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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빈 몰아낸 서인 공신들 한눈에…숙종 ‘공신회맹축’ 국보로

중앙일보 2021.01.07 12:47
문화재청이 조선 숙종 때 공신들의 충성 맹세 기록을 담은 왕실 최대 규모 문서 '20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를 국보로 지정 예고한다고 7일 밝혔다.   사진은 '20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 시작 부분. [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이 조선 숙종 때 공신들의 충성 맹세 기록을 담은 왕실 최대 규모 문서 '20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를 국보로 지정 예고한다고 7일 밝혔다. 사진은 '20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 시작 부분. [사진 문화재청]

조선 제19대 국왕 숙종(1661∼1720, 재위 1674∼1720)의 재위 기간엔 세 차례 환국(換局)이 있었다. 각각 경신(1680, 숙종 6), 기사(1689, 숙종 15), 갑술(1694, 숙종 20)환국으로 불리는 이들 사건 때마다 임금이 조정의 집권세력을 급작스럽게 갈아치웠다. 궁중 사극에서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엎치락뒤치락 스토리로 주로 알려졌지만 숙종으로선 치열한 당쟁 속에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일종의 승부수였다.
 

숙종 6년 열린 '충성 맹세' 회맹제 기록
집권세력 교체 속 14년 뒤 공신 명단 확정
길이 25m…"정치상황 급변기 이해 도와"

이렇게 측근을 정비한 뒤 숙종은 이들을 한데 모아 일종의 ‘충성 맹세’ 행사를 열었다. 1680년(숙종 6) 8월 30일 열린 왕실의 의식인 ‘회맹제(會盟祭, 임금이 공신들과 함께 천지신명에게 지내는 제사)’다. 회맹이란 중국 춘추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충성의례이고 조선 왕실 회맹제 땐 새로운 공신 뿐 아니라 역대 공신의 후손들까지 한자리에 모았다. 숙종 6년 회맹제 땐 총 489명이 참석 대상이었고 이 중 연로하거나 상을 당한 경우 등을 제외한 412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1680년에 열린 회맹제를 기념하기 위해 1694년(숙종 20) 녹훈도감(復勳都監)에서 제작한 왕실 문서 ‘20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二十功臣會盟軸-保社功臣錄勳後, 이하 공신회맹축)’가 국보로 승격된다. 길이 25m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어람용(御覽用) 비단 문서다. 문화재청은 7일 “17세기 정치 상황을 보여주는 사료로서 역사·학술 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왕실유물 중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크기로 제작돼 공예품으로서 예술성 또한 우수하다”면서 보물 제1513호 공신회맹축을 국보로 지정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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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여겨 볼 것은 회맹제 행사와 회맹축 제작 간에 14년의 시간차가 있단 점이다. 애초 남인(南人)과 더불어 정치 중심세력 중 하나였던 서인(西人)은 1680년 경신환국을 계기로 집권해 공신이 됐다. 회맹제가 열린 시점이다. 그러다 1689년(숙종 15) 숙종의 계비였던 희빈 장씨의 원자(元子) 책봉 문제로 남인이 서인을 몰아내고 재집권한 사건이 일어난다. 기사환국이다. 이때 서인의 거두이자 회맹제 때도 참석했던 송시열은 세자 책봉에 반대했다가 유배당하고 사약을 받고 죽었다. 서인들 대부분이 공신 지위를 박탈당했다.  
2013년 SBS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숙종으로 변신했던 배우 유아인(왼쪽)과 숙종 어진으로 추정되는 불에 탄 초상화의 부분.

2013년 SBS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숙종으로 변신했던 배우 유아인(왼쪽)과 숙종 어진으로 추정되는 불에 탄 초상화의 부분.

 
이후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이 벌어진다. 폐비 민씨(인현왕후) 복위 운동을 반대한 남인이 화를 입어 권력에서 물러나고 서인이 재집권한 사건이다. 이때 공신 지위를 회복한 서인들 중에 1~3등 총 6명(김만기, 김석주, 이입신, 남두북, 정원로, 박빈)에게 ‘보사공신’ 칭호가 내려졌다. 이번에 국보로 지정 예고된 공신회맹축이 제작된 시점이기도 하다. 14년의 혼란을 마무리하고 제작된 문서엔 1392년 개국공신부터 이들 보사공신까지 총 20종의 공신 인물들과 그 후손 명단이 나열됐다. 특히 보사공신에 대한 업적 설명을 통해 지위 부여(녹훈, 錄勳)와 박탈(삭훈, 削勳), 회복(복훈, 復勳)의 역사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어 학계에서 높이 평가한다.  
 
공신회맹축은 회맹제 거행 당시의 회맹문(會盟文, 종묘사직에 고하는 제문)과 보사공신 등 총 489명의 명단을 기록한 회맹록(會盟錄), 종묘에 올리는 축문(祝文)과 제문으로 구성됐다. 조밀하게 짠 옅은 황비단 위에 단정한 글씨로 써내려갔다. 가로 약 25m에 달하는 긴 문서의 양 끝은 붉은색과 파란색 비단을 덧대고 위아래를 옥으로 장식한 축으로 마무리하는 등 어람용의 화려함과 정갈함이 돋보인다. 말미에 제작 사유와 제작 연대를 적었고 ‘시명지보(施命之寶)’라는 국새를 찍어 왕실 문서로서 완전한 형식을 갖췄다.
 
문화재청이 조선 숙종 때 공신들의 충성 맹세 기록을 담은 왕실 최대 규모 문서 '20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를 국보로 지정 예고한다고 7일 밝혔다.   사진은 국새가 찍힌 '20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의 마지막 부분. [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이 조선 숙종 때 공신들의 충성 맹세 기록을 담은 왕실 최대 규모 문서 '20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를 국보로 지정 예고한다고 7일 밝혔다. 사진은 국새가 찍힌 '20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의 마지막 부분. [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 황정연 학예연구사는 “조선 왕실은 회맹제 때마다 어람용 회맹축을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문헌을 통해 전래가 확인된 회맹축은 3건에 불과하고 국새까지 찍힌 완전한 형태의 실물로 전해지는 건 1694년 것이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공신회맹축의 경우엔 어람용 회맹축의 제작 과정을 면밀하게 파악할 수 있는 관련 기록인 『녹훈도감의궤(錄勳都監儀軌)』가 함께 전해져 더 큰 의미가 있다. 공신회맹축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돼 있으며 압도적인 규모 때문에 이제까지 일반에 공개된 적이 없다.
 
문화재청은 이와 함께 ‘상주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 및 복장유물’과 ‘구미 대둔사 경장’을 보물로 각각 지정 예고했다. 구미 대둔사 경장은 1630년(인조 8)에 조성된 경장(불교경전을 보관한 장)으로, 조선 시대 불교 목공예품 중 명문을 통해 제작 시기가 명확하게 파악된 매우 희소한 사례다. 상주 남장사 유물은 높이 11미터에 이르는 18세기 후반 대형 불화 1폭과 각종 복장물을 넣은 복장낭(腹藏囊), 복장낭을 보관한 함을 포함한 복장유물로 구성됐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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