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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커버 스토리 | 超유동성 파티에 울고 웃는 국민경제

중앙일보 2021.01.09 00:03

억대 연봉보다 강남 아파트와 삼성전자 주식이 부러운 세상

코로나19 확산이 가속화한 각국의 돈 풀기 정책, 바이든 정부 출범이 기름 부은 격
위험자산에 투자 쏠리고 사회 양극화는 심화… “유동성 거둬들이지 않는 한 지속될 것”

‘화폐가치 하락’ 공포심 먹고 자산소득만 기형 성장

서울 강남 지역의 허름한 판잣집 저편에 초고층 주상복합이 보인다. 세상에 돈이 많이 풀릴수록 양극화는 극심해지고 있다.

서울 강남 지역의 허름한 판잣집 저편에 초고층 주상복합이 보인다. 세상에 돈이 많이 풀릴수록 양극화는 극심해지고 있다.

'벼락거지.’ 2020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신조어 중 하나다. 벼락부자는 들어봤어도 벼락거지는 생소하다. ‘열심히 일한 돈 아끼고 모아서 저축했더니 신분 상승은커녕 유지하기조차 버겁다’라는 체념과 분노의 정서가 배어 있다. 시중에는 “누군가의 자산 형성은 ‘문재인을 언제 만났느냐’에 따라 갈린다”는 냉소가 전파되고 있다. ‘문 대통령이 부동산값을 너무 올려놔 집 살 기회조차 박탈당한 20~30대는 부(富)의 사다리가 사실상 끊어진 상태’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제2금융권 회사에 다니는 30대 후반 A씨는 문 정부 집권 초에 서울 마포구 상수동 래미안밤섬레비뉴를 샀다. “사려고 산 게 아니었다. 전세를 2년 더 연장하고 싶었는데 집주인이 다짜고짜 ‘나가라’고 했다. 서러운 마음에 단지 안의 다른 동 아파트를 샀다. 우리 부부가 모두 대출을 최대한 당겼다.” 당시 8억원이었던 집값(전용면적 84㎡ 기준)은 현 시세가 15억원에 달한다. 1주택자인 그는 “2017년에 내가 착한 집 주인을 만나서 전세를 연장했더라면 어쩔 뻔했느냐”며 기쁨보다 안도감을 표시했다.
 
부산에서 사는 30대 초반 여성 B씨는 요즘 밤잠을 설친다. 3년 전에 결혼한 그는 대연동 롯데캐슬에서 전세로 신혼살림을 꾸렸다. 1년 전 전세계약 만기가 돌아왔을 때 집주인이 “집을 팔겠다”며 구입 의향을 물었다. B씨 부부는 고민 끝에 거절했다. 내집마련을 원했지만 원하는 층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 부부는 후회가 앞섰다. 부산의 부동산 규제가 풀리면서 1년이 채 안 돼 가격이 4억 넘게 폭등한 것이다. 갓난아기를 키우는 맞벌이 부부에게 브랜드 신축 아파트 입주는 아예 꿈꾸기 어렵게 됐다. 그사이 통과된 임대차법 탓에 전세로 계속 거주할 수 있을지 조차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왜 비싸도 서울 아파트를 살까?

2013년 분양 당시 평당 4000만원이었던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는 현재 평당 1억원을 돌파했다.

2013년 분양 당시 평당 4000만원이었던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는 현재 평당 1억원을 돌파했다.

40대 초반 회계사 C씨 부부는 강남에 거주하는 억대 연봉 고소득자다. C씨의 남편은 집값 하락론자였다. 주식은 해도 집은 사려 하지 않았다. 7~8년 전 C씨는 어머니 권유로 삼성동 힐스테이트를 사려고 했다. 그때도 남편 반대로 뜻을 접어야 했다. 같이 갔던 친구는 그 아파트를 사놓고 주재원으로 발령받은 남편과 외국으로 나갔다. 반면 C씨는 서초구 신축 아파트에 10억짜리 전세를 살았다. 현재 두 집의 부동산 자산 격차는 못해도 15억원 이상 벌어졌다. 한순간의 선택치곤 너무나 가혹한 결과다. C씨는 남편에게 “집을 살 거냐, 이혼할 거냐”고 말할 정도로 한때 부부 사이에 냉기가 흘렀다. 그 후 운 좋게도 광진구 신축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다. 그나마 현금이 많아서 가능했던 일이다.
 
‘집 없으면 벼락거지’란 말이 나올 정도로 부동산에 돈이 몰린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만 해도 정부에서 “빚을 내서 사라”고 해도 주저하던 것이 아파트였다. 현재 대한민국 대장 아파트로 꼽히는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도 2013년 당시 미분양이 났을 정도다. 그때는 틀렸던 서울 아파트가 지금은 맞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저금리가 불러온 유동성의 여파다. 비단 한국에 국한되지 않는 세계적 트렌드다. 코로나19 대유행의 대응 과정에서 그 속도는 한층 더 빨라졌다.
 
경제 침체(디플레)를 막기 위해 각국 정부는 돈을 무더기로 찍어낸다. 중앙은행에서 찍어대는 것이 아니다. 국채를 발행한 만큼 통화를 유통한다. 한국의 경우, 2020년 10월 기준 중앙정부 채무는 812조9000억원(기획재정부 통계)으로 나타났다. 1년 만에 채무가 113조9000억원 증가했다. 정부는 2021년 국가채무를 956조로 추산한다. 국가채무 비율은 국내총생산(GDP)의 47.3% 수준이다. 40%를 넘기지 않는 불문율은 깨진 지 오래다.
 
빚이 쌓여서 감당하기 어려워질수록 가장 ‘쉬운’ 해결 방법이 있다. 돈을 더 찍어내는 것이다. 가령 돈을 두 배로 찍어 낸다면, 갚아야 할 액수는 그대로지만 실제 부담은 절반으로 줄어든다. 다시 말해 화폐가치 하락이 발생하는 것이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의 CEO인 레이 달리오는 이를 “Cash Is Trash(현금이 쓰레기처럼 취급받는 세상)”라고 압축했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이런 돈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화폐가 많이 풀릴수록 가치가 떨어지니 부동산, 주식, 금, 비트코인 등 뭐라도 사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위 ‘자산시장으로의 에셋 파킹(Asset Parking)’이 일어났다. 이런 흐름에서 현금 보유는 가장 위험한 투자로 전락했다. 현금 자산은 일종의 풋옵션(디플레에 베팅하는) 투자가 된 것이다. 주요국 정부는 1980년대 말 버블 붕괴 후 일본이 빠져든 장기침체를 막기 위해 헬리콥터에서 돈을 퍼붓듯 양적완화를 시행했다. 그 결과 착실히 현금을 모으는 사람은 가만히 앉아서 자산 하락을 경험하게 됐다. 벼락거지라는 용어도 여기서 유래했다.
 
한국 국민이 자산시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안전자산은 서울 핵심지의 아파트다. 부동산은 실체가 있다. 설령 하락해도 나와 내 가족이 눌러살면 된다. 학군과 커뮤니티를 갖춘 강남과 직주근접성이 탁월한 마포·용산·성동 등의 아파트는 갈수록 값이 오르고 있다. 이들 아파트가 가격 상승을 리딩하자 서울 주변, 수도권, 지방 주요 도시, 지방 변두리 도시 순서로 ‘키 맞추기’ 상승장이 전개됐다.
 
 

월세 시대 오면 ‘욜로 라이프’도 버거워져

2020년 5월, 샤넬이 가격 인상을 예고하자 그 전에 사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 명동 롯데백화점 명품관을 에워쌌다. / 사진:연합뉴스

2020년 5월, 샤넬이 가격 인상을 예고하자 그 전에 사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 명동 롯데백화점 명품관을 에워쌌다. / 사진:연합뉴스

아무리 정부가 수요를 억제하려고 규제를 가해도 돈의 힘으로 밀려 올라가고 있다. 정부는 2020년 7·10 대책을 통해 2주택자 이상 취득세 중과를 시행했다. 사실상 다주택자의 진입이 막혔음에도 집값이 폭등하는 건 철저한 실수요장이라는 뜻이다. 어쩔 수 없이 집을 사는 ‘패닉 바잉’, ‘체념 바잉’의 출현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문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공급에 주력하고 있다. 시장은 이를 ‘현 정부가 아파트를 안 짓겠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유동성이라는 폭약이 깔려 있는 환경에 정부 정책이 기름을 부은 격이다. 트리거는 2020년 7월 문 정부와 민주당이 통과시킨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 청구권이었다. 전세 매물이 씨가 마르게 되자 무주택자들은 외곽에 있는 아파트라도 구입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서울에서 6억 이하 아파트는 씨가 말랐다. 저가주택이 거래량을 동반한 신고가를 찍는다는 건 집값의 하방경직성이 생겼다는 의미다. 밑에서 가격을 받쳐주자 가격이 비싼 주택은 밀려 올라갔다. 2019년 12월 시행된 15억 대출 금지 규제도 무력해졌다. 강북 핵심지 신축 아파트 25평은 이미 15억을 돌파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돈을 마련해 사는 것이다.
 
초(超)유동성 시대는 사회인식까지 변화시켰다. 승진하고 임원으로 올라가는 게 더는 ‘직장인의 로망’이 아닌 세상이 됐다. 직장에서 유능한 상사라도 무주택자이거나 집이 외곽 지역에 있으면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다. 강남 부동산과 삼성전자 주식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느냐, 증여·상속 받을 부모님 재산이 얼마나 되느냐 등이 훨씬 중요해졌다. 노동의 가치가 ‘폭락’한 셈이다. 공기업 직원인 40대 중반의 D씨는 2020년 시세차익만 대략 10억으로 예상돼 로또로 통하는 강남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다. 지금까지 여의도에서 전세로만 살았고, 아이가 둘이나 있어서 가능했다. 그래도 청약 아파트에 입성하려면 12억~13억 이상의 돈이 필요했다. ‘자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고 묻자 그는 “외벌이인 나한테 그 많은 돈이 어디 있겠나? 아버지가 강동구의 재건축아파트를 매도하면 증여받을 것”이라고 답했다.
 
돈이 흘러넘치는 세상에서 ‘부동산과 주식이 떨어질 것’이란 하락론은 자취를 감췄다. 하락론자들은 언제나 그 근거로 수요론을 강조했다. ‘꼭지인데 그 가격에 살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시각이다. 그러나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어제의 호가가 오늘의 실거래가가 되는 세상’이 현실이다. 족집게로 인정받는 부동산 전문가는 익명을 전제로 서울 핵심지 아파트에 관해 이런 말을 했다. “서울 사람이 다 사면 지방 사람이 산다. 지방 사람이 다 사면 중국 사람이 산다. 중국 사람이 다 사면 외계인이라도 와서 산다.” 그는 “세상에는 나만 빼고 돈 많은 사람이 진짜 많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초유동성 시대의 끝이 좋을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고, 심화하고 있다. 가령 현재 경제활동에 갓 참여한 20~30대 앞에는 내집마련을 포기하고, 욜로(Yolo)로 즐기는 삶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실제 벤츠 등 고급수입차 매출은 코로나19 와중에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2020년 국내 완성차 5사의 자동차 내수 판매는 18년 만에 최대(160만 대 이상)를 기록했다. 샤넬, 버버리, 몽클레어 등 백화점 명품 매장을 가보면 대기번호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임대차법으로 전세가 사라지면 이마저도 여의치 않게 된다. 주로 월세만 남게 되고, 그것도 가격이 폭등할 것이다. 수요·공급 밸런스가 붕괴한 데다가 보유세 인상 부담을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월세 내면 남는 게 없는 팍팍한 인생이 젊은 세대를 압박하고 있다. 이를 조정하기 위해 문 정부는 부동산 관련 세금을 강화하고, 주식에도 양도세를 매기려 했다. 그러나 취득세 강화는 ‘이번에 팔면 다시는 집을 더 살 수 없다’, 양도세 강화는 ‘팔아봤자 정부에 세금으로 다 뺏긴다’는 역효과를 불러왔다. 보유세와 종부세 강화도 “집값이 세금보다 훨씬 많이 올라가니까 카드빚을 내서라도 버틸 것”이라는 반발만 불러왔다. 경제학계에서는 ‘세금은 가격에 가산된다’가 정설로 통한다. 정책은 매물 잠김을 불러왔고, 전·월세마저 줄어드는데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집은 빵처럼 만들 수 없다”며 당장의 공급절벽이 불가피하다고 시인했다. 은행 PB센터에는 부자들의 부동산 증여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다주택자들은 유동성장에서 가장 안전하며 수익률이 좋은 서울 아파트를 내놓을 생각이 없다.
 
이 와중에 국토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변창흠 LH 사장은 자신의 소신과 결이 다르게 2006년 서초구 방배동 대형평형 아파트를 카드회사 대출에 의존해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공공임대주택·환매조건부주택 정책 등을 중시하는 변 후보자를 발탁하자 부동산시장은 청문회 통과 전부터 공급 기대를 접고, 상승으로 방향성을 굳히는 추세다.
 
 

5만원권이 돌지 않는다

2020년 11월 25일, 미국 다우지수가 124년 만에 3만 포인트 고지를 넘어섰다. / 사진:AP연합뉴스

2020년 11월 25일, 미국 다우지수가 124년 만에 3만 포인트 고지를 넘어섰다. / 사진:AP연합뉴스

광기에 가까운 자산시장의 상승을 진정시킬 근본적 해법은 금리 인상뿐이다. 그러나 인플레(물가상승)보다 디플레(경기침체)가 우려되는 국면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한국을 포함한 각국 정부의 고민은 돈을 아무리 풀어도 정작 실물경제로 돌지 않고, 자산 버블만 키우고 있는 현실에 있다. 2020년 11월 30일 한국은행은 “1~10월 5만원권 환수율은 25.4%”라고 발표했다. 2018년(67.4%)과 2019년(60.1%)에 비해 훨씬 낮아졌다. 5만원권을 21조9000억원어치 발행했는데 한국은행 금고로 돌아온 돈은 5조6000억원에 불과했다. 그만큼 현금이 잘 돌지 않는다는 증거다.
 
문 정부는 2020년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 두 차례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이 중 전 국민에게 지급했을 때 훨씬 경제에 도움이 된 것으로 확인됐다. 있는 사람들은 그 돈을 쓰지만, 없는 사람들은 비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또 모든 국민에게 지원금을 뿌릴 재정 여력은 여의치 않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한국의 양적완화가 제한적인 데 비해(기축통화국인) 미국, 일본, EU 등은 훨씬 공격적으로 돈을 찍어대고 있다. 그 결과가 원화 강세(원·달러 환율 하락)다. 2020년 12월 16일 코스피시장은 사상 최고치인 2771.79를 찍었고, 대장주 삼성전자는 7만원을 훌쩍 넘겼다. 12월 3일 원·달러 환율은 1100원 선이 깨졌다. 환차익을 노린 외국인 투자자들이 집중적으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우량주를 매입한 결과, 단기간에 급등이 이뤄졌다. “2020년에 주식으로 돈 못 번 사람은 앞으로 주식 하지 말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강세장이다.
 
디지털 암호화폐 비트코인도 고점을 회복했다. 전통적 안전자산인 금은 상대적으로 부진하다. 세상이 코로나19 이후의 장밋빛 미래로 부풀어 있다는 시그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0년(11월까지) 은행권 가계대출은 982조1000억원에 달한다. 11월 한 달에만 무려 18조원이 늘었다. 연간으로 따져도 가계대출 100조원을 넘겼는데 이는 2015~2016년에 이어 사상 세 번째다.
 
신용대출을 받아서라도 부동산, 주식 사는 데 보태지는 것으로 나타나자 정부는 부랴부랴 조이기에 들어갔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차관은 12월 8일 “시중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에서 조만간 백신 보급이 본격화하면 국내·외 경제 회복세가 뚜렷해지고 자산 가격이 동반 상승할 수 있다”며 “여기에 기대심리까지 더해지면 가격 상승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 자산시장의 이상 과열 가능성에 대해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장은 ‘정부는 단기적으로 손쓸 방도가 없다고 고백한 것’이라고 거꾸로 해석한 모양새다. 은행이 막히자 저축은행이나 캐피털 등 제2금융권을 찾아가는 ‘대출 풍선효과’가 일어나고 있다. ‘노동소득보다 대출로 레버리지를 일으키는 게 더 능력자’로 여겨지는 셈이다.
 
 

거품은 터질까, 관리될까

2020년 11월 30일부터 정부가 신용대출 규제를 강화하자 은행 창구는 한산해졌지만, 사람들은 제2금융권을 찾아갔다. / 사진:연합뉴스

2020년 11월 30일부터 정부가 신용대출 규제를 강화하자 은행 창구는 한산해졌지만, 사람들은 제2금융권을 찾아갔다. / 사진:연합뉴스

초유동성 시대가 노동의 가치를 훼손하는 또 다른 이유는 소득세 증세에 있다. 이상민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서는 “아르헨티나처럼 부유세를 걷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미 정부 여당은 종합소득 과세표준 10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 이 구간의 소득세율을 기존 42%에서 45%로 인상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관철시켰다. 갈수록 직장에서 월급이 올라봤자 세금만 많이 내는 상황으로 흘러간다. 많든 적든 구성원 모두에게 납세의 의무를 나누는 국민개세(國民皆稅) 원칙은 실종됐고, 고소득자 증세만 강화하고 있다. 대기업 임원인 E씨는 “연봉 1억을 넘게 받아도 소득세로 원천징수 되고, 목동아파트 종부세와 보유세 내면 정말 살기 힘들다. 어디다 하소연할 수도 없다”고 호소했다.
 
초유동성 장세의 결말을 놓고 두 가지 전망이 팽팽히 맞선다. ‘이 거품은 언젠가 제대로 터질 것’이라는 견해와 ‘예전에 겪어본 적 없는 뉴노멀(new normal)이다. 거품을 관리하며 어떻게든 유지될 것’이라는 예상이 그것이다.
 
세계 경제의 방향타를 쥔 미국을 이끌게 된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는 당분간 확장 정책 기조를 유지할 게 유력하다. 12월 1일 ‘비둘기파’로 꼽히는 재닛 옐런 전 연준(Fed) 의장을 재무부 장관으로 지명한 것이다. 이후 미국 다우지수와 나스닥 등은 ‘안도 랠리’가 이어졌다. 전 세계는 바이든이 MMT(현대통화이론)를 어디까지 현실에 채용할 것인지 궁금해한다. MMT는 ‘정부가 돈을 무한대로 찍어내 경제를 받치자’는 학설이다. 그렇게 해도 ‘일본의 아베노믹스에 봤듯, 주류 경제학에서 우려하는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실제 코로나19 국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사실상 MMT에 근거한 재정정책을 폈다. 연준을 압박해 제로금리로 갔고, 2020년 상반기에만 3조4000억 달러의 재정을 집행했다. 이 중 절반이 저소득층 지원금으로 들어갔다. 사실 MMT는 진보적 경제 정책에 가깝다. 무소속 신분이지만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두 차례 도전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MMT 추종자다. 바이든의 TF팀에 샌더스의 경제 책사인 스테퍼니 캘턴스토니브룩 뉴욕 주립대 경제학 교수가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홍익희 세종대 교수는 “바이든 정부에서 향후 재정적자 확대와 부자증세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당초 미국 민주당은 2조2000억 달러의 추가 부양책을 내놓았다. 공화당의 반대에 부딪혀 난항이지만, 7480억 달러 규모의 부양책이 초당적으로 우선 합의될 것이란 기대감이 강하다. 게다가 2021년 1월 5일 조지아주 상원의원 선거(2석)가 예정돼 있다. 여기서 2석을 민주당이 모두 잡으면, 대통령·상원·하원을 모두 장악하는 ‘블루웨이브’가 실현된다. 미 대선이 끝났음에도, 공화당의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의 바이든 당선자가 조지아주 상원 선거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다.
 
 

'블루웨이브’ 실현되나

블루웨이브가 현실화하면 바이든의 ‘달러 뿌리기’는 더 탄력받는다. 홍 교수는 “현재 전 세계에 유통되는 본원통화 발행액은 7조1000억 달러 남짓이다. 바이든이 지향하는 추가 부양책, 그린 뉴딜정책 등이 가속화하면 이만큼의 돈이 추가로 풀릴 수 있다. 달러 약세, 국채금리 상승, 인플레이션 증가, 마이너스 실질 금리가 예약돼 있다”고 예측했다. 바이든과 민주당 진영은 인플레 발생은 금리 인상으로 비교적 쉽게 잡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들은 한번 걸려들면 빠져나오기 힘든 건 디플레라는 인식이 강하다.
 
실제 바이든 당선 유력을 기점으로 달러 약세는 초스피드로 진행됐다. 원·달러 환율은 12월 3일 1100원 선이 무너졌고, 12월 9일 1085원까지 내려갔다. 문재인 대통령은 12월 14일 “원화 강세로 수출 채산성이 약화되고 있는 것에 대한 지원 대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원·달러 환율 약세를 마냥 두고 보지 않겠다는 신호로 시장은 해석했다.
 
바이든 시대를 앞두고, 다우(3만 포인트 돌파)와 나스닥(1만2500포인트 돌파)은 연일 신고가를 새로 쓰고 있다. 친환경주로 꼽히는 전기자동차업체 테슬라는 불과 1년 사이에 주가가 8배 올랐다. 친환경을 앞세우는 바이든이 선거에서 승리하자 상승 동력은 더 강해졌다. 2020년 12월 테슬라 시가총액은 6000억 달러를 돌파했는데 이는 글로벌 9대 자동차 제조업체의 시총을 모두 합친 것(5377억 달러)보다 높다. 우리나라 ‘서학개미’ 투자자들은 2020년에만 테슬라 주식을 무려 32억1185만 달러나 사들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12월 14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기업의 현재 실적과 미래 가치를 보여주는 주가 상승세는 한국 경제의 희망을 보여주는 객관적 지표”라며 “코스피 3000시대 개막에 대한 희망적인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12월 1일 국무회의에서도 “어려운 여건 속에서 외국인과 기관이 주식을 팔고 나갈 때, 개인투자자들이 ‘동학개미운동’에 나서면서 우리 증시를 지키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호평했다.
 
 

3150조원이 풀려 있다

문 대통령의 ‘주가 3000시대’ 발언 하루 뒤인 12월 15일 한국은행은 ‘10월 중 통화 및 유동성’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시중 통화량은 광의통화(M2) 기준 무려 3150조원 넘게 풀려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더 주목할 사실은 통화량 증가 속도인데 2020년 4월부터 7개월 연속해서 9% 이상 통화량이 증가하고 있다. 지금의 부동산과 주식 폭등은 밸류에이션(내재가치) 상승보다 그저 돈이 흔해져서 벌어지는 현상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한국의 부동산, 주식 상승이 일본과 같은 버블이 아니라는 견해도 나온다. 부동산은 정부의 대출 규제로 ‘건전한 폭등’이라는 형용모순적 상황이 빚어졌다. 1980년대 말 빚으로 쌓아 올린 일본 부동산보다 하방경직성이 훨씬 탄탄하다는 의미다. 한국 증시 역시 (미국 주식이 꾸준히 우상향하는 동안) 박스권에 갇혀 있던 것을 고려하면, 이제야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시각도 나온다.
 
대개 한번 올라간 자산 가격은 전 세계를 초토화시키는 경제 위기가 오지 않는 한 꺼지지 않는다.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뒤 국민 사이에 ‘부동산과 주가 폭락은 저가매수 기회, 존버(끝까지 버티는 걸 의미)하면 결국 이긴다’는 학습효과가 생겼다. 실제 2020년 3월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릴 때도 부동산은 거의 떨어지지 않았고, 주식시장에는 소위 ‘동학개미’가 나타났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에는 내성이 생겼고, 주식 양도세 부과 움직임에는 정부 지지 철회 여론으로 압박했다.
 
한국갤럽 12월 11일 발표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지지율은 38%로 취임 후 최저로 나왔다.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평가는 54%로 가장 높았다. 40대를 제외한 모든 연령에서 부정이 긍정보다 많았다. 문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 중 1위는 부동산정책이었다. 특히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해보기도 전에 부(富)의 사다리가 끊긴 20대에서 부정(49%)이 긍정(33%)보다 16%나 높았다.
 
이런 민심이반은 2020년 4월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야당인 국민의힘이 우세할 것이라는 전망을 낳는다. 그러나 “부산시장은 몰라도 서울시장은 판세를 알 수 없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 견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부동산 올라서 겉으로는 다 죽겠다고 난리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라. 서울의 다주택자는 집값이 계속 오르니 좋고, 1주택자도 썩 나쁘지 않다. 어차피 서울 집이 언감생심이었던 무주택자는 정부가 부자들한테 세금 많이 걷고, 공공임대주택 등 주거복지 해준다니 싫을 리 없다. 초유동성 시대의 피해자는 내 집 마련의 꿈을 놓지 않고 착실히 저축한 사람들, 혹은 이제 막 경제 활동에 진입하려는 젊은 세대들이다.”
 
2020년 초 인천 송도 신축 아파트로 갈아타기에 성공한 40대 초반 대기업 직원 F씨는 “막차 탔다. 1년도 안 지났는데 집값이 3억 오르니 어안이 벙벙하다”고 말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을 키우는 맞벌이 부부인 그는 “인천에서 송도가 학군이 좋은 곳이다. 와이프가 말하길 이곳에서 집이 자가냐 전세냐, 엄마가 일을 하느냐 전업주부냐를 놓고 커뮤니티가 갈라진다고 한다. 이게 정상인가 싶다”라고 한숨지었다.
 
정부는 ‘공공임대주택을 많이 지어서 공급을 해결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상당수 시장 참여자들은 ‘내 아이에게 가난을 물려줄 수 없다’는 절박함으로 악착같이 집을 사고 있는 현실이다. 부동산이 오를수록 시드머니 확보를 위해 주식으로 뛰어들고 있다. 12월 15일 금융투자협회 조사에 따르면 빚을 내서 주식에 투자한 금액은 18조8486억원에 이른 상태다. ‘유동성 파티’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언젠가 파티가 끝났을 때, 멍하니 남아서 설거지를 감당해야 할 패배자는 누가 될까.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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