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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올 필요 없다" 어깃장에도...이란 가겠다는 최종건의 승부수

중앙일보 2021.01.07 05:00 종합 3면 지면보기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6일 국회를 방문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이란의 한국 선박 나포와 관련한 긴급 상황 보고에 나섰다. 최 차관은 오는 10일 이란을 방문해 선박과 선원에 대한 조기 억류 해제 등을 타진할 계획이다. [뉴스1]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6일 국회를 방문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이란의 한국 선박 나포와 관련한 긴급 상황 보고에 나섰다. 최 차관은 오는 10일 이란을 방문해 선박과 선원에 대한 조기 억류 해제 등을 타진할 계획이다. [뉴스1]

 해양 환경 오염이라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한국 선박을 나포한 이란이 6일(현지시간) 오히려 한국을 향해 “이성적으로 행동하라”고 촉구했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의 이란 방문이 10일로 예정된 가운데 “관련 논의를 위한 ‘외교적 방문’도 필요 없다”고 밝혔다.
사이드 하티브자데 이란 외교부 대변인은 6일 성명에서 “한국 정부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다. 한국 정부는 기술적 문제에 대해 이성적이고 책임감 있게 대응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정부가 나포 사건 직후 청해부대 최영함을 호르무즈 해협에 급파하고, 주한 이란 대사를 통해 강한 유감과 항의의 뜻을 전한 것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의 청해부대 파견에 불만
“이성적 행동하라” 강경론 돌아서
최 차관은 예정대로 10일 방문 강행
인질 석방 등 현안 풀기 만만찮아

그는 또 최 차관의 이란 방문에 대해 “한국 차관의 방문이 수일 내로 이뤄지겠지만 이는 이미 예정됐던 것으로, 이 문제(선박 나포)와는 상관이 없다”고 했다. 이어 “이 문제는 법률적 절차에 따라 진행할 것이기 때문에 외교적 방문이 이뤄질 필요가 없고, 양국이 별도의 방문이 필요하다고 합의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외교적 해결 공감' 하루만에 어깃장  

지난 4일 이란 혁명수비대 고속정이 한국 국적 선박 '한국케미호'에 접근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4일 이란 혁명수비대 고속정이 한국 국적 선박 '한국케미호'에 접근하는 모습. [연합뉴스]

앞서 이란은 사건 발생 전 최 차관의 방문 계획을 공개하며 한국 시중은행에 묶인 원유 수입 대금 70억 달러 관련 논의가 목적이라고 밝혔다. 결국 하티브자데 대변인의 말은 ‘최 차관과는 약속한 대로 70억 달러 이야기만 한다→다른 방문은 동의한 적도 없고→우리 국내적으로 해결할 일이니 외국 정부 인사가 올 필요도 없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란의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고위급 외교 회담의 의제는 쌍방이 사전 협의를 거쳐 정하는 게 관례인 건 맞지만, 이번 사건처럼 갑작스러운 사정 변경이 생기면 회담 현장에서도 바뀌곤 한다. 이란이 정말 이를 의제로 다루길 원치 않는다면 아예 최 차관의 방문을 취소하면 될 일이지만, 현재로썬 그럴 조짐도 없다.  
앞서 외교부 당국자는 전날 주한 이란 대사를 초치한 뒤 기자들과 만나 “양국 외교부가 외교적으로 해결하자는 데 양측이 공감했다”고 말했다. 또 “최 차관 이란 방문 시 인도적 교역 확대 등을 논의할 수 있도록 그 전에 우리 선박을 풀어달라고 강하게 요청했다”고 했다. 당국자가 언급한 인도적 교역에는 당장 이란에 급한 코로나19 백신 공급이 포함된다.
결국 한국이 최 차관 방문 시 외교적 협상을 통해 백신 문제와 나포 문제를 동시에 풀자는 취지로 은근한 압박을 가하자, 이란 외교부가 하루 만에 딴소리를 하며 어깃장을 놓은 것이다.  
 

이란 외교부보다 혁명수비대가 실세

문제는 이란이 이렇게 적반하장 식으로 나와도 정부가 쓸 ‘실탄’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이 미국과 이란 간 충돌의 희생양처럼 비치며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게 오히려 정부에는 큰 부담이다. 보통 이런 식의 자국민 구출 교섭은 물밑에서 조용히 이뤄지는 게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이용해 오히려 선전선동에 열을 올리는 건 이란이다. 이란이 공식적으로는 ‘기술적 문제’라고 하면서도 동결된 70억 달러를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것도 결국 “한국이 미국을 설득해 돈만 주면 해결될 일 아니냐”는 식의 프레임으로 끌고 가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이란 혁명수비대 개요.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이란 혁명수비대 개요.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또 다른 문제는 정부의 공식 협상 상대인 이란 외교부의 영향력이다. 7일 외교부로부터 긴급상황 보고를 받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번 사건이 이란 혁명수비대(IRGC)의 독자적 행동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중앙일보 통화에서 “혁명수비대는 이란 정부의 위계질서에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도 말 그대로 독자적이고 돌출적인 행동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선박을 나포한 것은 IRGC인데, 최 차관이 이란 외교부를 만나 협상하는 게 얼마나 실효성이 있겠느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사실 당초 최 차관의 이란 방문은 미국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이란 간 관계가 회복될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두고 추진됐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이란 시장이 다시 열리고, 한국에 경제적 기회가 될 수 있는 만큼 ‘선점’ 효과를 노릴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해 8월 부임한 최 차관의 첫 해외 출장은 미국이었고(같은해 9월), 이란이 두 번째 방문국이다. 한국 외교차관이 미국 다음으로 중국도, 일본도 아닌 이란을 찾는 것 자체가 파격이다.
 

시험대 오른 文 외교력

외교부는 이란의 한국 선박 억류와 관련 지난 5일 주한 이란대사를 초치해 항의했다. 사진은 사이드 바담치 샤베스타리 주한 이란대사가 외교부 청사를 나서는 모습. 김성룡 기자

외교부는 이란의 한국 선박 억류와 관련 지난 5일 주한 이란대사를 초치해 항의했다. 사진은 사이드 바담치 샤베스타리 주한 이란대사가 외교부 청사를 나서는 모습. 김성룡 기자

하지만 지금으로선 이런 ‘큰 그림’보다 선박 나포 사건 해결이 우선이 됐다. 이란 방문의 무게감 자체가 달라졌다. 특히 나포 사건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최 차관이 이란을 가기로 한 것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라’는 청와대의 입장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권한과 책임을 함께 부여받은 최 차관으로서는 진검 승부를 피할 수 없고, 정부의 외교력도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갈지 말지를 고민하는 단계라면 모를까, 가기로 한 이상에는 나포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고 와야 한다. 차관이 움직였는데 석방 문제에 아무 진전이 없다면 굉장히 곤란하고,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외교부의 공격 논리는 이란 당국의 국제법 위반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유엔 해양법협약은 외국 선박이 ‘고의적이고도 중대한 오염행위’를 하지 않는 한 영해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무해 통항권’을 보장한다. 이란은 협약 당사국은 아니지만, 무해통항권은 이미 국제규범으로 정착된 개념이라 쉽게 무시할 수도 없는 문제다. 이기범 아산정책연구원 국제법센터장은 "이란이 해양 환경오염을 나포의 근거로 무차별적, 무제한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국제해양법 취지에 반할 가능성이 크다"며 "국제법 위반의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이에 정부는 이란이 주장하는 환경 오염 혐의에 대한 근거를 요구하고, 이란 군의 승선과정에서 국제법 위반 행위는 없었는지 따질 계획이다. 이란은 나포 영상과 사진 등을 다수 공개하면서도 정작 선박의 환경 오염 행위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는 아직 제시하지 않고 있다.
유지혜ㆍ정진우ㆍ박현주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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