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인이 양모 정신과 치료 병력...법원은 알고도 '입양 허가'

중앙일보 2021.01.06 18:20
아동학대로 숨진 정인양의 양모 A씨가 정신과 치료 이력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입양을 주선한 홀트아동복지회도 이 이력을 알고 입양 신청을 했고, 법원도 입양을 허가했다. 정신과 치료 이력이 입양의 결격 사유는 아니지만, 정인양이 숨지게 된 원인과 책임 소재를 밝히는 과정에서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정신과 병력이 입양의 결격 사유는 아니다"면서도 "다만 입양 가정의 상황을 보다 면밀히 들여다보지 못한 것이 아닌지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홀트아동복지회. 편광현 기자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홀트아동복지회. 편광현 기자

양모 임금체불 당한 뒤 정신과 진료

A씨의 정신과 치료 기록은 복지회가 정인양 양부모의 5년 치 요양급여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홀트아동복지회는 6일 입장문에서 "(A씨의) 건강보험요양급여 내역을 보던 중 2017년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치료가 아닌 진료를 1회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는 임금체불을 당한 것과 관련 노동부에 제출할 진정서에 첨부할 진단서를 발급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복지회 관계자는 "A씨가 의료보험을 활용하지 않고 추가로 정신과에 다녔던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최근에 확인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신과를 찾았을 때 A씨는 번역가로 일한 뒤 임금체불을 당해 소송을 벌이던 중이었다. 홀트아동복지회의 조사서에는 A씨가 '스트레스성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2019년 8월 홀트아동복지회는 정인양의 입양을 허가해달라는 소장을 서울가정법원에 접수했다. A씨의 정신과 진료 사실과 다면적 심리검사(MMPI) 결과가 담긴 조사서를 포함한 입양서류를 받은 법원은 추가 조사를 거쳐 지난해 1월 입양을 허가했다. 20011년 입양특례법, 2012년 민법이 개정되면서 입양은 가정법원 허가 사항이 됐지만, 민간기관의 조사가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6일 오후 경기 양평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에 안장된 정인 양의 묘에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장진영 기자 / 20210106

6일 오후 경기 양평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에 안장된 정인 양의 묘에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장진영 기자 / 20210106

"입양 절차 공적 개입 강화해야"

정인양의 사망을 계기로 전문가들은 "입양 절차에 공적 개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법원이 사후 허가를 내주고는 있지만, 구체적 정보를 직접 알 수는 없다"며 "여전히 입양을 민간기관에 의지하고 있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상희 한국여성변호사회 사무차장은 "민간 입양단체가 검증하다 보니 일관된 심사 기준이나 감독이 어렵다"며 "입양 절차에 공적인 개입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동권리보장원 관계자 역시 “지금 입양 절차는 사실상 민간 입양기관에 맡겨놓은 수준"이라고 했다. 그는 "그 아이의 가장 안전한 가정 찾아주는 건 국가의 책임”이라며 “정인이 사건에서 놓친 것처럼 양부모의 의료기록을 조사하는 등의 역할은 민간기관에서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명숙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신과 진료기록이 있다고 무조건 입양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다만 입양모의 정신과 진료 기록이 아이 양육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면밀하게 분석해봤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 이동해 기자 = 6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 양부모의 지속적인 학대로 숨진 16개월 영아 정인(가명)양을 추모하기 위해 시민들이 보내온 근조화환이 놓여져 있다. 유기, 방임혐의로 기소된 양부모에 대한 첫 공판은 오는 13일 열릴 예정이다. 2021.1.6/뉴스1

(서울=뉴스1) 이동해 기자 = 6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 양부모의 지속적인 학대로 숨진 16개월 영아 정인(가명)양을 추모하기 위해 시민들이 보내온 근조화환이 놓여져 있다. 유기, 방임혐의로 기소된 양부모에 대한 첫 공판은 오는 13일 열릴 예정이다. 2021.1.6/뉴스1

비판이 이어지자 보건복지부는 "입양에 정부 개입을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이날 밝혔다. 우선 입양특례법을 개정해 입양 전 의사, 변호사, 사회복지사 등으로 구성된 공적 감독 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이 위원회는 민간기관이 법원에 입양허가를 신청하기 전, 입양 부모가 아동을 입양하는 것이 적절한지 한 번 더 검토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또한 입양기관이 1년간 4차례 진행하던 사후 관리를 6차례로 늘리고 반드시 입양아동과 대면하도록 지침 바꿀 방침이다.
 

홀트 "진료 사실 법원 제출, 절차 문제없다"

홀트아동복지회 측은 입장문에서 "정인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면서도 "입양 절차상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복지회 측은 "입양특례법과 입양 실무매뉴얼에 따라 예비 입양 부모 적격심사를 마치고 가정법원에 소장을 접수했다"며 "故정인이의 사망 이후 보건복지부 지도점검에서도 입양 절차상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홀트아동복지회 측은 "A씨의 정신과 진료 사실은 (법원 제출용 가정조사서에) 명시하였다"며 "최종 판단은 법원에서 이루어졌다"고 해명했다. 이어 “앞으로 입양 진행 및 사후 관리 강화를 위한 입양기관의 역할을 다각도로 검토·보완하겠다”고 밝혔다.
편광현·함민정·이우림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