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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 화가 김창열, 92세로 별세

중앙일보 2021.01.05 19:42
2002년 생전 당시 작업실의 김창열 화백. [사진 박종근 기자]

2002년 생전 당시 작업실의 김창열 화백. [사진 박종근 기자]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물방울 화가' 김창열 화백이 5일 오후 별세했다. 92세. 지난해 10월부터 11월 말까지 서울 삼청로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은 많은 미술인들의 우려대로 생전 마지막 전시가 됐다. 당시 전시 제목이 '더 패스(The Path)'. 문자와 물방울의 만남에 방점을 찍은 이 전시를 끝으로 그는 물방울 하나만 보고 걸어온 긴 여정을 침묵 속에 마무리했다. 
 
김 화백은 1929년 12월 24일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나 16세에 월남했다. 이쾌대(1913~1965)가 운영하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웠고, 검정고시로 1948년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으나 6.25 발발로 학업을 중단했다. 1957년 한국의 앵포르멜(작가의 즉흥적 행위와 격정적 표현을 중시한 추상미술) 미술운동을 이끌던 그는 미국에서 4년간 판화 공부를 하고 1969년 파리에 정착했다.  
 
김 화백은 1970년대부터 마지막까지 일관되게 화면에 물방울을 그려왔다. 캔버스 바탕에 스며들기 직전의 물방울을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표현한 것. 물방울 그림의 시작은 가난한 유학 생활에서 우연히 얻었다. 1972년 파리에서 작업할 당시 밤새 그린 그림이 마음에 안 들면 유화 색채를 떼어내고 캔버스를 재활용하곤 하던 그는 캔버스를 다시 쓰기 위해 물을 뿌려놓았던 자리에 아침 햇살에 빛나는 것을 물방울을 보았다. 그는 "그 순간 존재의 충일감에 온몸을 떨며 물방울을 만났다"고 회고했다. 그해 파리에서 열린 전시 '살롱 드 메'에서 물방울 회화를 처음 선보였고, 2009년 프랑스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온 이후 2018년까지 물방울 그림에 반평생을 바쳤다.  
 
영롱한 물방울로 세계 미술 애호가들은 사로잡은 김 화백은 국립현대미술관, 드라기낭미술관, 사마모토젠조미술관, 쥬드폼므미술관, 중국국가박물관, 국립대만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60여 회 개인전을 개최했다.그의 작품은 각종 아트페어나 경매에서도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 2016년 3월 K옥션 홍콩경매에서 '물방울'(195×123cm, 1973년작)은 5억1천282만원에 낙찰됐다.  
 
그는 왜 그토록 맑고 투명한 물방울 그리기에 집착했을까. 전문가들은 '물'이라는 대상에 담긴 동양사상에 주목한다.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 학장은 "김창열은 동아시아 철학과 예술에서 나타나는 무상성을 상징하는 유수(流水)를 물방울로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고 보았다. 김 화백의 물방울엔 변화하는 세계의 무상성을 나타내기 위해 일찍이 바람, 구름, 물(이슬) 등에 주목한 동양적 정서가 내재해 있다는 설명이다. 
 
물방울을 생성과 소멸의 순환적 흐름을 상징하거나 정화나 순화를 위한 기원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일본 미술평론가 주니치 쇼다는 "김창열의 회화를 단순한 리얼리즘 회화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면서 "스쳐 가는 시간 속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물방울의 온갖 모습이 여기 담겨 있다. 요컨대 그것은 시간의 회화"라고 말했다. 이어 "물방울 회화에서 화가의 의도는 다름 아닌 화면의 구성에 담겨 있다. 얄궂을 정도로 정묘한 구성, 시적인 공간의 아름다움과 질서가 화면을 지배한다. 여기에는 동양의 전통적인 공간 감각이 살아 있다"고 보았다.
김창열, '회귀' 연작, 1991, 캔버스에 먹과 유채, 197 x 333.3cm.[사진 갤러리현대]

김창열, '회귀' 연작, 1991, 캔버스에 먹과 유채, 197 x 333.3cm.[사진 갤러리현대]

[사진 갤러리현대]

[사진 갤러리현대]

 
1988년 도쿄 전시 당시 작가 스스로 물방울에 대해  "물방울을 그리는 것은 모든 사물을 투명하고 텅 빈 것으로 만들기 위해 용해하는 행위"라고 밝히기도 했다." 투명한 물방울에서 평생 궁극의 평온을 찾았던 화가는 결국 무의 세계로 돌아갔다. 
 
그의 작품은 프랑스 퐁피두센터, 일본 도쿄국립미술관, 미국 보스턴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등에 소장돼 있으며 김 화백은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양국 문화교류 저변 확대에 기여한 바를 인정받아 1996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를 받았다. 2013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을, 2017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오피시에를 받았다. 2016년 제주도 한경면에 김창열미술관이 개관했으며, 지난해 그의 가족은 종로구청과 함께 고인의 작업실이 있던 그의 서울 평창동 자택을 종로구립 미술관으로 조성키로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마르틴 질롱 씨와 아들 김시몽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김오안 사진작가 등이 있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 30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 7일 오전 11시 50분.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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