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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청바지가 혼자 걷네···VR·AR로 만든 가상 패션제국

중앙일보 2021.01.09 06:00
지난달 18일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펜디’가 가상현실(VR) 매장을 공개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갤러리아 백화점 1층 펜디 매장을 그대로 구현한 것으로 실제 구조와 상품 배치, 세부 인테리어와 마감재까지 실감나게 표현했다. 에스컬레이터와 비상구, 주변 매장까지 있어 마치 실제 백화점을 거니는 듯하다. 판매대에 놓인 제품을 클릭하면 제품에 대한 상세 설명이 나오고, 온라인 몰로 연동도 된다. 매장 방문이 어려운 코로나19 시대에 등장한 신개념 가상 매장이다.  
패스커가 만든 펜디 가상현실(VR) 매장. 실제 백화점 매장과 똑같이 꾸며 언제어디서나 스마트폰으로 접속해 구경할수 있도록 했다. 사진 펜디

패스커가 만든 펜디 가상현실(VR) 매장. 실제 백화점 매장과 똑같이 꾸며 언제어디서나 스마트폰으로 접속해 구경할수 있도록 했다. 사진 펜디

 

‘패스커’ 만든 FNS홀딩스 최현석 대표 인터뷰

놀라운 건 이 가상 매장을 단 열흘 만에 개발하고 선보였다는 점이다. 이탈리아 펜디 본사에 최종 확인을 받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실제 개발에 걸린 시간은 더 적다. “한국 스타일로 빨리해드렸는데 이 품질로 이렇게 빠르게 해냈다는 데에 본사도 놀란 눈치였어요. 코로나 19로 비대면이 화두다 보니 펜디 매장을 보고 다른 패션 회사는 물론 가상 모델하우스 제작 요청까지 들어오고 있죠.” FNS 홀딩스 최현석 대표의 말이다.  
지난 7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위치한 패스커 사무실에서 최현석 대표(오른쪽)와 김은혜 부사장을 만나 인터뷰했다. 최 대표는 네이버에서 서비스 개발 및 기획을, 김 부사장은 샤넬, 디올 등 럭셔리 패션 회사에서 디지털 전략을 구상해왔다. 사진 FNS 홀딩스

지난 7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위치한 패스커 사무실에서 최현석 대표(오른쪽)와 김은혜 부사장을 만나 인터뷰했다. 최 대표는 네이버에서 서비스 개발 및 기획을, 김 부사장은 샤넬, 디올 등 럭셔리 패션 회사에서 디지털 전략을 구상해왔다. 사진 FNS 홀딩스

 

VR·AR로 ‘손에 잡힐듯한’ 패션

FNS 홀딩스는 모바일 패션 콘텐트 플랫폼 ‘패스커’를 운영하는 기술 기반 패션 스타트업이다. 패스커는 ‘디지털 네이티브를 위한 패션 놀이터’라는 콘셉트로 약 20만명의 가입자가 활동하는 앱(애플리케이션)이다. 패션 뉴스와 신제품 정보가 올라오는 건 다른 패션 앱과 비슷하지만, 2D가 아닌 3D로 가상·증강 현실 기술이 더해진 콘텐트가 올라온다는 게 색다르다. 예를 들어 리복의 신발 사진이 3D로 등장하고, 증강현실 카메라를 활용해 우리 집 식탁 위에 올려볼 수도 있다.  
패스커의 3D 쇼룸. 3D 기술이 적용된 제품 사진을 360도로 돌려가며 관찰할 수 있다. 사진 패스커 앱 캡처

패스커의 3D 쇼룸. 3D 기술이 적용된 제품 사진을 360도로 돌려가며 관찰할 수 있다. 사진 패스커 앱 캡처

 
최 대표는 네이버에서 푸디·스노우·룩스 등을 개발한 신규사업팀에서 일하다 2018년 11월 창업했다. 얼굴 사진을 찍으면 그 위에 가상으로 메이크업을 해주는 어플 ‘룩스’를 개발하면서 창업의 꿈이 시작됐다. 당시 3D·VR 기술이 조금씩 패션·뷰티 분야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가상 패션 콘텐트가 유망하다는 판단에 회사를 차리고 샤넬·디올·신세계인터내셔날 등에서 디지털 전략을 구상해왔던 김은혜 부사장을 영입했다. 최 대표는 “패션은 만국 공통 언어”라며 “기반 기술이 있으니 앞으로의 소비 세대인 MZ세대가좋아할 만한 패션 콘텐트를 디지털에서 제대로 보여주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창업 계기를 밝혔다.  
 
패스커에선 3D 기술로 제품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이를 360도 회전시켜 세부도 보여준다. 증강현실(AR)기술로 내 집 바닥에 가상으로 제품을 올려둘 수도 있다. 가상이지만 마치 실제 존재하는 운동화, 가방 같다. 이런 ‘초 실감’ 콘텐트 제작을 위해서는 꽤 까다로운 기술이 필요하다. 같은 3D 촬영물이어도 광원의 위치와 조도에 따라 우리 눈이 인지하는 깊이가 다르다는 점을 반영해 보다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관련 특허만 22건 보유하고 있다.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해 앱에 올라온 운동화 사진을 내가 있는 공간으로 끌어와 보여주고 있다. 사진 패스커 인스타그램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해 앱에 올라온 운동화 사진을 내가 있는 공간으로 끌어와 보여주고 있다. 사진 패스커 인스타그램

 
현재 패스커에선 디지털 기술에 목마른 100여개 패션 브랜드들과의 협업이 활발하다. 실감 나는 패션 정보를 얻으러 앱에 들어온 이용자들이 자신의 스타일을 뽐낼 수 있도록 인증샷을 올리는 공간도 있다. 아직은 판매로 연동되는 기능을 넣지 않고 철저히 콘텐트 공유 기능으로 꾸려가고 있지만, 최현석 대표의 가까운 목표는 ‘넥스트 파페치’다. 파페치는 세계 최대 온라인 명품 편집숍이다. “명품 브랜드는 제품 하나를 판매하는 게 아니라 매장의 분위기, 시각적 이미지, 고객 응대 등 제품을 둘러싼 여러 가지 총체적 경험을 판매해요. 지금의 온라인 숍만으로는 한계가 있죠. 기술 기반의 실감 콘텐트로 온라인 쇼핑의 한계를 메울 수 있지 않을까요.”
 

옷 아닌 디자인 파는 가상 패션 시대 눈앞

지금은 실제 옷과 가방, 신발을 기반으로 가상 패션 콘텐트를 만들고 있지만, 최현석 대표는 앞으로는 가상으로만 존재하는 옷을 판매하는 시대가 올 것으로 예상한다.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루이비통’은 지난 2019년 가상으로 가방을 만들어 이용자들이 사진으로 소유할 수 있도록 출시한 적이 있다. 2019년 열린 한 디지털 콘퍼런스에선 실물이 없는 가상 의상이 9500달러(약1035만원)에 판매되기도 했다. 구매자는 디자이너에게 얼굴 사진을 보내 해당 옷을 입은 것처럼 파일을 받아 자신의 SNS에 업로드 했다.  
디지털 패션 하우스 '패브리컨트'가 9500달러에 판매한 가상 의류. 사진 패브리컨트 홈페이지

디지털 패션 하우스 '패브리컨트'가 9500달러에 판매한 가상 의류. 사진 패브리컨트 홈페이지

 
최현석 대표는 “글로벌 금융 기업 바클레이 카드가 영국인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10명 중 1명이 소셜미디어에 공유할 목적으로 한 번 입을 옷을 구매한다”며 가상 패션에 대한 수요를 설명한다. 굳이 한 번 입을 옷을 사지 말고 가상으로 구매해 입으면 불필요한 생산을 막을 수 있으니 최근 패션계에 부는 ‘지속 가능성’ 가치와도 부합된다. 노르웨이에선 SNS에 올리는 가상 의류를 판매하는 브랜드 ‘칼링스’가 탄생하기도 했다. 물론 가상 패션이지만 실제 내가 입고 사진을 찍은 것처럼 실감 나야 하기에 기반 기술이 필요하다.  
노르웨이 '칼링스'가 발표한 디지털 컬렉션 '네오-엑스'를 입은 이용자들. 이용자가 자신의 사진을 업로드한 후 디지털 제품을 구매하면 칼링스의 3D 디자이너 팀이 실제로 제품을 입고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이미지에 옷을 맞춰 제공한다. 사진 칼링스 홈페이지

노르웨이 '칼링스'가 발표한 디지털 컬렉션 '네오-엑스'를 입은 이용자들. 이용자가 자신의 사진을 업로드한 후 디지털 제품을 구매하면 칼링스의 3D 디자이너 팀이 실제로 제품을 입고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이미지에 옷을 맞춰 제공한다. 사진 칼링스 홈페이지

 
가상 패션 시장이 활성화된다면 디자이너 입장에선 재고 부담 없이 자신의 디자인을 시험해볼 기회가 될 수 있다. 소비자는 가상으로 디자인을 먼저 구매한 뒤 마음에 들면 추가 금액을 내고 실제 옷을 제작할 수도 있다. 실제 생산 공정에 들어가지 않아도 디자인을 가상공간에서 마음껏 소비한다는 점에선 디자이너들에게 새로운 장이 열릴 수도 있다. “이모티콘을 구매하듯이 가상으로 만들어진 샤넬·구찌 가방을 사서 친구에게 선물하는 시대가 올지도 몰라요. 미국에선 가상 피팅·패션 시장을 10조원 규모로 예상하죠. 우리가 만든 패스커가 이런 가상 패션 콘텐트가 모여드는 성지가 되었으면 합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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