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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철의 퍼스펙티브] 사법부가 ‘나라의 어른’ 역할하며 대한민국 구해야

중앙일보 2021.01.04 00:25 종합 23면 지면보기

위기 맞은 한국 민주주의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250여년 전 저 멀리 미국이란 나라에서 전무후무한 정치 이노베이션(혁신)이 시작됐다. 바로 나라의 주인을 ‘왕’에서 ‘국민’으로 바꾸는 듣도 보도 못한 실험이었다. 대통령 중심제라는 이 이노베이션으로 미국은 거대하게 성공했다. 그래서 가장 자유로우면서도 풍요하고 강력한 나라가 됐다.
 

미국 대통령제 성공 비결은 사법부가 나라의 어른 역할 했기 때문
다른 나라들 대통령제 실패한 것은 사법부의 중요성 몰이해가 원인
울산·원전·옵티머스 3대 게이트 어떻게 처리되느냐가 한국 운명 결정

그러나 불행하게도 미국 외에는 지구촌에서 대통령제에서 성공한 나라가 거의 없다. 우리나라를 보라! 4·19 혁명과 5·18 광주항쟁 등 수백 명이 목숨을 잃는 비극에다 두 번의 군사 쿠데타, 수많은 무고한 국민의 투옥과 고문 등 뼈 아픈 시련들을 많이 겪었다. 칠레·멕시코·콜롬비아·베네수엘라·필리핀·월남 등 그런 나라는 숱하다.
 
그런 점에서 서로 아무런 연고도 없는 각국의 수천만 이민자가 모여 나라를 만들고서는 50개 주로 나눠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평화롭고 질서 있게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것은 실로 경이로운 일이다. 미국은 도대체 무엇을 잘했던 것일까?
  
미국 사법부, 최고 헌법 기구로 자리 잡아
 
딱 한 가지 비결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법부 우위’를 근간으로 한 미국의 헌법 체계였다. 250여년 전 필라델피아에 모인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나라의 체계를 잡으며 제일 먼저 합의한 것은 ‘삼권 분립’이었다. 권력을 입법·행정·사법으로 쪼개 놔야 국민 권리가 함부로 침해당하지 않을 것임을 간파했던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 가지 이슈에 대해서는 합의가 쉽지 않았다. 바로 입법부·행정부·사법부 간 이견이 있을 때 어느 곳이 최종 결정권을 가져야 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많은 건국의 아버지들은 그 권한을 입법부가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국민주권’ 원칙에 맞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후일 미국 3대 대통령이 되는 토머스 제퍼슨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그것을 사법부가 가져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매번 다가오는 선거에 시달리면서 입법부와 행정부가 국가 백년대계만 생각하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리기는 무척 어려우리라는 것이었다. 제퍼슨의 생각에 공감이 이루어지면서 사법부가 행정부와 입법부를 압도하는 최고의 헌법 기구로 자리 잡게 됐다. 바로 사법부가 ‘나라의 어른’이 된 것이었다.
 
그러면서 건국의 아버지들은 사법부가 그 ‘어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데 필요한 제도적 인프라, 즉 연방 판사들에 대한 종신 임기제도 깔아주었다. 이런 보호막 속에서 연방 판사들은 막중한 사명감을 가지고 국민 삶의 모든 영역에서 미국의 헌법 정신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하는 일에만 매진하게 되었다. 자연히 연방 법원은 행정부나 입법부가 벌이는 온갖 비헌법적 행위에 대해 철퇴를 내리게 되었고 사심 없고 공평한 연방 법원 덕에 미국은 진정으로 법치가 실현되는 나라로 발전하게 됐다.
 
대한민국을 포함해 다른 거의 나라들이 하나같이 대통령제에서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이 미국 헌법 체계의 핵심을 간과했기 때문이었다. 대통령제를 도입하면서 의도적이든 아니든, ‘사법부 우위’ 원칙은 제대로 도입하지 않았던 것이다. 왜 내각제는 그렇지 않은데 유독 대통령제에서만 이 점이 그렇게 중요할까?
 
내각제와 대통령제의 근본적인 차이는 딱 한 가지이다. 바로 ‘유연성’의 문제이다. 내각제에서는 총리와 집권당이 민심을 잃으면 언제라도 국회 해산과 총선을 통해 정권 교체를 이룰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제는 다르다. 대통령은 그가 아무리 민심을 잃어도 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손을 댈 수가 없다. 그러면서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력을 준다. 그러니 대통령은 임기 중에는 쫓겨날 걱정을 하지 않으면서 엄청난 권력을 마음껏 누린다. 이 ‘대통령 맛’이 너무나 달콤하기 때문에 누구를 불문하고 한 번 정권을 잡으면 내주고 물러나기를 꺼리게 된다. 자연히 대통령과 여당은 장기 집권 내지 정권 재창출을 위해 온갖 무리수를 두게 된다. 대통령의 힘이 워낙 세기 때문에 야당이나 국민이 그 무리수들을 저지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거의 필연적으로 격렬한 갈등과 피비린내 나는 패싸움이 뒤따른다. 이것이 대통령제의 본질적 약점이다.
  
판사들의 용기와 소신이 희망
 
미국만이 유일하게 대통령제에서 성공한 원인은 바로 그런 갈등 상황에서 ‘나라의 어른 노릇’을 하는 강력하고 공정한 심판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법부가 대통령이나 여당이 벌이는 여러 수작을 다 제어해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연출하고 주연한 윤석열 검찰총장 정직 파동은 권력이 얼마나 오만하게 안면 몰수하면서 또 위선적일 수 있느냐를 여실히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역사에 기록될 만한 큰 사건이었다. 가장 국민을 분노케 한 것은 그 위선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국민을 너무 우습게 보았다. 문재인 정권의 3대 게이트(울산 게이트, 원전 게이트, 옵티머스 게이트)를 추궁하려는 검찰총장을 제거하고자 하는 의도가 그렇게 뻔히 보이는 대도 그것을 ‘검찰 개혁’이라고 호도하면서 정의의 사도인 양 의기양양 으스대는 모습에 많은 국민이 구역질을 느낄 정도로 거대한 혐오와 분노를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만일 코로나19가 없었다면 수백만 시민이 거리로 뛰쳐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이 보우하사 이 정권의 그 사악한 시도는 대한민국 법원이 내린 2개의 심판으로 좌절시킬 수 있었다. 그 심판을 내린 법원의 용기와 결단은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기록될, 또 기록돼야 할 값진 사건이다. 미국 대통령제가 성공한 것은 바로 미국의 연방 법원 판사들이 지난 역사에서 수백 번 이런 부류의 용감한 심판들을 내렸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드디어 그런 사건이 터진 것이다. 평생 임기 보장 같은 안전망도 없는 우리 판사들에게서 그런 용기와 소신이 나올 수 있었다는 사실에서 국민은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다시 진정한 희망을 갖게 됐다.
 
그 희망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지금 여전히 정말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문재인 정권은 앞으로도 계속 3대 게이트 무마를 위해 각종 무리수를 둘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 시도 중 일부는 앞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사법부가 사명 감당 못 하면 내각제로 가야
 
첫째, 진보 여당이 국회를  확실히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회의 힘으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너무나 많다. 둘째, 처절할 정도로 단결해 막무가내식으로 분출되는 문 대통령 지지자들의 그 대단한 에너지이다. 소위 ‘진보의 섣부른 분열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가져왔다’는 소위 ‘노무현 신드롬’은 진보 인사들에게 국가 이익보다 진보의 정파적 이익과 단결을 절대 우선해야 한다는 거의 종교적인 신념을 심어 주었다. 그를 바탕으로 한 집단 문화가 형성돼 버린 것이다. 재작년 조국 파동에서 시현된 친문 진보의 그 비합리성과 광기는 앞으로도 계속 일종의 사교(邪敎) 집단 같은 광신적 에너지를 분출할 가능성이 크다.
 
국회의 힘과 이 광기적 에너지가 합쳐질 때  앞으로 무슨 과격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역사적으로 보면 한 나라의 민주주의는 ‘불의’를 덮으려는 ‘불의적’ 시도가 성공할 때 급격히 쇠망했다. 그런 면에서 대한민국은 지금 정말 중요한 역사적 갈림길에 서 있다. 그런데 이 절체절명의 위기로부터 나라를 구해줄 제도적 힘을 가진 곳은 지금 우리에게 사법부밖에 없다. 사법부가 이때 ‘나라의 어른’ 노릇을 해야 한다. 그래서 나라를 구해야 한다. 사법부가 만일 앞으로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은 지구촌에서 미국 다음으로 대통령제에서 성공한 나라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 우리 사법부가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면 우리는 대통령제를 포기하고 내각제로의 개헌을 정말 심각히 모색해 봐야 할 것이다. 사법부 우위가 확립되지 않은 대통령제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사실상 허구이기 때문이다. 
 
전성철 글로발스탠다드연구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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