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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선동정치의 역습, 올 1월 이미 중도층은 與 떠났다”

중앙일보 2021.01.06 00:46 종합 24면 지면보기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두 정치인 사이에 논쟁이 붙었다.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은 교통방송의 김어준. 금태섭 전 의원이 “편향성이 극렬하고 다양하게 나타나면서 너무나 큰 해악을 끼치고 있다”고 그를 비판하자, 우상호 의원이 “종편방송 진행자 혹은 패널들이 훨씬 더 편파적”이라며 그를 옹호하고 나섰다.
  

[진중권의 퍼스펙티브]
1월 초 국정 지지율 34%, 중도층이 모두 떠났다는 얘기다
중도층에 어필하려면 프로파간다 정치를 포기해야 하는데
대깨문의 저항 때문에 이도 저도 못하는 게 민주당의 딜레마
그게 다 정치적 커뮤니케이션을 프로파간다로 때워 온 업보다

방송인이 아닌 프로파간디스트
 
흥미로운 것은 우 의원이 김어준을 가리켜 “성향은 드러내되 사실관계에 기초한다는 철학이 분명한 방송인”이라 부른 것이다. 이 음모론의 대명사가 ‘사실관계에 기초한다는 철학’을 가졌다는 소리는 우리 귀에 해괴하게만 들린다. 우리 의원님은 허구가 ‘사실관계’로 통하는 대안현실에 사시는 모양이다.
 
김어준의 문제는 공중파를 사용해 사실관계를 왜곡한다는 데에 있다. 조국 사태 당시에 그의 ‘뉴스 공장’은 조 교수의 딸, 동양대 장모 교수, 입시업자 김모의 인터뷰를 내보냈다. 그 인터뷰들을 통해 조민이 실제로 봉사활동을 하고 진짜 표창장을 받아 학교에 “정상적으로 진학”한 가상현실이 지어졌다.
 
법원의 판결로 보도가 허위로 밝혀져도 그는 정정도 사과도 하지 않는다. 우 의원 말대로 그가 ‘방송인’이라면 진즉에 퇴출당했을 게다. 그 짓을 하고도 여전히 마이크를 잡는다는 것은 이 정권에서 그의 위상이 단순한 ‘방송인’ 이상임을 뜻한다. 한 마디로 그는 정권을 지탱하는 대표적 프로파간디스트다.
 
김어준이 한 것은 ‘오보’가 아니다. 오보는 의도되지 않은 허위다. 오보에는 ‘정정’이 따르고, 청취자는 머릿속으로 그릇된 정보를 지우기 마련이다. 프로파간다는 다르다. 애초에 의도된 허위이기에 절대 교정되지 않는다. 그래서 김어준은 사과하지 않고, 대깨문은 계속 정경심 교수의 결백을 믿는 것이다.
 
프로파간다란 무엇인가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프로파간다’에는 긍정적인 것에서 부정적인 것까지 다양한 정의가 존재한다. 하지만 자유주의 국가에서 이 말은 대체로 부정적 뉘앙스를 띤다. 그 말을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주로 레닌이나 괴벨스와 같은 전체주의자들. 그래서 프로파간다의 사용 여부는 한 정치집단의 성향을 가늠하는 지표가 된다.
 
해럴드 라스웰에 따르면 프로파간다란 “환경의 다른 조건들을 바꾸지 않고 사회적 암시의 직접적 조작으로 견해와 태도를 관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김어준이 ‘냄새가 난다’는 말을 자주 사용할 때, 그는 사회적 암시를 조작해 그 어떤 악재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지지자를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프로파간다의 목적은 상황 자체가 아니라 상황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와 태도”를 관리하는 데에 있다. 프로파간다로 법원의 판결을 되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지지자들의 “견해와 태도”를 전과 동일한 상태로 관리한다면, 지지는 유지된다. 이렇게 대중을 관념론자로 바꾸어 놓는 게 프로파간다의 본질이다.
 
권력은 김어준·유시민 같은 선동가들이 ‘콘크리트 지지층’의 창출과 유지에 필요한 존재임을 잘 안다. 게다가 40%에 이르는 그 콘크리트는 동시에 시청률을 떠받치는 열광적인 청취자이기도 하다. 결국 권력과 자본의 공통의 이해가 이들 선동가의 활약에 이중의 보호막을 제공하는 셈이다.
  
프로파간다는 인성을 파괴한다
 
예나 지금이나 프로파간다는 “대중의 심리적 조작으로 권력을 획득하고 대중의 지지로 그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자크 엘륄)이다. 이를 정치적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 취함으로써 민주당은 ‘참여’의 의미를 왜곡시켰다. 그 결과 노무현의 ‘깨어 있는 시민’은 여기저기 양념이나 치고 다니는 ‘대깨문’이 되었다.
 
최근 유시민이 손에 책을 들고 다시 나타났다. 시민에게 교양을 제공하려는 게 아니다. 프로파간다는 “어떤 분쟁에서 한쪽 편만을 들게 만들려는 시도”로, 애초에 “지식의 확산이 아니라 모종의 당파적 감정”(버트런드 러셀)을 조장할 목적으로 행해진다. 그 점에서 일반교육과 뚜렷이 구별된다.
 
프로파간다는 대중의 “인성에 영향을 끼쳐 비과학적이거나 의심스러운 가치로 여겨지는 목표를 추구하게 만든다.”(레오나드 둡) 거기에 노출된 이들은 맹목적인 진영논리에 갇혀 제 편의 범법을 변호하기 위해 비논리적 궤변을 사용하고, 다른 편을 악마화하기 위해 비합리적 음모론을 수용하게 된다.
 
프로파간다의 폭격을 받은 이들은 종국에 로고스(이성)와 에토스(윤리)를 상실하게 된다. 인격 자체가 말살되는 것이다. 진정으로 우려할 것은 프로파간다가 개인의 인성에 끼치는 이 장기적 폐해다. 대깨문을 이해하자. 그들도 피해자다. 그들의 몸은 나꼼수 이래 10년 넘게 프로파간다의 마사지를 받아왔다.
  
선포로서 진리
 
프로파간다는 현실감을 잃게 만든다. 그 어떤 과학적 증거도 창조론 신앙을 무너뜨릴 수 없듯이 그 어떤 세속의 사실도 프로파간다로 빚은 신념을 깨뜨릴 수는 없다. 프로파간다는 ‘선포’의 진리라 증명을 요하지 않는다. 피해자들은 외려 그 선포된 진리에 맞춰 사실을 왜곡하고 증거를 조작하려 든다.
 
그 진리가 현실에서 반박당한다면 그것은 세상이 사악한 것이다. 법원에서 정경심 교수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윤석열 검찰총장의 신청을 인용해도, 그것은 사법부의 사악함을 입증하는 증거로 처리된다. 그릇된 믿음을 교정하는 대신에 그들은 자기들끼리 그 믿음을 재확인하고 강화하기 위해 재판부 탄핵운동을 벌인다.
 
법원에서 검찰총장 징계의 효력을 정지시키자 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대한민국이 사법의 과잉지배를 받고 있다. 사법의 정치화가 위험 수위를 넘었다”고 말했다. 김두관 의원은 그 판결을 아예 “사법 쿠데타”로 규정하고 나섰다. 프로파간다가 빚어낸 망상이 지지층을 넘어 집권당마저 집어삼킨 것이다.
 
민주당은 프로파간다로 절대 흔들리지 않는 ‘콘크리트’ 지지층을 구축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콘크리트에 발목이 잡혀 버렸다. 1월 초 국정 지지율 34%. 중도층이 모두 떠났다는 얘기다. 그래도 그들은 프로파간다 정치를 포기할 수 없다. 그 콘크리트라도 없으면 정권이 무너질 상황이기 때문이다.
  
콘크리트 지지층의 덫
 
이낙연 대표가 사면론을 꺼냈다. 청와대와 교감을 거쳤을 것이다. 하지만 통합의 메시지로 중도층을 끌어안으려는 이 시도는 민주당 열성 지지층의 격렬한 반발로 무산되고 말았다. 오랜 프로파간다의 세례로 지지층의 머리가 이 정도의 정치적 유연성도 허용하지 못할 정도로 굳어 버린 것이다.
 
중도층을 끌어안으려면 선동정치를 버리고 의회정치를 회복해야 한다. 그러려면 오랜 관행대로 법사위장을 야당에 돌려줘야 한다. 하지만 이는 민주당에서 꿈도 꿀 수 없는 일. 그들의 다수결 독재는 실은 콘크리트 지지층의 주문에 따른 것이다. 여당의 독주를 지지층은 180석을 준 ‘국민의 명령’으로 이해한다.
 
극렬 지지층을 겨냥한 이 선동이 합리적 중도층에 먹힐 리 없다. 중도층에 어필하려면 프로파간다를 포기해야 하는데, 그 경우 들어 살 ‘세계’를 잃게 될 대깨문의 극렬한 저항을 받게 된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 민주당의 딜레마. 그게 다 정치적 커뮤니케이션을 프로파간다로 때워 온 업보다.
 
왜 저럴까? 위기를 관리하는 데에 자기들에게 익숙한 운동권 프레임을 동원하기 때문이다. 즉, 자신들을 감시하고 수사하고 심판하는 기관들을 ‘쿠데타’ 세력으로 몰아붙임으로써 기득권의 욕망을 숭고한 민주화 투쟁으로 포장하고, 대중의 머리에 자신들이 결백하다는 환상을 심어주려는 것이다.
  
새로운 선동 캠페인
 
과거의 군부독재 자리에 놓인 것은 검찰과 사법부. 둘의 공통점이라곤 고작 ‘선출되지 않았다’는 것뿐.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나 보다. 지지층의 머리에 ‘검찰·사법부=쿠데타 세력’이라는 등식을 심기 위해 엉뚱하게 다른 나라 얘기를 가져온다. 이 새로운 캠페인에는 이재명 도지사까지 가세했다.
 
그는 ‘위기의 민주주의-룰라에서 탄핵까지’라는 영화를 소개한다. “브라질의 재벌, 검찰, 사법, 언론 기득권 카르텔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극우 정권을 세웠는지 추적하는 다큐멘터리입니다.” 이 영화에서 “기시감”을 느꼈단다. 정치적 망상을 현실로 둔갑시키려고 영화까지 동원한 것이다.
 
차기 주자마저 이 짓을 하니 그 당은 앞으로도 희망이 없어 보인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오직 프로파간다로만 창출되고 유지되는 권력이라면, 그 정권은 국가와 사회를 위해 되도록 빨리 무너지는 것이 좋다. 선동의 정치, 국민은 피곤하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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