분업·자동화하는 산업환경, 재택근무의 확산과 같은 일하는 방식과 구조의 변화 등에 따른 새로운 안전 연구를 계속 진행해 그 결과를 담아 개선하기 때문이다. 제품을 팔기 위해선 기업도 제품 개발 전략 단계에서부터 TCO의 규격을 포함할 수밖에 없다. 산업·노동환경의 변화에 맞춤형 안전 예방책을 TCO가 일궈가는 셈이다.
 
TCO의 한 연구원은 “산업안전이든 근로환경이든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연구해 대안을 내놓는 것이 노조의 역할”이라며 “안전과 환경은 경영진과 노동자 모두에게 절대 가치의 영역이고, 이는 갈등의 대상이 아니라 개선하고 예방해야 할 영역”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영진이 할 일과 정치권이 할 일, 노조가 할 일이 엄연히 다르고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야 한다”고도 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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