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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진 치매 할머니가 어느날 귓가에 속삭였다 "고맙고 미안해"

중앙일보 2021.01.02 05:00
서울 중랑구 코로나19 전담병원인 서울의료원 고노영(25) 간호사가 확진 환자 병동으로 가기전 방호복을 입고 기도를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서울 중랑구 코로나19 전담병원인 서울의료원 고노영(25) 간호사가 확진 환자 병동으로 가기전 방호복을 입고 기도를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땀에 전 방호복, 고글 자국이 깊게 팬 이마, 한파 속 야외 선별진료소 근무로 얼어붙은 손…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방역 최선전에 섰던 의료진들의 모습이다. 이들은 2021년 새해에도 여전히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밀려드는 환자를 돌보기 위해 병원에서 숙식하고, 감염 공포에 지인조차 만나길 꺼리며 버틴 지 어언 1년.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이들은 묵었던 피로를 씻어내고 다시 희망을 꿈꾸게 했던 특별한 순간들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지난해 한 해 동안 의료진을 울리고 웃긴 사연과 이들이 기대하는 2021년 모습을 사진과 함께 정리했다.

 

4달 만에 병원서 돌아오자 딸이 건넨 ‘솔선수범 표창장’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정정옥(48) 간호사는 남편과 딸에게 받은 ‘솔선수범 표창장’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정정옥씨 제공]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정정옥(48) 간호사는 남편과 딸에게 받은 ‘솔선수범 표창장’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정정옥씨 제공]

“위 의료진은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코로나 음압 병동에서 누구보다 성실히 환자들을 치료하였으므로 가족의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표창장을 드립니다”.

대구 신천지발(發) 집단감염 사태가 벌어졌던 지난해 2월 최전방 의료진으로 활약했던 정정옥(48) 간호사. 그는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4개월간 숙식하며 환자를 돌보다가 6월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막 집에 도착한 정 간호사에게 고등학교 2학년 딸과 남편이 건넨 건 직접 만든 표창장이었다. 정 간호사는 “깜짝 선물을 받고 감동했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2021년에는 가족과 침 튀기며 이야기하고 여행 다니는 평범한 일상을 꿈꾼다”고 말했다.
 

치매 할머니가 속삭인 “고맙고 힘들게 해서 미안” 

스타트업 널스노트 대표이기도 한 오성훈 간호사(29)는 지난 3월 코로나19 전담병원 근무를 자원해 경상북도 안동의료원에서 근무했다. [오성훈씨 제공]

스타트업 널스노트 대표이기도 한 오성훈 간호사(29)는 지난 3월 코로나19 전담병원 근무를 자원해 경상북도 안동의료원에서 근무했다. [오성훈씨 제공]

지난해 3월 코로나19 전담병원 근무를 자원해 경상북도 안동의료원에서 근무한 오성훈(29) 간호사(현 널스노트 대표)는 요양병원에서 확진돼 입원한 70대 치매 할머니를 기억했다. 당시 보호자가 못 들어와 병시중을 도맡았던 의료진들은 할머니가 기저귀를 벗거나 링거 뽑기를 반복해 애를 먹었다고 했다. 오 간호사는 “시간이 지나면서 너무 힘들다는 생각도 했는데 의료 지원을 마치기 이틀 전 할머니가 나를 불렀다. 그렇게 말을 안 듣던 분이 정신이 돌아오셨는지 내 귓가에 대고 ‘고맙고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고 속삭였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고생한 것들이 녹아 없어지면서 '자원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심폐소생 끝에 기적적으로 살아난 심정지 환자”

강원도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외상 응급실에서 일하는 김한용(36) 간호사. 땀에 절은 방호복을 벗자 손이 퉁퉁 불어있는 모습이다. [김한용씨 제공]

강원도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외상 응급실에서 일하는 김한용(36) 간호사. 땀에 절은 방호복을 벗자 손이 퉁퉁 불어있는 모습이다. [김한용씨 제공]

코로나19 전담 병원이 아니라도 언제든 의심 환자가 올 수 있기 때문에 일반 의료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특히 응급실은 방호복을 입고 근무해야 한다.
강원도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외상 응급실에서 일하는 김한용(36) 간호사는 “심정지 환자를 살렸을 때의 기쁨이 훈장처럼 남아있다”고 회고했다. 지난해 12월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40대 환자가 고열 증상 등으로 응급실에 왔다. 환자는 응급실 격리구역에서 심정지를 일으켰다. 김 간호사는 즉시 심폐소생을 시행했다. 그는 “가슴 압박 후 의식 확인을 위해 성함을 불렀는데 환자가 기적처럼 반응했다. 다리에 힘이 쫙 풀려 주저앉았다”며 “환자를 살렸다는 행복감에 그동안 힘들었던 시간이 다 잊혔다. 코로나는 종식되지 않았지만, 우리 역시 아직 쓰러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수고가 많다” 위로 한마디에 울컥 눈물

지난 24일 경남 마산의료원에서 근무하는 강예현(30) 간호사에게 학생들이 보내 온 감사 편지. [강예현씨 제공]

지난 24일 경남 마산의료원에서 근무하는 강예현(30) 간호사에게 학생들이 보내 온 감사 편지. [강예현씨 제공]

경남 마산의료원에서 근무하는 강예현(30) 간호사는 지난 크리스마스이브에 학생들이 보낸 응원 편지를 떠올렸다. 강 간호사는 “초등학교 학생들이 삐뚤빼뚤한 손글씨로 편지를 보냈는데 이런 마음들이 우리를 힘 나게 하는 것 같다”며 “환자들이 ‘너무 고생이 많다’ ‘수고한다’고 해주는 격려 한마디가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2020년 한 해가 코로나로 지나가 버렸지만 방역 지침을 지키며 다시 한번 노력하면 그 어떤 질병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전국서 대구로 달려 와준 의료진 은혜, 이젠 우리가 갚겠다

지난 2월 대구신천지발 집단감염이 시작되자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으로 파견 온 의료진들이 방호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다.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제공]

지난 2월 대구신천지발 집단감염이 시작되자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으로 파견 온 의료진들이 방호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다.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제공]

3차 대유행이 시작돼 전국서 확진자가 속출하는 현재 남성일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 부원장은 지난 2월 대구로 달려 와준 의료진들에 대한 고마움이 새삼 떠오른다고 했다. 남 부원장은 “당시 정말 많은 의료진이 파견 와 우릴 도와줬는데 참 쉽지 않은 결정을 해준 거구나 싶다”며 “우리도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울산에서 발생한 확진자 60여명과 수도권에서 온 확진자 30여명을 받아 돌보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물리적으로 힘들지만 이런 면에선 전국이 하나 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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