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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끝나기만 기다린 교실, 교육격차 더 키웠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주부 김 모(44)씨는 지난해 12월 초등 3학년 아이를 위해 미국의 한 온라인 교육사이트에 가입했다. 이곳에선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으로 영어·수학뿐 아니라 미술·체육까지 실시간 수업을 한다. 요금은 30분에 6달러(약 6500원)부터 60분에 20달러(약 2만2000원) 등 다양하다. 김 씨는 "한국시간으로 낮에 하는 수업은 80%가 한국 아이들일 정도로 인기"라고 말했다.

3회 코로나19가 키운 교육 불평등
부모의 디지털 이해활용 능력이 코로나시대 학력 결정

 
#서울 강동구에서 초등 3학년 손자와 둘이 사는 황 모(54)씨는 지난해 손자의 원격수업 출석 관리에 애를 먹었다. 손자는 학교에서 받은 원격수업용 태블릿PC으로는 주로 게임을 했다. 황 씨는 "애가 원격수업에 접속을 안 했다는 학교 전화를 매일 받았다"며 "스마트폰만 쳐다보는 애랑 실랑이하느라 힘들었다"고 말했다.

서울 강동구에 거주하는 황 모씨는 초등 3학년 손자와 둘이 살고 있다. 학교에서 원격수업용 태블릿PC를 지급했지만 출석관리는 황씨의 몫이라 애를 먹고 있다. 본인제공

서울 강동구에 거주하는 황 모씨는 초등 3학년 손자와 둘이 살고 있다. 학교에서 원격수업용 태블릿PC를 지급했지만 출석관리는 황씨의 몫이라 애를 먹고 있다. 본인제공

 

코로나가 비춘 디지털 리터러시

2020년 교실이 사라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차 대유행에 접어든 지난해 말 전국 1만 여개 초·중·고 교문은 굳게 닫혔다. 무기력하게 학교가 열고 닫기를 반복하거나 원격수업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학교 밖에선 디지털 교육격차가 새로운 골을 팠다. 부모의 디지털 이해·활용 역량, 즉 디지털 리터러시가 학생의 학업 성취도에 영향을 미치는 주 요인으로 부상했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해 11월 학생·학부모·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6%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학습격차가 발생하고 있다고, 79.2%는 온라인 학습 인프라에 따른 교육격차가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교사가 느낀 학생 간 학습격차.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교사가 느낀 학생 간 학습격차.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부모의 디지털 리터러시는 소득 수준이나 거주지와 무관치 않다. 지난해 7월 경기도교육연구원의 도내 학생·학부모·교사 5만5000명 설문조사에 따르면, 경제 수준이 높고 대도시에 사는 학생일수록 학습용 디지털기기나 소프트웨어를 잘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가 키운 디지털 교육격차.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코로나가 키운 디지털 교육격차.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민낯 드러낸 공교육

코로나19로 비대면·비등교 수업이 장기화하자 공교육에 대한 평가도 박해졌다. '교실 집체 교육'으로 학업 성취도가 낮은 학생의 학습결손을 보완하던 학교의 역할이 코로나19로 부실해졌기 때문이다. 


변화에 소극적인 공교육의 고질병도 학부모 불만을 샀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대다수 학교는 실시간 쌍방향 수업 대신 기제작된 동영상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등교 수업을 대체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실시간 쌍방향 수업은 지난해 4월말 기준 13%에 그쳤다. 학부모들은 "EBS방송과 유튜브 보기가 수업이냐"는 냉소가 나왔다.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지금의 원격수업은 일방적으로 강의하거나 동영상만 틀어주는 경우가 태반이라 기초학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며 "교육부는 원격수업을 전면 재정비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는 학교의 권위도 흔들었다. 전문가들은 학교의 지식·정보 전달 기능이 올해 완전히 무너졌다고 진단했다.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은 "일단 학교에 오면 억지로라도 책상에 앉아 수업을 듣던 학생들은 코로나19 이후 이런 환경이 사라지자 학업 성취도가 떨어졌다"며 "학교가 사실상 학습 관리자 역할에 머물고 있다는 걸 방증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인성·생활지도마저 학교에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원격수업 절반은 ‘일방통행’.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원격수업 절반은 ‘일방통행’.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코로나, 에듀테크를 키우다

공교육이 헤매는 사이 사교육과 일부 학교는 '디지털 교실'을 완성해갔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에도 일부 사립 초·중·고교와 국제중·특수목적고(특목고)·자율형사립고(자사고)에서는 시간표대로 전 과목 쌍방향 수업을 진행했다. 국·영·수뿐만 아니라 예체능도 모두 온라인으로 소화했다.
 
해외에서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온라인 학습의 질도 끌어올렸다. 원래 디지털 기기와 온라인 수업에 적극적이던 영국·핀란드·호주 등은 주저없이 원격수업으로 전환했다. 호주 시드니에서 초등학교 1·3학년 두 자녀를 키우는 최 모(44)씨는 "학교에서 유료 독서교육 앱을 무료로 제공해주고, 온라인 수학 학습 사이트에서 과제·평가가 이뤄졌다"며 "게임으로 영어 발음·철자를 배우는 앱 등 재미있는 디지털 프로그램이 많아 아이들 만족도도 높았다"고 설명했다.
 

"코로나 끝나도, 예전같은 공교육은 안 돼"

지난해 12월, 서울 노원구 화랑초등학교의 한 교사가 긴급 돌봄 학생을 위한 대면 수업과 원격 수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서울 노원구 화랑초등학교의 한 교사가 긴급 돌봄 학생을 위한 대면 수업과 원격 수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에서도 공교육이 기술을 교육격차 해소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교육부 장관을 지낸 이주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인공지능(AI) 기반 맞춤교육을 학부모들은 좋아하지만 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라 접근성 차이가 크다"며 "민간에서 검증된 제품을 교육부가 학교에 도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범사업 형태로 일부 학교에 AI 교육 프로그램을 보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장 반응은 시큰둥하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정부가 600억원을 들여 개발했다는 디지털 교과서도 무용지물"이라며 "사교육에서나 가능한 첨단 AI 교육 기자재를 학교에 기대하는 건 무리 아니냐"고 말했다. 기자재 도입 중심의 시범 사업이 반복되면서 교육 현장에선 냉소가 짙어졌다. 
 
결국 교육 당국도 '대면 교육'이라는 익숙한 길에 머물러 있다. 교육부는 지난해 10월부터 3개월간 중하위권 고교생 2200여 명을 대상으로 수석교사 430여명이 1:1로 지도하는 온·오프라인 학습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각 시·도 교육청도 사범대생과 퇴직 교사 등을 활용해 기초 학력이 부진한 학생을 상담·지도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일부 대상 대면 교육은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강대중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경직된 공교육이 코로나19로 기술을 수용할 수밖에 없게 됐다"며 "코로나19가 종식되어도 교육만큼은 과거로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교사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장기적으론 에듀테크 서비스를 보조 교사처럼 활용해 학생 개인별 학습을 지원하고 교사는 정서교육과 소통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교실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미·김지아 기자 gae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