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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의금 80% 카톡으로” “장례식장 식사 조문객 70% 감소”

중앙일보 2021.01.04 00:02 종합 4면 지면보기

코로나가 바꾼 세상〈상〉 

2020년 지구가 바이러스로 ‘연결’됐다. 인터넷 이후 가장 강력한 연결이다. 2020년은 코로나19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의 변화
‘돌밥돌밥’ 가사노동 의미 재발견
집, 잠자는 곳서 일·휴식 공간으로
셀프 인테리어 용품 구매 5.4배
기업에선 직원 자녀 온라인 돌봄

코로나19로 현대인의 바쁜 일상이 멈춰섰다. 급정거의 충격은 개인과 사회의 건강함을 시험했다. 이젠 관성을 넘은 삶이 새로이 보인다. 2021년은 삶의 재발견이다.
 
세계는 이미 달라졌다. 체면을 벗은 관계, 강요된 희생을 넘은 돌봄, 취향을 존중하는 일상이 초연결 사회의 ‘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이다.
 
◆관계의 재발견=‘관혼상제의 민족’이 변했다. 카카오모빌리티의 내비게이션 앱 ‘카카오T’에서 코로나 전(지난해 1월 1~20일 평균)과 후의 이동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다. 코로나 1차 확산기인 지난해 2월 말 여가활동(레저·공원·숙박)과 경조사(예식장·장례식장) 이동은 각각 -41%, -43%로 반 토막이 났다.
 
2020년 코로나가 바꾼 일상의 소비. 김영희 기자

2020년 코로나가 바꾼 일상의 소비. 김영희 기자

코로나 기세가 꺾인 5월 초와 10월 중순, 여가 이동은 코로나 전보다도 +95%, +41%로 늘었지만 경조사 이동은 -2%, -22%로 여전히 감소 상태였다. 남의 행사 방문 대신 내 여가를 누리는 게 당연해진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8~12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식사한 조문객은 빈소당 평균 81명으로, 전년 동기 평균(251명)의 3분의 1로 줄었다.
 
‘모바일 마음 송금’도 엄연한 예(禮)다. 지난해 12월 경기도에서 결혼한 직장인 나모(33)씨는 축의금 봉투의 80%를 카카오톡으로 받았다. 나씨는 “주는 사람들은 약간 민망해했지만, 이렇게 챙겨주니 신기하고 고마웠다”고 말했다. 카카오페이 송금에 결혼 축하 문구를 넣는 ‘축의금 봉투’ 이용량은 코로나 이전(1월)보다 8월에 100%, 12월에는 353% 늘었다.
 
코로나 시대의 경조사 이동. 김영희 기자

코로나 시대의 경조사 이동. 김영희 기자

‘술 마셔야 진심 나온다’는 신화는 깨졌다. 재택근무가 길어지자 기업들은 새로운 조직문화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LG화학은 지난해 4월 한국·미국·유럽·중국의 1만8500명 사무·기술직 전 직원에게 스마트워크를 도입했다. 협업 솔루션으로 일하고 회의는 영상으로 한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업무 성과에 필수적이지 않은 네트워크가 뭔지 알게 됐다”며 “앞으로도 인맥 유지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은 줄고, 사회 자본이 좀 더 효율적으로 운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돌봄의 재발견= 코로나19로 직장도, 어린이집도 가지 않는 돌봄대란과 삼시세끼 ‘돌밥돌밥’(돌아서면 밥)을 겪으며, 돌봄·가사 노동의 가치가 재발견됐다. ‘직접 봐야 산다’ ‘남의 손에 못 맡긴다’는 저신뢰·저품질 때문에 정성과 희생으로 해결하던 영역이다. 이를 바꾼 건 모바일 기술이다.
 
자녀 돌봄도 가정의 문턱을 넘었다. SK는 지난해 8월부터 아이돌봄 스타트업 째깍악어에 직원 자녀를 위한 온라인 돌봄 프로그램을 맡겼다. 직원 자녀가 집에서 실시간 화상으로 돌봄 선생님과 미술·요리·음악·외국어 활동을 한다. 지금까지 500여 아동이 참가했고, 부모(직원)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9.7점. 반응이 좋자 째깍악어는 이를 일반 소비자에게 확대한 ‘째깍박스’를 시작했다.
 
코로나 꺾여도 ‘경조사 이동’ 회복 안돼. 김영희 기자

코로나 꺾여도 ‘경조사 이동’ 회복 안돼. 김영희 기자

◆집의 재발견= 집이란 잠자는 곳, 직장이란 전쟁터’(넥스트 ‘도시인’). 1992년 나온 이 노랫말은 30년간 참이었으나 이젠 아니다. 집은 일·휴식·문화의 복합 공간으로 변했다. ‘사는(live) 곳’ 내부가 중요해졌다.
 
이는 소비에서도 확인된다. 지난해 2~6월 온라인 쇼핑 쓱닷컴에서는 디퓨저·향초 같은 실내용품이 전년 동기 대비 2.3배나 팔렸다. 고가인 매트리스 판매량도 24.3% 증가했다. 코로나가 2, 3차 퍼진 지난해 하반기(7~12월)에는 아예 집안을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페인트·시트지·공구 같은 셀프 인테리어용품 구매량은 전년 동기의 5.4배로 급증했다. 옷도 행사용보다는 집에서 입기 편한 걸 많이 샀다. 지난해 2~6월 홈웨어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83% 늘어 정장 판매량 증가율(남성 30.3%, 여성 27.5%)보다 배 이상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로컬의 재발견= 글로벌 경제, 글로벌 트렌드… ‘글로벌’은 만능 접두어였다. 코로나19는 글로벌 강박 대신 우리 동네를 다시 보게 했다. 이와 동시에 뉴욕 증시를 앞마당으로 여기는 개인투자자는 늘었다.
 
글로벌 IT 기업 직원 박모(41)씨는 지난해 내내 서울 청담동 집에서 원격근무를 했다. 미국 현지 시각에 맞춰 매일 오후 일어났고, 집 근처 가게를 찾는 날이 늘었다. 한편으로 미국 증시에 관심이 높아져 테슬라 등 주식을 모바일 앱으로 샀다.
 
모종린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를 “도시에서 거주지 생활권으로 중심이 옮겨오는 ‘로컬택트(local+contact)’ 시대”라고 설명했다. 코로나 이후 도시의 고밀도는 더는 경쟁력이 아니다. 모 교수는 “대기업 위주의 성장과 일자리 창출은 끝났다”며 “이제는 동네에 주택, 일자리, 상업시설이 다 있어야 한다”고 했다. 
 
심서현·하선영·정종훈 기자 sh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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