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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아 미안해' 바람에 형량 강화 붐...민식이법 판박이 졸속 우려

중앙일보 2021.01.07 19:08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7일 ‘정인이법’ 벼락치기 심사에 나섰다. 
지난 6일 여당이 “7일까지 논의를 마무리하겠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고 드라이브를 걸자 국민의힘이 “정인이법을 8일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기로 합의했다”(김도읍 의원)고 맞장구치면서 속도가 붙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도 7일 “아동학대근절법을 8일 본회의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며 힘을 더했다. 
 
백혜련 법안심사소위원장이 6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백혜련 법안심사소위원장이 6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그러나 5일째 쟁점이 산적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심사중인 법사위는 이날 오후 2시가 돼서야 아동학대 관련 법안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러고 두시간 뒤 회의장을 나온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아동학대범죄의 형량을 강화하는 것은 쟁점이 많아서 오늘 처리 못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인이 사건' 전 정부가 제출한 친권자 징계권을 삭제하는 민법 개정안을 합의 의결한 게 이날의 성과였다.  
 

졸속 심사 불보듯 

2일 한 방송 프로그램으로 ‘정인이 사건’이 부각된 이후 7일 오전까지 쏟아진 ‘정인이 방지법’은 16건이었다. 이날 법사위 법안소위 심사가 진행되는 오후 동안에 접수된 것만 4건이다. 21대 국회 개원이후 쏟아진 아동학대 관련 법안 40건이 넘는다. 
 
‘정인이 방지법’의 심사 양상은 2019년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민식이법’ 심사 때와 비슷하게 돌아가고 있다. 발의 당시 큰 관심을 받지 못하던 ‘민식이법’은 같은 해 11월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에서 숨진 김민식군 부모를 만난 뒤 급물살을 탔다. 그후 22일 만에 어린이보호구역 내 교통사고로 어린이가 사망하면 운전자를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법이 고쳐졌다. 과실로 사고를 낸 경우에도 형사처벌을 면할 수 없게 됐다. 
 
6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 양부모의 지속적인 학대로 숨진 16개월 영아 정인 양을 추모하기 위해 시민들이 보내온 근조화환이 놓여져 있다. 유기, 방임혐의로 기소된 양부모에 대한 첫 공판은 오는 13일 열릴 예정이다.

6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 양부모의 지속적인 학대로 숨진 16개월 영아 정인 양을 추모하기 위해 시민들이 보내온 근조화환이 놓여져 있다. 유기, 방임혐의로 기소된 양부모에 대한 첫 공판은 오는 13일 열릴 예정이다.

 
이후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사고가 날 때마다 가혹한 처벌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다. 보험사만 배를 불린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해 1분기 운전자보험 판매 건수는 월평균 34만건이었는데, 민식이법이 시행된 그해 4월부턴 2배가 넘는 82만9000건으로 늘었다.
 
이번에도 법조계와 아동복지 현장에선 제도 개선에 대한 기대보다 졸속 입법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개악을 걸러낼 사이도 없이 이 많은 법들을 오늘 심사해서 이틀 뒤 본회의 통과시키는 게 말이 되냐. 이런 여론 잠재우기식 무더기 입법이 오히려 현장의 혼란만 키운다”고 말했다. 
 

“형량 올리는 게 능사 아냐”

 
‘정인이 사건’ 방송 이후 접수된 16건의 법안 중 5건이 아동학대범에 대한 형량을 높이는 내용이다. 노웅래 민주당 의원은 아동학대치사죄와 아동학대중상해죄의 법정형을 각각 징역10년 이상과 6년 이상으로 높이자는 법안을 냈다. 현행은 각각 징역 5년이상과 3년이상이다. 강훈식 민주당 의원은 아동학대 범죄를 특정강력범에 포함시켜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하자는 법안을 냈다. 

 
2021년 1월 7일 기준 의안정보시스템에 등록된 아동학대범죄 관련 법안들.

2021년 1월 7일 기준 의안정보시스템에 등록된 아동학대범죄 관련 법안들.

 
그러나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아동학대 하는 부모들이 ‘형량이 높으니까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강력 처벌하라는 여론이 있을 때 가장 내놓기 쉬운 대안이 형량을 높이는 것이다. 그보다 왜 아이를 보호하지 못했는지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예원 변호사는 “가해자를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법정형 하한을 높이는 게 반드시 피해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법정형을 높이면 피고인이 사력을 다해 부인을 하고, 유죄를 입증하기 더 어려워진다는 거다. 김 변호사는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양형 기준을 올리는 쪽이 더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처벌강화보다 재발 방지 대책 시급”

 
아동학대 신고가 반복되면 강제로 학대행위자로 의심받는 사람과 아동을 분리해 보호하자는 법안(김용판 국민의힘 의원 등)과 아동학대를 인지하고 신고하지 않거나 긴급임시조치를 하지 않는 교사나 경찰관에게 과태료 1000만원을 물리자는 법안(김정재 국민의힘 의원) 도 논란이다. 
 
아동학대주요법안발의.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아동학대주요법안발의.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김예원 변호사는 “쉼터가 부족한데 무턱대고 분리 조치를 하면 정작 분리가 필요한 아동이 생겼을 때 자리가 없을 수 있다”고 말했다. 쉼터 확대와 분리여부에 대한 심사 절차 등을 보완하는 게 우선선 과제라는 이야기다.   
 
이웅혁 교수는 “정인이 사건에서 경찰의 소극적 대응이 비판 받아야 하지만, 소극적 대응을 벌어하기 보단 적극적으로 나섰을 때 발생하는 경찰관 개인의 부담을 덜어줘야 능동적 대응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적극적 격리 조치에 나섰다가 소송에 휘말리는 경찰관이 적지 않다”면서 한 이야기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왜 실무를 겪는 사람들에게 물어봐서 꼭 필요한 법안을 내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면서 “‘정인아 미안해’ 열기가 식기 전에 서둘러 기사에 이름 한 줄 올리려는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송승환·남수현 기자 song.se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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