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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 버스의 새해…故노회찬 마음 울린 그들 오늘도 탔다

중앙일보 2021.01.04 12:05
새해 첫 월요일, 새벽 4시 첫차인 6411번 버스. 여성국 기자

새해 첫 월요일, 새벽 4시 첫차인 6411번 버스. 여성국 기자

 

새해 첫 월요일, 6411번 버스 첫차 

2021년 새해 첫 월요일인 4일, 새벽 3시 40분부터 서울 구로구 태진운수 차고지에서는 두 남자가 입김을 불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녹색 지선버스인 6411번을 운행하는 양창혁(34)씨와 이경호(48)씨였다. 양씨는 "지하철이 없는 시간에 강남에 가는 시민들이 워낙 많아서 첫차로 두 대가 동시에 출발한다"고 설명했다. 
 
13년 동안 6411번 노선을 운전한 이경호(48)씨는 "코로나로 승객이 약간 줄었지만, 흑석동을 지나면 두 대가 모두 사람들이 비좁을 정도"라고 했다. 지난 1일에 이어 새해 두 번째 출근인 그는 “올해 처음 출근하는 분들이 꽤 되실 것”이라고 했다.
고 노회찬 원내대표 빈소 조문 행렬   (서울=연합뉴스) 24일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2018.7.24 [사진공동취재단]

고 노회찬 원내대표 빈소 조문 행렬 (서울=연합뉴스) 24일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2018.7.24 [사진공동취재단]

 
6411번은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 덕분에 존재감이 생긴 버스다. 2012년 한 연설에서 "누가 어느 정류소에서 타고 어디서 내릴지 모두가 알고 있는 매우 특이한 버스"라고 언급하면서다. 이 버스를 타는 이들에 대해 "이름이 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 그냥 아주머니,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이라면서 "존재하되 우리가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이라고 불렀다. 노 의원이 2018년 7월 생을 마감하면서 6411번 버스는 다시 주목받았다.
 
이씨가 출발 전 버스를 소독하는 동안 버스 안 라디오에서는 구슬픈 옛 노래가 나왔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욱마다 눈물 고였다"
이씨가 시동을 걸 동안 노래를 찾아봤다. 1940년에 발표된 〈나그네 설움〉이었다. 노래 가사가 노 전 의원의 연설 내용과 엮였다. 6411번 버스의 주제곡처럼 다가왔다.
6411번 버스를 운전하는 이경호씨가 운행 시작 전 버스 안을 소독하고 있다. 여성국 기자

6411번 버스를 운전하는 이경호씨가 운행 시작 전 버스 안을 소독하고 있다. 여성국 기자

 

"코로나에도 청소 일자리 지킨 게 행운"

서울 미래초등학교를 지나 신도림역에서 하나둘 승객들이 타기 시작했다. 신도림역에서 탄 이모(60)씨는 "새해 첫 출근을 한다"고 했다. 30대 두 자녀를 둔 이씨는 한티역 근처의 건물에서 청소노동자로 3년째 일하는 중이다. 오전 6시부터 일을 시작한다. 그는 "친구들이 나를 행운아라고 부른다"고 했다. "식당 일을 하는 또래 친구들이 많은데 코로나로 식당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그만두게 된 친구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청소 일로 코로나 피해가 없으니까 복 받았다고 하는 거지."
 
‘복 받았다’는 이씨의 수입도 줄었다. 코로나가 심해지기 전엔 주말에 식당 일을 했었기 때문이다. 주말 이틀을 일하면 총 25만4000원을 손에 쥐었다. 이씨는 "코로나로 수입이 줄어 아쉽다. 더 늙기 전에 좀 더 벌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또 "요즘 부동산이나 주식 얘길 많이 하는데 그런 건 잘 모른다"면서 “새해에는 코로나가 빨리 지나가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집값 너무 올라. 돈 많은 사람만 좋은 세상"

또 다른 승객 60대 A씨는 고대 구로병원에서 10년 넘게 일한 청소 노동자였다. A씨는 "병원 안도 밖도 위험한 건 둘 다 똑같다"고 말했다. A씨는 "집값이 너무 올라 짜증이 난다. 애들이 집 사기 더 어려워졌다. 돈 많은 사람만 좋은 세상을 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갑을 끼지 않은 그의 손은 거칠었다. A씨는 "10억을 벌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가만히 있어도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걸 우리가 어떻게 따라가냐"고 반문했다. 새해 소망은 돈을 많이 버는 거라고 했다. "배운 게 부족해 정치는 잘 모른다. 그래도 뉴스는 안 본다. 매일 다들 싸우기만 하니까"라는 말을 남긴 A씨는 고대 구로병원에서 내렸다.  
건설현장 노동자 강민식씨는 매일 6411번 버스를 타고 강남 개포동 건설현장으로 출근한다. 여성국 기자

건설현장 노동자 강민식씨는 매일 6411번 버스를 타고 강남 개포동 건설현장으로 출근한다. 여성국 기자

 
중국 교포라고 밝힌 강민식(61)씨는 건설현장 노동자다. 강씨는 10년 넘게 현장에서 일한 베테랑이다. 현장에선 날마다 코로나 검사를 하고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한다고 했다. 강씨는 "현장 일도 힘들지만, 코로나로 인해 삶이 더 힘들어졌다"면서 "새해에는 아내도 결혼한 자녀들도 다 건강했으면 좋겠다. 병 안 걸리고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버스가 구로구를 지나 대방역 인근을 지날 때 누군가 "오늘 그이는 왜 안 탔지?"라고 말했다. 주변의 다른 청소노동자들도 "그러게 오늘 안 탔네"라고 맞장구를 쳤다. 다른 일터에서 일해도 같은 버스를 오랜 기간 타고 다닌 그들은 서로에게 타인이 아닌 친구고 동료 같았다. 대방역부터 사람들이 늘어나 40여명이 버스에 가득 찼다.
운행 중 승객으로 가득 찬 6411번 버스. 여성국 기자

운행 중 승객으로 가득 찬 6411번 버스. 여성국 기자

 

“배달 음식 쓰레기로 힘들어져”

새벽 4시 45분쯤 노량진 수산시장을 지났다. 인터뷰 하고 싶지 않다던 청소노동자 박모(68)씨가 못 이기는 척 대화에 응했다. 박씨는 선릉역 근처 다단계 회사 건물에서 일한다. 코로나로 인해 다단계 회사 건물에 사람들이 모이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건물이 예전만큼 더럽지 않다고 했다. "옆 건물 청소하는 사람들은 코로나로 직장인들이 배달음식을 엄청 먹으니까, 포장 쓰레기에 음식물 찌꺼기 때문에 일이 더 힘들어졌대."
 
그는 새해 소망으로 돈을 더 많이 벌고 싶다고 하면서도 젊은 사람들 걱정을 했다. "젊은 사람들이 월급 타서 집 사기 어려워진 세상을 살고 있다"면서 "애들(자녀들)한테 너네도 주식이 많이 오르니 주식을 좀 하라고 했더니 이미 다들 하고 있다고 하더라고. 우리 애들도 돈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씨는 6411번 버스 첫차를 타고 다니면서 이렇게 취재하는 기자들을 몇 번 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자에게 "뭘 시정해달라고 할 거냐"고 물었다. 기자들이 이 버스를 타는 사람들 이야기를 쓰는 건 뭔가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 쓰는 게 아니냐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있는 그대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취재 목적을 말한 뒤 그에게 되물었다. "뭘 시정했으면 좋겠어요?" 
구로에서 출발해 강남을 가로 지르는 6411번 버스. 여성국 기자

구로에서 출발해 강남을 가로 지르는 6411번 버스. 여성국 기자

 

"버스가 조금 더 빨리 가길 바랄 뿐" 

잠시 고민하던 박씨는 "말하고 바뀌었으면 벌써 바뀌었겠지. 그냥 이 버스가 조금만 더 빨리 갔으면 좋겠어. 일하기 전에 좀 더 여유 있게 도착하고 싶어. 우리한텐 이 버스뿐인데…." 이 말을 남긴 그는 다음 정류장인 선릉역에서 내렸다. 40~50명 정도로 붐볐던 버스는 한티역을 지나 텅 비었다. 마지막 정류장인 개포중학교를 지나 회차를 할 때는 운전을 한 이경호씨와 기자 외엔 아무도 없었다.
 
내일 새벽 4시에도 6411번 버스엔 청소노동자 이씨와 박씨, A씨가 탈 것이다. 새벽 노동자를 구로에서 가득 채운 버스는 강남 한복판을 가로지를 것이다. 고 노회찬 의원의 말처럼 '존재하되 우리가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새해 내내 일터로 데려다줄 것이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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