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 첫 월요일, 새벽 4시 첫차인 6411번 버스. 여성국 기자
새해 첫 월요일, 6411번 버스 첫차
13년 동안 6411번 노선을 운전한 이경호(48)씨는 "코로나로 승객이 약간 줄었지만, 흑석동을 지나면 두 대가 모두 사람들이 비좁을 정도"라고 했다. 지난 1일에 이어 새해 두 번째 출근인 그는 “올해 처음 출근하는 분들이 꽤 되실 것”이라고 했다.
![고 노회찬 원내대표 빈소 조문 행렬 (서울=연합뉴스) 24일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2018.7.24 [사진공동취재단]](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101/04/700a819b-ae8a-4801-b0d1-3978c01f838a.jpg)
고 노회찬 원내대표 빈소 조문 행렬 (서울=연합뉴스) 24일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2018.7.24 [사진공동취재단]
6411번은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 덕분에 존재감이 생긴 버스다. 2012년 한 연설에서 "누가 어느 정류소에서 타고 어디서 내릴지 모두가 알고 있는 매우 특이한 버스"라고 언급하면서다. 이 버스를 타는 이들에 대해 "이름이 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 그냥 아주머니,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이라면서 "존재하되 우리가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이라고 불렀다. 노 의원이 2018년 7월 생을 마감하면서 6411번 버스는 다시 주목받았다.
이씨가 출발 전 버스를 소독하는 동안 버스 안 라디오에서는 구슬픈 옛 노래가 나왔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욱마다 눈물 고였다"
이씨가 시동을 걸 동안 노래를 찾아봤다. 1940년에 발표된 〈나그네 설움〉이었다. 노래 가사가 노 전 의원의 연설 내용과 엮였다. 6411번 버스의 주제곡처럼 다가왔다.

6411번 버스를 운전하는 이경호씨가 운행 시작 전 버스 안을 소독하고 있다. 여성국 기자
"코로나에도 청소 일자리 지킨 게 행운"
‘복 받았다’는 이씨의 수입도 줄었다. 코로나가 심해지기 전엔 주말에 식당 일을 했었기 때문이다. 주말 이틀을 일하면 총 25만4000원을 손에 쥐었다. 이씨는 "코로나로 수입이 줄어 아쉽다. 더 늙기 전에 좀 더 벌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또 "요즘 부동산이나 주식 얘길 많이 하는데 그런 건 잘 모른다"면서 “새해에는 코로나가 빨리 지나가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집값 너무 올라. 돈 많은 사람만 좋은 세상"
장갑을 끼지 않은 그의 손은 거칠었다. A씨는 "10억을 벌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가만히 있어도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걸 우리가 어떻게 따라가냐"고 반문했다. 새해 소망은 돈을 많이 버는 거라고 했다. "배운 게 부족해 정치는 잘 모른다. 그래도 뉴스는 안 본다. 매일 다들 싸우기만 하니까"라는 말을 남긴 A씨는 고대 구로병원에서 내렸다.

건설현장 노동자 강민식씨는 매일 6411번 버스를 타고 강남 개포동 건설현장으로 출근한다. 여성국 기자
중국 교포라고 밝힌 강민식(61)씨는 건설현장 노동자다. 강씨는 10년 넘게 현장에서 일한 베테랑이다. 현장에선 날마다 코로나 검사를 하고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한다고 했다. 강씨는 "현장 일도 힘들지만, 코로나로 인해 삶이 더 힘들어졌다"면서 "새해에는 아내도 결혼한 자녀들도 다 건강했으면 좋겠다. 병 안 걸리고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버스가 구로구를 지나 대방역 인근을 지날 때 누군가 "오늘 그이는 왜 안 탔지?"라고 말했다. 주변의 다른 청소노동자들도 "그러게 오늘 안 탔네"라고 맞장구를 쳤다. 다른 일터에서 일해도 같은 버스를 오랜 기간 타고 다닌 그들은 서로에게 타인이 아닌 친구고 동료 같았다. 대방역부터 사람들이 늘어나 40여명이 버스에 가득 찼다.

운행 중 승객으로 가득 찬 6411번 버스. 여성국 기자
“배달 음식 쓰레기로 힘들어져”
그는 새해 소망으로 돈을 더 많이 벌고 싶다고 하면서도 젊은 사람들 걱정을 했다. "젊은 사람들이 월급 타서 집 사기 어려워진 세상을 살고 있다"면서 "애들(자녀들)한테 너네도 주식이 많이 오르니 주식을 좀 하라고 했더니 이미 다들 하고 있다고 하더라고. 우리 애들도 돈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씨는 6411번 버스 첫차를 타고 다니면서 이렇게 취재하는 기자들을 몇 번 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자에게 "뭘 시정해달라고 할 거냐"고 물었다. 기자들이 이 버스를 타는 사람들 이야기를 쓰는 건 뭔가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 쓰는 게 아니냐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있는 그대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취재 목적을 말한 뒤 그에게 되물었다. "뭘 시정했으면 좋겠어요?"

구로에서 출발해 강남을 가로 지르는 6411번 버스. 여성국 기자
"버스가 조금 더 빨리 가길 바랄 뿐"
내일 새벽 4시에도 6411번 버스엔 청소노동자 이씨와 박씨, A씨가 탈 것이다. 새벽 노동자를 구로에서 가득 채운 버스는 강남 한복판을 가로지를 것이다. 고 노회찬 의원의 말처럼 '존재하되 우리가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새해 내내 일터로 데려다줄 것이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