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찰·지자체 책임 미뤄 정인이 숨져, 현장 전문가 늘려야”

중앙선데이 2021.01.09 00:02 719호 4면 지면보기

아동 학대 왜 반복되나

8일 국회에서 이른바 ‘정인이법’이 통과됐다. 지난해 10월 생후 16개월 된 아기 ‘정인이’가 입양된 지 열 달만에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사건이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데 따른 것이다. 아동 학대 신고가 들어오면 즉시 조사와 수사에 착수하도록 의무화하고, 경찰관과 아동 학대전담공무원의 권한을 강화했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이하 대아협)는 정인이 사건을 알리기 위해 근조화환 보내기 운동, 피켓 시위, ‘정인아 미안해’ 실시간 검색어 운동 등을 펼쳤다.
 

공혜정 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
제도 나아졌지만 사람 안 움직여
아동 특성 잘 모르면 구출 힘들어

경찰 내 아동 학대 전담부서 개설
어린이집·학교 신고의무자 교육
가정위탁 제도 더 활성화 해야

공혜정

공혜정

지난해 경남 창녕의 맨발 탈출 아동 사건, 충남 천안에서 발생한 여행가방 감금 사망 사건, 인천 형제 화재 사건 등 아동 학대 사건이 잇따라 일어나면서 재발을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어느 때보다 확고하다. 하지만 2013년 울산 계모 사건을 계기로 아동 학대 방지를 위한 시민활동에 나선 공혜정 대아협 대표는 “8년 동안 달라진 것이 없고, 아이들이 죽어갈 때마다 회의감이 든다”고 토로했다.
 
끔찍한 아동 학대가 반복되는 이유는.
“7살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했던 울산 계모 사건 때도 국민들의 분노가 무척 강렬했다. 당시 1만1000여 건의 진정서가 접수됐다. 지난해 창녕, 천안 사건 때도 국회의원들이 앞 다퉈 법안 발의하고 우리에게 자문을 구했다. 대통령은 비서관을 창녕에 보내기까지 했다. 반응이 지금과 똑같다. 특히 피해아동의 얼굴과 이름이 공개되면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고 뜨거운 관심을 보인다. 그런데 반짝 관심이 사라지고 나면 달라진 것 없이 다시 제자리다. 지켜봐야겠지만 솔직히 이제 기대가 안 된다.”
 
어린이집 교사와 양모의 지인에 이어 A소아과 의사까지 아동 학대를 의심해 신고했지만 정인이를 살리지 못했다. 수사 및 조사에 나선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이하 아보전)이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다.
“경찰과 아보전, 지난해 10월 도입된 지방자치단체 소속 아동 학대전담공무원까지 세 주체로 책임이 분산돼 있다. 일은 나눠서 맡더라도 책임 소재는 한 곳으로 모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제껏 컨트롤타워가 없어서 협력이 안 된 건 아니다. 문제는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 거다. 법과 시스템이 있어도 사람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한다. 정인이 역시 경찰이든 아보전이든 현행 제도에 따라 제대로 개입했다면 충분히 살릴 수 있었다. 신고를 접수하고 수사하는 경찰과 지자체, 아보전의 초동 대응이 중요하다. 그 사람들이 아이들 생사를 가를 수 있다.”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동 학대전담공무원 도입을 지난해 3월에 발표하고 10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는데 7개월 동안 아무것도 안 하다가 부랴부랴 급조했다. 선무당이 사람 잡을까봐 걱정이다. 아동의 특성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매뉴얼만 외워서는 아이들을 제대로 구출할 수 없다. 아이가 부모한테 안겨있다고 해서 ‘애착관계 형성이 잘 됐다’고 해선 안 된다. 아이들은 부모가 아무리 위험한 존재여도 의지할 수밖에 없다. 생존본능이다. 지금이라도 전문성 있는 현장 인력을 길러내야 한다. 기계를 다루는 것도 전문가가 있는데 하물며 사람, 특히 자기표현을 못하는 아이들의 생명과 직결된 일에 전문가가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전문가 숫자도 늘리고 수당 지급 등 처우도 개선해야 한다. 경찰 내 아동 학대 전담 부서를 만들고 순환보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본다. 고위험군 아동을 발견하기 쉬운 어린이집, 초·중·고교와 연계하고 아동 학대 신고의무자에 대한 교육도 강화하는 것이 좋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아동 학대 의심 신고 시 보호자로부터 즉각 분리하는 방안도 나왔다.
“신고 횟수나 상흔 같은 기준만으로 학대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여러 정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전문가가 필요한 거다. 더욱이 지금은 쉼터 같은 보호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2019년 한 해 동안 재학대 피해아동이 2800명에 달하는데 쉼터는 70여곳뿐이다.(보건복지부 추산, 2019년 전국 학대피해아동쉼터 총 73곳에서 아동 1044명 보호) 당장은 분리 조치해도 아이들을 수용할 곳이 없으면 다시 가정으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다. 보호시설을 늘리기 위해 인력과 예산도 필요하다. 시간이 걸린다면 우선 가정위탁 제도를 활성화하는 방법도 있다. 이미 가정위탁지원센터가 전국에 있고 위탁 희망 가정도 많다.”
 
정인이 양부모에 대한 살인죄 적용을 주장하고 있는데.
“같은 형량을 받더라도 아동 학대 치사죄와 살인죄는 다르다. 매우 중대한 범죄라는 사실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또 아동 학대 가해자에 대한 신상을 공개하고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마음 아픈 사건에 아이의 이름을 붙이고 싶지 않지만 현재로선 가해자 이름을 붙이면 명예훼손이 된다.”
 
피해아동의 이름과 얼굴 공개에 대한 우려도 있는데.
“정인이는 입양 후 다른 이름으로 불렸지만 행복하게 살았던 때의 이름을 불러주고자 했다. 정인이를 보살폈던 위탁모로부터 허락을 받고 사진과 영상을 공개했다. 아이가 살았던 흔적이라도 남겨야 하지 않을까. 아이의 존재를 지우고 싶은 건 가해자들일 거다. 살아있던 아이들이고 없어져야 할 존재가 아니다. 이렇게라도 하늘로 소풍 떠난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고 기억하고 싶다.”
 
최은혜 기자 choi.eunhye1@joongang.co.kr

관련기사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