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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권력 핵심 혁명수비대, 대미 협상력 높이려 ‘꼼수’

중앙선데이 2021.01.09 00:23 719호 12면 지면보기

[SUNDAY 진단] 한국 유조선 나포 속셈

혁명수비대가 2019년 9월 테헤란에서 군사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혁명수비대가 2019년 9월 테헤란에서 군사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란 혁명수비대가 1월 4일 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을 항해하던 한국 선적의 화학제품운반선 한국케미호를 나포해 호르무즈 해협 북측의 자국 항구인 반다르아바스에 억류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란 당국은 해양오염을 내세우지만 수긍하기 쉽지 않다. 이란 당국이 근거를 내놓지도 못하는 건 물론, 인근에서 유출 사고 소식도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혁명수비대, 신정체제 옹호 임무
막후서 권력 좌우 ‘딥 스테이트’

미 제재·코로나 겹쳐 경제난 가중
바이든 행정부와 협상에 달려

영국 선박 억류로 성과, 다시 납치
미사일 대가 치른 북한처럼 될수도

해양오염이 있었다면 피해를 파악하고 원인을 조사한 뒤 인도적으로 선원들을 풀어주고 필요한 조처를 하면 된다. 하지만 이란 국내 반응은 결이 사뭇 다르다. 혁명수비대는 헬기와 고속정을 동원하고 무장 병력을 승선시켜 한국의 비무장 상선을 나포하는 장면을 영화처럼 촬영해 이란 반관영 파르스 통신과 민영 타스님 통신을 통해 공개했다.
 
왜 이런 퍼포먼스를 벌였을까. 현지의 일부 보도를 보면 속내를 짐작할 수 있다. 2002년 창간된 개혁성향의 일간지 에트마드는7일자 4면 톱으로 한국의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 본사 사옥 사진을 싣고 ‘도둑맞은 이란인 지갑’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란 중앙은행의 원화 계좌가 개설된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 등 한국 금융기관은 이란산 석유 수출대금 70억 달러를 동결하고 있는 상황과 관련이 있다. 이 돈이 미국 경제제재를 받는 이란에 흘러가면 미국은 해당 금융기관이 미국과 거래하지 못하도록 세컨더리 보이콧을 가할 수 있다. 국제금융 기능이 마비되면 3조5000억원의 자산에 1만4000명의 직원을 고용한 우리은행이나 3조2000억원 자산에 9300여 명이 일하는 기업은행이 흔들릴 수 있다.
  
‘도둑맞은 이란인 지갑’ 이란 일간지 보도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이란이 1월 20일 출범하는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와 이란핵합의(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 재협상을 앞두고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서 미국의 동맹인 한국의 선박을 나포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란핵합의는 2015년 7월 14일 이란과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 등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 그리고 유럽연합(EU)이 체결한 협정이다. 이란이 핵무기 개발과 핵 활동을 중지하면 국제사회는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푼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2017년 1월 들어선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에 3가지를 추가로 요구했다. 첫째, 2025년 10월 18일까지 모든 제재를 해제한다는 조항이다. 트럼프는 이란이 그 뒤 핵 개발을 할 수 있다며 이의 철폐를 요구했다. 둘째가 탄도미사일 제한의 추가다. 셋째는 핵사찰 대상을 군사시설을 포함한 이란 전역으로 확대하자는 내용이다. 이란이 응하지 않자 미국은 2018년 5월 8월 핵합의에서 단독으로 탈퇴하고 금융거래·무역 금지 등 경제제재를 복원했다.
 
이란이 응할 수 없었던 것은 탄도미사일도 제한과 군사시설 사찰 조항이 권력 중추인 이란혁명수비대(IRGC)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체제에 비수를 들이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권력구조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란은 국민 선거로 선출한 대통령과 국회 위에 이슬람 시아파 법학자들이 뽑은 최고지도자(라흐바르무하잠)가 군림하는 독특한 권력 체제를 유지한다. 최고지도자는 행정·입법·사법을 감독하고 선출직과 법관을 포함한 고위공직자의 임면권을 보유한다. 이란은 이를 종교와 권력의 견제와 균형으로 설명하지만, 서구에선 종교 우위의 신정 체제로 본다. 현재 최고 지도자는 알리 하메네이로 1989년 초대 최고지도자 루흘라 호메이니가 별세하자 뒤를 이어 30년 이상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올해 82세여서 후계 경쟁이 물밑에서 벌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이란 체제를 ‘옹위’하는 핵심이 바로 혁명수비대(세파·병력 19만명 추정)다. 지역방위를 맡은 국군(아르테슈·병력 35만~55만명 추정)과 함께 정규군을 형성한다. 한 나라에 선출된 권력 위에 종교 권력이 있고, 군대도 2개인 셈이다. 혁명수비대는 기동전·특수전과 해외작전 그리고 보안 활동을 통한 정권 호위 임무를 맡는다. 최고지도자는 국군과 혁명수비대 모두의 최고사령관을 겸한다. 한국 선박을 억류한 혁명수비대는 군대 수준을 넘어 막후에서 이란을 좌우하는 딥 스테이트인 셈이다. 해결이 녹록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다.
 
이란 일간지 에트마드는 한국의 은행 본사 사옥 사진을 싣고 ‘도둑맞은 이란인 지갑’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홈페이지 캡처]

이란 일간지 에트마드는 한국의 은행 본사 사옥 사진을 싣고 ‘도둑맞은 이란인 지갑’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홈페이지 캡처]

혁명수비대의 속셈은 무엇일까. 지난해 7월 영국 유조선을 불법 항해라는 황당한 이유로 호르무즈 해협에서 나포해 65일간 억류하면서 상당한 ‘전과’를 올린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그 직전 시리아로 향하다 지중해 입구의 영국령 지브롤터에서 EU의 대시리아 제재위반 혐의로 억류됐던 이란 유조선 석방과 사실상 교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혁명수비대는 이란 국민에게 존재 이유를 각인시켰다. 이번 한국 선박의 나포와 억류도 영국 유조선 억류의 데자뷔를 노렸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왜 이 시점일까. 이란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부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6월 18일로 예정된 이란 대선이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후보는 이슬람 당국의 심사를 거쳐야 출마할 수 있기 때문에 신정체제에 순응하는 인물일 수밖에 없지만, 그 안에서도 보수파와 개혁파가 별도로 존재한다. 현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시아파 사제로 이란에선 개혁파 정치인으로 통한다. 이번 대선에선 2005~2013년 대통령은 지낸 강경 보수파 정치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의 출마가 유력하다. 지난해 10월 여론조사에서 아마디네자드가 37%로 1위를 차지했다. 보수파인 무함마드 갈리바프 전 테헤란 시장은 10%의 지지를 얻었다.
 
둘째는 코로나19 사태다. 글로벌 통계사이트인 월도미터에 따르면 이란은 1월 8일 현재 확진자가 126만 명에 사망자가 5만5000명에 이른다.
 
셋째가 경제난으로 인한 국민의 불만 고조다. 이란 경제는 2018년 미국 제재의 부활과 국제적인 저유가, 그리고 코로나19가 겹치면서 계속 뒷걸음질이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에 따르면 경제성장률이 2018년 -5.4%, 2019년 -7.6%에 이어 2020년에는 -6.0%로 추정된다. 주요 외화획득원인 석유와 가스의 수출과 관광객 유치가 발목이 잡혀 있다. 이란으로선 어떻게든 바이든 행정부와 협상해 숨통을 열고 한국 등과 협의해 백신을 구해야 할 처지다.
 
하지만 선박 억류는 합리적이지도, 효과적이지도 않아 보인다. 특히 오는 20일 취임할 조 바이든에게 오히려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 79년 11월 4일 벌어져 444일 만인 81년 1월 20일 끝난 테헤란 미국 대사관 인질사건에 대한 악몽을 떠올릴 수 있어서다. 당시 바이든은 연방상원의원으로서 같은 당 소속의 지미 카터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미국인의 이란에 대한 원한과 대이란 강경 여론·정책의 뿌리가 당시 인질극에서 비롯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한국, 미·이란 사이서 현실적 외교 필요
 
이란이 만일 선박 억지 억류로 대미 협상력을 높이려고 시도한다면 이에 대한 반면교사도 있다. 바로 북한이다. 북한은 자국을 불량국가로 거론한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임기를 끝내고 2009년 1월 20일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하자 몸값을 올리려고 시도했다. 그해 4월 5일 우주 발사체라 주장하며 은하 2호 로켓을 발사했는데, 미국은 이를 대포동 2호 탄도미사일 발사 도발로 봤다. 북한은 그해 5월 25일 2차 핵실험을 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이 비핵화 협상을 위한 루비콘 강을 건넌 것으로 간주했다. 북한은 한술 더 떠 그해 11월 3일 8000개의 사용 후 연료봉 재처리를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핵무기 제조용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전쟁도, 협상도 아닌 진지전·장기전을 준비했다. 2010년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전략적 인내’ 전략을 제시했다. 북한의 도발을 무시하고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등을 통한 경제제재로 고사를 시도한다는 내용이다. 북한은 이렇게 미국과 대화와 협상 통로를 스스로 막았다. 손실은 고스란히 봉쇄를 당한 북한의 몫이었다.
 
이란은 이러한 과거 사례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 평화롭게 항해하던 한국 선박을 억류하는 ‘꼼수’로는 혁명수비대가 최고지도자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도 없다. 이란 국민이 백신을 구하기도 더욱 힘들어진다. 게다가 새로 들어설 바이든 행정부와 협상력을 높이기는커녕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의 핵심은 한국이 미국과 이란 사이에 낀 게 아니라, 다급한 이란이 스스로 근시안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란에 당당하게 할 말은 하고 협력할 일을 찾는 적극적이고 현실적인 외교가 필요하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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