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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성리학자)서 이과(수학자)로 전과, '어록제조기' 강을준 감독

중앙일보 2021.01.10 15:12
프로농구 오리온 강을준(오른쪽) 감독이 이대성에게 지시하고 있다. [사진 KBL]

프로농구 오리온 강을준(오른쪽) 감독이 이대성에게 지시하고 있다. [사진 KBL]

 
“(한)호빈아. 양궁 김수녕이 ‘시위를 떠난 화살에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고 했어. 화살처럼, 슛도 한번 쏘면 손을 떠난거야.”

프로농구 고양 오리온 사령탑
작년 꼴찌팀, 올해 공동 2위 이끌어
명언·농담으로, 선수 긴장 풀어줘
농구를 수학에 비유, '수학자' 불려

 
프로농구 고양 오리온 강을준(56) 감독이 최근 가드 한호빈(30)에게 해준 말이다. 직접 활쏘는 시늉까지 하며 1988년 서울 올림픽 양궁 2관왕 김수녕(48)의 소감을 인용했다. 한호빈이 지난 3일 부산 KT전에서 막판 실수를 쏟아내며 경기를 망쳤는데, 기죽은 제자를 격려한거다.  
 
강 감독은 10일 전화인터뷰에서 “미련을 빨리 털어내는 것도 기술이다. ‘이제 시즌 반환점을 돌았고, 3라운드나 남았다’고 말해줬다. 그런데 호빈이가 김수녕을 모르더라. 요즘 친구들과 세대차이를 느꼈다”며 껄껄 웃었다.
 
강 감독은 코트 안팎에서 명언과 재치있는 말을 쏟아내 ‘어록 제조기’라 불린다. 또 다른 별명은 ‘성리학자’다. 창원 LG 사령탑 시절, 작전타임 때 “성리(승리)했을 때 영웅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경상도 사투리(마산 출신) 때문에 “승리”가 “성리”로 들렸는데, 그 후로 그렇게 불렸다.
 
요즘 새롭게 ‘수학자’라 불린다. 오리온 ‘양날의 검’ 가드 이대성(31)을 두고, ‘농구’를 ‘수학’에 비유했기 때문이다. ‘더하기는 득점, 빼기는 어시스트, 나누기는 패스가 동료를 거쳐 득점연결’이란 이론을 내놓았다. 강 감독은 “대성이가 처음에는 더하기만 했다. 올 시즌에는 빼기와 나누기도 한다. 가끔 턴오버 하지만, 중요한 순간 해결해준다”고 했다. 농구팬들은 “강 감독이 문과(성리학)에서 이과(수학)으로 전과했다”며 재미있어했다.  
 
프로농구 오리온 강을준 감독과 이대성. 김성룡 기자

프로농구 오리온 강을준 감독과 이대성. 김성룡 기자

 
강 감독이 지난 3일 KT전 4쿼터에 이대성을 빼자 ‘불화설’이 나왔다. 강 감독은 “화살(팬들의 비판)이 날 관통해 대성이에게까지 날아갈까봐 보호해준거다. 불화설을 듣고 대성이에게 ‘차라리 너랑 나랑 한판붙자’고 농담했다”며 웃었다. 이대성은 지난해 12월 “경기 중 입술이 찢어져 6바늘 꿰맸는데, 감독님 때문에 웃겨서 또 찢어질 뻔했다”고 말했다. 이대성은 9일 KGC전 막판 자유투까지 ‘4점 플레이’로 승리를 이끌었다.
 
시즌 초반 선수들이 줄부상을 당하자 강 감독은 “오늘 작전명은 명량대첩”이라고 말했다.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군을 물리친걸 비유한거다. 강 감독은 최근 선수단 미팅 때 야심차게 “‘오버’하지 말고 ‘잠바’로 해”라고 했다. 그런데 노장 허일영(36) 혼자만 빵터졌다. 강 감독은 “경상도에서는 주윤발이 입는 바바리코트를 ‘오바’라 하는데. 요즘 친구들은 이해 못하고 썰렁하다고 하더라. 꼰대가 안되려면 초심으로 돌아가야겠다”며 웃었다.  
 
오리온은 지난 시즌 꼴찌였고, 강 감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았다. 9년 만의 현장 복귀를 두고 ‘올드한거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오리온은 예상을 깨고 공동 2위(16승12패·9일 기준)다. 강 감독이 권위를 내려놓고 선수들 긴장을 풀어준 덕분이다. 강 감독이 트레이드로 이종현(2m3㎝)을 데려와 ‘오리온 산성’을 구축했는데, 경기마다 기복을 줄이는게 숙제다.  
 
‘어록’ 비결에 대해 강 감독은 “책을 많이 본다. 만화책”이라고 농담한 뒤 “요즘 손자병법을 읽고 있다”고 했다. 강 감독은 “LG 감독 시절 ‘작탐(작전타임)’ 때 욱해서 큰 소리를 낸 적도 있다. 지금은 선수들과 평소 소통하다보니 그런 일은 없다. 내가 현장에 돌아온 뒤 ‘작탐’을 기대한 팬들이 많았다”고 했다.  
 
프로농구연맹 KBL은 경기 중 감독과 선수에게 마이크를 채워 생생한 목소리를 전한다. 강 감독은 아직까지는 마이크를 찬 적은 없다. 강 감독은 “지난 시즌 순위대로하면 나도 차겠다. 농구 흥미가 조금 떨어진 타이밍이나, 팬들이 원한다면 4~5라운드 때 찰 용의가 있다”며 웃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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