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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로 호주 연수중 연못 빠져 숨진 교사···법원 "순직 맞다"

중앙일보 2021.01.03 09:00
호주 카리지니 국립공원 페른 풀(Fern Pool).[서호주관광청]

호주 카리지니 국립공원 페른 풀(Fern Pool).[서호주관광청]

지난해 호주로 자비 연수를 떠났던 중학교 교사 A씨가 현지에서 익사 사고로 사망했다. 유족들은 “순직 유족급여를 지급해달라”고 인사혁신처에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법원에 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재판장 김국현)는 “인사혁신처의 거부처분을 취소하라”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고 3일 밝혔다.  
 

호주서 열린 지질탐사 참여…연못 빠져 사망

A씨는 2019년 1월 호주에서 열린 지질탐사 교사 자율연수에 참여했다. 교사 15명이 참가한 이 연수는 교육청에 등록된 지구과학교육 연구회에서 주최한 연수였다.
 
사고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생했다. 호주 서부 카리지니 국립공원의 지형 등을 탐방하던 중 마지막 탐사 장소인 페른 풀(fern pool)에서였다. 연수팀 중 교사 몇몇이 이 연못에 들어갔는데, A씨가 그만 물에 빠졌고, 구조됐지만 사망한 것이다.
 

자비 부담 연수여도 목적·내용 공무에 부합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연합뉴스]

이후 A씨 유족이 신청한 유족급여를 인사혁신처가 거부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A씨가 참여한 연수를 ‘공무 수행’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을 꼽았다. 해당 연수는 누가 강제해서 시킨 것이 아니라 교사들이 스스로 비용을 부담해 떠난 연수였다. 연수 내용이나 결과에 기관장이 관여하지도 않았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법원은 인사혁신처의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먼저 연수의 목적과 내용을 따졌다. 해당 연수는 과학교사인 A씨의 직무수행이나 능력을 배양하기 위한 활동으로 볼 수 있었다. A씨는 이전에도 학교의 과학동아리 지도교사로 일하기도 했고, 학생들의 지질탐사 체험학습을 인솔하기도 했다. 천체와 지질 영역에서 전문적인 학습공동체도 운영하고 있었다.
 
연수에 참여한 절차도 문제가 없었다. 학교장에게 연수 계획서를 내고, 승인을 얻어 연수에 참여했다. 다녀온 뒤에는 연수팀장이 보고서도 작성해 제출했다. 교사들이 자비로 떠난 연수였지만 소속기관의 지배나 관리를 받는 공무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해당 연수는 교육청에 등록된 교육연구회에서 주최하기도 했다.
 
게다가 국가공무원법은 교원 개개인이 자기 개발 학습을 해야 하고, 기관장은 교원의 역량과 전문성을 향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한다. 교사가 전문성 개발을 위해 연수 등을 통해 실적을 쌓는 건 근무성적평정요소에도 들어간다. 법원은 “참여 강제성이 없었다거나 연수 비용을 참가자들이 부담했다는 사정이 있다 해도 이 사건 연수는 공무로 봐야 한다”고 분명히 했다.  
 

연못 입수와 공무는 상관없다?…法 “공무 수행 인정”

호주 카리지니 국립공원 페른 풀(Fern Pool).[서호주관광청 홈페이지]

호주 카리지니 국립공원 페른 풀(Fern Pool).[서호주관광청 홈페이지]

A씨가 연못에 들어간 건 왜였을까. 인사혁신처는 “A씨 사망과 공무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정말 A씨는 공무와 관계없이 수영하다 물에 빠지게 된 걸까.
 
법원은 이에 대해 판결에서 상세히 설명했다. 법원은 “A씨가 연못에 들어간 건 연수목적에 반하거나 연수 내용과 관련 없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A씨가 공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사망했다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다.  
 
사고가 발생한 연못(페른 풀)은 카리지니 국립공원 연수의 마지막 코스였다. 연못 한쪽에는 폭포가 있었는데 지질 관련 자료를 모으던 연수팀은 폭포 아래쪽도 관찰하기로 했다. 교사 중 수영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대표로 뽑아 폭포 아래까지 수영해 관찰하기로 한 것이다. A씨를 포함한 3명의 교사가 물에 들어갔고 나머지 교사들은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연못은 입수가 자유롭게 이뤄지는 곳이었고, 연못 둘레에는 수영 편의를 위한 나무 구조물도 있었다. 안내자 2명도 동행한 상태였고, 입수 제한조치나 위험 고지는 없었다.  
 
A씨는 사고로 숨지기 전 탐방한 지역에서 광물을 수집해 방문 날짜와 장소별로 구분해뒀다. 또 지형과 천체의 사진을 촬영해두기도 했다. 추후 수업자료로 쓰일 자료들이었다. 이런 점을 종합한 법원은 “A씨는 공무 수행 중 사망했다고 볼 수 있다”며 인사혁신처의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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