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5월 26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구의역 '9-4' 승강장 앞에서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이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로 숨진 김모(19)군을 기리며 묵념하고 있다. 뉴시스
중대재해 두고 두 개의 처벌법 가동
[김기찬의 인프라]
[현장에서]
한데 이상한 건 원청의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고, 산업안전 보호 대상도 확 늘리는 등의 내용으로 산안법을 완전히 개정했는데도 1년에 일하다 숨지는 근로자는 오히려 늘었다. 그렇다면 법을 강화하거나 새 법을 만든다고 산업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산업현장의 안전은 처벌이 아니라 예방이 우선이라는 상식을 새삼 일깨운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그렇다면 산안법이 확 바뀐 뒤 산업안전의 최일선에서 안전활동을 해야 할 노사는 도대체 뭘 한 건가.
◇ 다시 보는 이천 사고의 한탄
"산업안전 관련 법정 형량은 세계에서 높은 국가군에 속한다. 처벌을 강화한다고 산업안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예방 안전으로 가야 한다. 처벌만 강화하는 건 사후약방문으로 사고를 막겠다는 말밖에 안 된다." 박두용 한국산업안전공단 이사장의 말이다. 지난해 5월 19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다.

지난해 4월 29일 오후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의 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현장에서 수색 및 사고 수습 작업이 밤까지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전면 개정한 산안법 시행 1년…사망자는 더 늘어
그나마 이 통계에는 공무원이나 집배원, 어업 종사자와 같은 사람은 포함되지 않았다. 일하다 숨졌지만 산재보상법이 아니라 공무원재해보상법, 선원법, 사립학교 교직원 연금법 등으로 재해보상이 되기 때문에 통계에서 제외됐다. 이런 '통계 밖 사망자'까지 합치면 한 해 2000명이 산재로 숨진다.
원청의 책임범위를 확대하고, 처벌을 강화하며, 보호 대상의 범주를 확장했는데도 이렇다.
"산업안전은 협상 대상 아냐…처벌은 사후약방문, 예방에 진력해야"
중대재해법을 둘러싼 갈등의 해법이 7개월여 전에 이미 제시된 셈이다. 중대재해법을 두고 노사는 물론 정치권까지 나서 협상의 산물로 취급하는 것부터가 잘못이란 얘기다. 있는 법을 제대로 지키고, 예방하면 굳이 법을 층층이 쌓아 올리지 않아도 산업안전을 지킬 수 있다는 의미다. 한데 예방이 사라졌다. 처벌만 담론으로 떠올라 마치 산업안전의 절대 해법인 양 둔갑했다.
◇ 노사는 그동안 뭐 했나
산업현장을 지키는 이는 노사다. 산업재해 사망자가 줄지 않고 있다면 노사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산업현장에서 도대체 뭘 했느냐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다.
경영계, 법 통과에는 "참담", 일하다 숨진 사람엔 "…"

김용근 경총 부회장(가운데)이 16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 입법 추진 관련, 30개 경제단체·업종별협회 공동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SG, 근로자 생명·건강에 대한 사회적 책임 포함
현장 상주하는 노조, 사고 나면 등장…예방 활동은?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야가 합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을 철회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스웨덴 TCO가 만든 안전인증은 EU 표준, 미국 건설노조는 안전예방 활동 도맡아
미국 건설노조는 건설현장에 노동자를 배치하면서 안전사고 예방 활동과 책임을 노조 책임 하에 철저하게 수행한다. 안전모를 안 쓰는 등 안전수칙을 위반하면 노조가 조합원을 일터에서 쫓아낸다. 이런 게 산업현장에서 노조가 할 역할 아닐까.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