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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슛은 김수녕처럼 쏘라”는 농구감독 강을준

중앙일보 2021.01.11 00:03 경제 6면 지면보기
강을준 감독은 올 시즌 오리온을 맡아 선두권에 올렸다. 오리온은 지난 시즌 최하위였다. 선수 기를 살리는 리더십이 통했다. [사진 KBL]

강을준 감독은 올 시즌 오리온을 맡아 선두권에 올렸다. 오리온은 지난 시즌 최하위였다. 선수 기를 살리는 리더십이 통했다. [사진 KBL]

“양궁 김수녕이 ‘시위를 떠난 화살에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고 했어. 화살처럼, 슛도 한번 쏘면 손을 떠난 거야.”
 

소통으로 기 살리는 오리온 감독
지난 시즌 꼴찌 팀, 단독 2위 올려
재밌는 농담으로 선수 긴장 풀어줘
수학용어 사용, ‘수학자’ 별명 얻어

프로농구 고양 오리온 강을준(56) 감독은 최근 가드 한호빈(30)을 붙잡고 이렇게 말했다. 직접 활 쏘는 시늉까지 하며, 1988년 서울 올림픽 양궁 2관왕 김수녕(48)의 말을 인용했다. 한호빈은 3일 부산 KT전에서 막판 실수를 쏟아내 경기를 망쳤다. 스승은 기죽은 제자를 그렇게 격려했다.
 
강 감독은 10일 전화인터뷰에서 “미련을 빨리 털어내는 것도 기술이다. 호빈이한테 ‘이제 시즌 반환점을 돌았고, 3라운드나 남았다’고 말해줬다”고 전했다. 그다음 상황이 압권이었다. 강 감독은 “그런데 호빈이가 김수녕을 모르더라. 세대 차이를 느꼈다”며 웃었다.
 
강 감독은 코트 안팎에서 재치있는 말을 쏟아내 ‘어록 제조기’로 불린다. 또 다른 별명은 ‘성리학자’다. 창원 LG 사령탑 시절, 작전타임마다 “성리(승리)했을 때 영웅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경상도 사투리(경남 마산 출신) 때문에 “승리”를 “성리”처럼 발음했고, 그 후로 ‘성리학자’가 됐다.
 
‘성리학자’였던 강 감독이 요즘은 ‘수학자’가 됐다. 오리온이 ‘양날의 검’일지 모를 가드 이대성(31)을 영입하며, 강 감독이 농구를 수학에 비유한 것이 계기였다. 그는 ‘득점이 더하기, 어시스트가 빼기, 패스가 동료를 거쳐 득점으로 연결되면 나누기’라는 이론을 세웠다. 그는 “대성이가 처음에는 더하기만 했다. 올 시즌에는 빼기와 나누기도 한다”고 말했다. 팬들 사이에서는 “강 감독이 문과(성리학)에서 이과(수학)로 전과했다”며 화제가 됐다.
 
강 감독은 10일 KT전 4쿼터 작전타임 도중에도 이대성을 향해 “더하기만 하면 안돼”라고 말했다. 강 감독 지시에 따라 이대성은 22점을 올리며 80-76 승리를 이끌었다.
 
앞서 강 감독은 3일 KT전 4쿼터에 이대성을 뺐다. 곧바로 ‘불화설’이 나왔다. 강 감독은 “화살(팬들의 비판)이 날 관통해서 대성이한테 날아갈까 봐 보호한 거다. 불화설을 듣고서 대성이에게 ‘차라리 너랑 나랑 한판 붙자’고 했다”며 웃었다. 이에 이대성은 “지난해 12월 경기 중 입술이 찢어져 6바늘 꿰맸는데, 감독님 때문에 웃겨서 또 찢어질 뻔했다”고 말했다.
 
프로농구 오리온 강을준(왼쪽) 감독과 가드 이대성. [사진 KBL]

프로농구 오리온 강을준(왼쪽) 감독과 가드 이대성. [사진 KBL]

시즌 초반 선수 줄부상에 강 감독은 “오늘 작전명은 명량대첩”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군을 물리친 걸 비유한 거였고, 이 말도 화제가 됐다.
 
강 감독은 가끔 선수단 미팅을 앞두고 야심 차게 ‘말 개그’를 준비한다. 최근 미팅에서 선수단에 “오바하지 말고 잠바해”라고 했다. 노장 허일영(36)만 웃음을 터뜨렸다. 강 감독은 “경상도에서는 코트를 ‘오바’라고 하는데. 요즘 애들은 못 알아듣는다. 꼰대가 안 되려면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웃었다.
 
오리온은 지난 시즌 꼴찌였다. 강 감독이 부임하자 9년 만의 현장 복귀를 두고 ‘올드한 거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오리온은 단독 2위(17승 12패)다. 감독의 권위를 내려놓고 선수들을 편하게 해준 덕분이다. 강 감독은 트레이드로 이종현(2m3㎝)을 데려와 ‘오리온 산성’을 구축했다. 기복을 줄이는 게 숙제다.
 
어록 양산의 비결에 대해 강 감독은 “책을 많이 본다”고 한 뒤 뜸을 들이다가 “만화책”이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그는 “LG 감독 시절 ‘작탐(작전타임)’ 때 욱해서 큰 소리 낸 적도 있다. 지금은 선수들과 평소 소통해 그런 일은 없다. 내가 현장에 돌아온 뒤로 ‘작탐’을 기다리는 팬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프로농구연맹은 경기 중 감독, 선수에게 마이크를 채워 현장 목소리를 전한다. 강 감독은 아직 마이크를 찬 적은 없다. 그는 “지난 시즌 순위에 따라 차례로 하면 나도 (마이크를) 차겠다. 흥미가 좀 떨어지는 타이밍이나, 4~5라운드쯤이 좋겠다”고 말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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