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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조차 모르는 중대재해법, 예방보다 책임 회피만 커질것"

중앙일보 2021.01.10 16:13
8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 재석 266인, 찬성 164인, 반대 44인, 기권 58인으로 가결됐다.[뉴스1]

8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 재석 266인, 찬성 164인, 반대 44인, 기권 58인으로 가결됐다.[뉴스1]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발의된 지 4년 만에 통과됐지만 노동계는 물론 기업인 양쪽에서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기업인들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 1년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또 다른 사업장 관리법이 제정돼 부담이 더욱 커졌다고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과 경영진의 처벌만 가중됐을 뿐 산업재해 감소라는 본래의 정책 효과는 불투명하다는 게 기업인들의 목소리다.   
 
기업인들은 먼저 중대재해법의 준법 대상이 명확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추광호 전국경제인연합회 상무는 10일 “준법 대상이 뭔지 인공지능(AI)도 모를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중대재해법 상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이 지켜야 할 안전ㆍ보건 조치 의무가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모호하다는 것이다. 
 
산업 현장에서는 사업장의 소유자, 운영자, 관리자, 발주자 등 의무 주체가 복수로 존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누가 어느 정도까지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중대재해법이 시행될 경우 원청과 하청이 모두 책임 회피를 목적으로 보여주기 식으로 의무를 이행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추 상무는 "법을 준수해야 하는 현장에서 오히려 혼란만 가중될 것"이라며 "실질적인 중대재해 예방 조치가 소홀히 취급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하청을 받는 중소기업의 일감이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산업현장의 중대 재해는 주로 하청받는 작은 규모의 기업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중대재해법은 5인 미만 사업장의 사업주는 산업재해의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고, 50인 미만 사업장은 3년간 적용을 유예했다. 하지만 간접 당사자인 원청 기업은 처벌받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의 2019년 산업재해 발생현황에 따르면 사망 사고의 77%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이에 따라 원청(대기업ㆍ중견기업)이 하청(중소기업)의 안전 관리에 대한 비용 부담으로 사업 확장을 주저하고 결과적으로 도급을 축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19년 현재 국내 중소기업 중 하청을 받는 곳은 42%에 달하고, 하청 기업 매출액의 83%가 원청 기업에 납품하는 것으로 창출됐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오른쪽)이 지난 4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 중대재해법에 대한 중소기업계 입장문을 전달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오른쪽)이 지난 4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 중대재해법에 대한 중소기업계 입장문을 전달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여기에 산업안전사고를 전문성을 축적한 근로감독관 대신 경찰이 수사하는 것도 기업에는 큰 부담이다. 현재 산업안전보건법은 안전 위반 사건에 대한 수사는 산업안전 분야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근로감독관이 특별사법경찰관으로 전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중대재해법은 일반 경찰이 직접 산업 현장에서 안전ㆍ보건 조치 의무 위반 여부를 수사하게 돼 있다. 
 
산업 현장에서 안전사고는 절반 가까이가 근로자의 안전지침 미준수 때문에 발생한다. 실제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산업재해는 48%가 근로자 안전지침 미준수 때문에 발생했다. 기업들은 이같은 현실을 도외시한 채 사업주에 대한 처벌만 강화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전승태 한국경영자총협회 산업안전팀장은 “사업주 처벌 수위를 강화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다시 기업 처벌을 강화했다"며 “중대재해법은 기업경영과 산업현장 관리에 감당하기 어려운 막대한 부담을 가중하는 법”이라고 지적했다. 
 
강병철 기자 bong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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