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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사라진 개그 “사람이 먼저다”

중앙일보 2021.01.11 00:16 종합 28면 지면보기
문병주 사회에디터

문병주 사회에디터

실재 인물의 인기가 높으니 개그도 그랬다. 이 정권 초기 KBS 2TV 개그콘서트 코너 ‘봉숭아 학당’에 등장한 19대 교장 문 교장은 “사람이 먼저다”를 외쳐댔다. 그의 모호한 경상도 사투리를 서울말로 해석하는 교장 부인까지 등장해 매번 폭소를 자아냈다. 고인이 된 김형곤이나 김학래·엄용수 등 쟁쟁한 코미디언들이 나와 당시 대통령 등 권력자들을 비꼬던 과거 정치 개그와는 달랐다. 오로지 문재인 대통령의 인기에 기댔다.
 
어느 순간 구호처럼 흘러나오던 “사람이 먼저다”가 사라졌다. 대통령의 입에서도 그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국정농단 사건 수사와 촛불집회, 탄핵을 등에 업고 당선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2017년 5월 취임 직후 84.1%(리얼미터 기준)의 경이로운 수치를 보였다.
 
노트북을 열며 1/11

노트북을 열며 1/11

비교적 탄탄했던 지지는 2019년 8월 시작된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흔들렸다. 예기치 못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발 초기 대응 효과로 지난해 봄 60%대로 지지율을 끌어올렸지만 잠시였다. 내놓는 부동산 정책마다 실패라는 평가를 받고, 윤석열 검찰총장을 잡겠다고 내세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행보가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다. 추 장관과 윤 총장의 갈등이 절정에 달했던 12월부터는 40% 밑을 맴돌고 있다. 급기야 지난주에는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평가가 처음으로 60%를 넘어섰고, 긍정평가는 35.1%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당선 당시 받았던 41.1% 지지율에서 멀어졌다.
 
그래도 역대 대통령들의 집권 4년차 지지율과 비교해 비교적 선방한 수치라고 자족할지 모른다. 하지만 집권 후반기 레임덕의 징후로 여겨지는 현상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문민 정권이 탄생한 이래 본인을 포함한 측근들과 친인척 비리, 정책의 실패가 집권 후반기 대통령의 말이 안 통한 이유였다. 이는 곧 지지율의 하락이나 각종 선거에서 집권당의 패배로 이어졌다.
 
아직 기회는 있다고들 한다. 문 대통령의 임기가 1년 넘게 남아있는 데다 무력하고 분열된 야권 덕에 ‘힘’이 살아있다는 이유에서다. 대통령의 귀가 더 열릴 여지도 있다.  
 
지뢰밭은 많다. 재임 동안 검찰총장 한 명 몰아내겠다고 공력을 대부분 할애하면서 한 구치소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1000명이 넘게 나왔는데도 “적절한 조치를 했다”는 법무부 장관의 말마저 고스란히 대통령이 떠안고 있다. 엄지척하며 “사람이 먼저다”를 유쾌하게 말하고 폭소와 박수를 이끌어내던 개그맨이 그리운 엄동설한이다.
 
문병주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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