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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코의 ‘울리는’ 미술, 디지털시대 창조성 밑거름

중앙선데이 2021.01.02 00:20 718호 18면 지면보기

[영감의 원천] 로스코의 ‘레드’와 김환기의 ‘블루’

왜 어떤 그림은 특히 유명하고 그래서 다른 그림뿐 아니라 영화나 문학, 나아가 과학이나 비즈니스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영감의 원천이 되는 그림과 그 파장의 너울에 대하여.
 

잡스,‘단순한 표현’ 제품에 반영
시나리오 작가 로건도 영향받아

김환기 “가장 존경하는 예술가”
‘우주’ 그려 숭고의 미학 공유
강이연, 미디어 아트로 재창조

“일을 하며 음악을 들으며 간혹 울 때가 있다…울리는 미술은 못할 것인가.”
 
롯데백화점 월드타워점의 새 전시 ‘UNIVERSE_WHANKI 1-I-21 LOTTE MEDIA PROJECT’(1월 2일~2월 15일)에서 볼 수 있는 ‘우주’ 미디어 큐브. 문소영 기자

롯데백화점 월드타워점의 새 전시 ‘UNIVERSE_WHANKI 1-I-21 LOTTE MEDIA PROJECT’(1월 2일~2월 15일)에서 볼 수 있는 ‘우주’ 미디어 큐브. 문소영 기자

김환기(1913~1974)는 1968년 일기에 이렇게 썼다. 몇 년 후 그는 “총총히 빛나는 별”과 “뻐꾸기 소리”와 “죽어버린 친구들 또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친구들”을 생각하며 찍었다는 수많은 푸른 점들의 우주로 “울리는 미술”을 이루어냈다. 눈물이 맺히게 ‘울리는(make cry)’ 것뿐만 아니라, 마음과 공명해 ‘울리는(resonate)’ 것이다. 그런 정서적·음악적 특성 때문에 후대 미술가와 문인뿐만 아니라 그의 팬이라 밝힌 빅뱅의 탑과 BTS의 RM 같은 K팝 뮤지션들에게까지 영감을 주는 게 아닐까.
 
그 김환기의 ‘우주’(1971)가 대형 육면체를 밝히는 역동적인 미디어 아트로 재창조되어 2021년 신년 벽두에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마당에 나타났다. 지난해 미술 프로젝트 ‘커넥트, BTS’에 참여했던 강이연 작가가 ‘K+’라는 이름으로 만든 프로젝트다. 큐브 속에서 초신성의 폭발로 성운이 된 빛의 조각들은 김환기 그림의 푸른 점이 되고, 웅장한 파도나 소용돌이 같은 산맥 역시 김환기의 우주 속 동심원으로 이어진다.
 
김환기의 ‘14-XII-71 #217’(1971), 코튼에 유채, 291x210㎝. [사진 환기재단, 환기미술관]

김환기의 ‘14-XII-71 #217’(1971), 코튼에 유채, 291x210㎝. [사진 환기재단, 환기미술관]

코로나19 시대에 이 우주적 작품을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묘한 슬픔과 기쁨이 동시에 느껴진다. 무한한 우주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고 약하고 쉽게 죽는 존재인지 새삼 실감하는 데서 오는 근원적 슬픔이자, 예술에 몰입해 인간의 시공간적 유한성을 잠시 초월하는 데서 오는 원초적 기쁨이다. 그것은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말한 숭고함의 느낌이기도 하다.
 
“어릴 때 부모님과 미술관에 자주 갔는데 유난히 김환기 그림, 특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좋았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가슴 벅찬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어요.” 강 작가의 말이다. “동시대 미술이 (지적 사고에 치중하는) 개념 미술에 치우치면서 미술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의 기능을 좀 잃지 않았나 싶은데, 전 그것을 미디어 아트에서 부활시키고 싶었어요. 김환기와 마크 로스코가 회화로 성취한 숭고의 느낌을 저는 미디어 아트의 몰입적 특성을 살려 창조하고 싶은 것이죠.”
 
마크 로스코의 ‘시그램 벽화’를 바라보는 관람객. 문소영 기자

마크 로스코의 ‘시그램 벽화’를 바라보는 관람객. 문소영 기자

강이연이 김환기와 함께 언급한 마크 로스코(1903~1970)는 김환기가 “내 가장 존경하는 예술가”라고 일기에 적었던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다. 결코 칭찬을 남발하는 법이 없었던 김환기가 로스코를 극찬한 이유는 그가 “울리는 미술”을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로스코는 이렇게 말했다. “내 관심은 오로지 비극, 황홀경, 파멸 같은 인간의 기본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다. 사람들이 내 그림을 대할 때 무너져 울음을 터뜨린다는 사실은 내가 인간의 기본 감정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로스코, 비극성이 예술의 원천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

로스코 그림 속 경계가 흐릿한 거대한 색면은 김환기의 점처럼 심원한 색채의 진동을 일으키며 아득하게 트인 시공간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그 무한성 앞에서 인간은 유한성의 슬픔과 초월의 기쁨을 느낀다. 이것이 로스코에게서 창조의 영감을 받는 사람이 많은 이유다. 애플을 창업한 스티브 잡스(1955~2011)도 그중 하나다. 잡스의 누이에 따르면 “말년에 그는 자신이 전에는 잘 몰랐던 마크 로스코의 그림에 대한 책을 탐독했는데, 무엇이 미래 애플 캠퍼스(애플 본사)의 벽에 걸려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지를 생각하면서였다”라고 했다. 사실 잡스가 로스코 작품의 어떤 면에 끌렸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어떤 이들은 로스코가 1943년 바넷 뉴먼과 발표한 선언문에서 그 실마리를 찾기도 한다. “우리는 복잡한 생각의 단순한 표현을 선호한다.” 이것은 아이폰을 비롯한 애플 제품의 핵심 컨셉트이기도 하다. 그러나 잡스가 로스코에 빠져든 것은 이미 그가 애플 철학을 정립한 말년이었다.
 
오히려 잡스가 로스코에게 영감을 받은 것은 선언문의 마지막 부분이자 로스코 작품 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비극성’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주제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며, 비극적이고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주제만이 정당하다고 단언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비극성은 인간의 연약함과 시공간적 유한성에서 오는 근원적인 것이다. 로스코가 생각하는 예술은 그 비극에 무너지기보다 끝없이 씨름을 하는 것이었다. 잡스는 죽음을 예감하고 로스코의 비극성을 되새기며 마지막 창조 작업에 박차를 가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로스코에게 영감을 받아 새로운 창조를 한 사람 중에는 영화 ‘글래디에이터’(2000), ‘007 스카이폴’(2012) 등의 시나리오를 썼던 저명한 작가 존 로건(60)도 있다. 그는 로스코의 ‘시그램 벽화’를 둘러싼 실제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한 연극 ‘레드’(2009)로 토니상을 수상했다.
 
뉴욕 시그램 빌딩은 50년대 말 완공하기 전부터 화제가 된 랜드마크였는데, 이 빌딩에 들어설 고급 레스토랑 포시즌의 벽화를 로스코가 맡게 되었다. 대부분의 아티스트가 탐낼 법한 프로젝트였지만, 로스코는 1~2년 작업 끝에 돌연 계약금을 반환하고 계약을 취소했다. 그리고 준비한 그림들을 후에 영국의 테이트 미술관에 기증했다. 연극 ‘레드’는 로스코가 계약을 취소할 때까지의 심적 변화를 가상 인물인 조수 켄과의 대화와 설전을 통해 깔끔하고 힘있게 풀어나간다.
 
존 로건이 쓴 연극 ‘레드’의 한 장면. [중앙포토]

존 로건이 쓴 연극 ‘레드’의 한 장면. [중앙포토]

극 중 로스코는 ‘좋아요’ ‘괜찮아요’로 점철된 세상을 비웃으며 말한다. “나는 안 괜찮아, 우린 안 괜찮아, 우리는 괜찮은 것 말고 다야…이 그림들 봐. 봐! 어두운 직사각형 보이지, 문 같지, 구멍 같지. 그래, 하지만 이건 떡 벌린 입이기도 해. 침묵의 울부짖음을 쏟아내는 거야, 치명적이고 악취 나고 원시적이고 사실인 것에 대해!”
 
혼돈의 러시아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그리고 미국으로 이민 와 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전해 들으면서, 로스코는 인간의 어둡고 약한 면과 시공간적 한계를 끝없이 실감했을 것이다. 그 비극성이 그의 예술의 원천이었다.
 
그런데 비극성의 그림이 음식점 벽화로 웬 말인가. 극 중 켄이 그걸 문제 삼자 로스코는 “난 (내 그림으로) 그 레스토랑에서 밥 먹는 개자식들 식욕을 싹 떨어뜨려 주고 싶었다”고 항변한다. 켄이 “그 얘기, 계약할 때 했어요?”라고 대꾸할 때 웃는 관객이 많을 것이다. 로스코는 실제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고, 그런 항변은 아무래도 위선적으로 들리니까.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로스코는, 나아가 모든 예술가는, 컬렉터와 관람객을 원한다. 그래서 자기 예술이 지속가능하기를,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들에게 종속되지는 않기를 바란다. 그러다 보니 예술가는 딜레마에 빠지고, 켄은 이 점을 예리하게 파고 든다. 켄이 로스코에게 한바탕 퍼붓고 나서 “이제 저 해고되는 거죠?”라고 묻자 로스코는 “해고? 넌 이제야 처음 존재했어”라고 답한다. 그렇게 로스코는 딜레마에 무너지지 않고 컨트롤을 해나간다. 이 탁월한 긴장감이 탁월한 연극을 만든다.
  
영감이 새 영감 일으켜 감동적
 
미술사학자 로버트 로젠블럼은 로스코가 19세기 낭만주의 풍경화가들처럼 우리를 “무형의 무한으로 열린 문턱 앞에 데려다 놓고…거대한 만유의 신과 무한히 작은 피조물의 극적인 대조”로 인도한다고 했다. 그 대조에서 오는 슬픔과 두려움이 섞인 쾌감이 숭고의 감정이다. 거대한 우주를 연상시키는 김환기의 70년대 점화 역시 그 숭고의 미학을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김환기는 로스코처럼 ‘비극성’이 강하지 않다. 왜냐하면 김환기는 그의 우주를 이루는 점들이 천체일 뿐만 아니라 ‘친구들’ ‘사람들’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로스코 그림의 관람객은 로스코가 명한 것처럼 화폭에서 18인치(45.7cm) 떨어진 채 그의 그림 속 무한의 시공간으로 열린 세계를 바라보아야 한다. 반면 김환기 그림의 관람객은 그 무수한 점들의 하나가 되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의 인연을 믿으며 무한 속에서 순환할 수 있다. 그래서 김환기는 말했다. “서러운 생각으로 그리지만 결과는 아름다운 명랑한 그림이 되기를 바란다”고.
 
코로나19의 시대, 로스코와 김환기의 그림으로 인간 유한성의 비극과 초월의 기쁨을 체험하며, 또 그들에게 영감 받은 후세대 창조자들의 새로운 우주를 보면서, 우리는 영감이 새로운 영감을 일으키는 모습에 감동한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symoon@joongang.co.kr
미술전문기자. 서울대 경제학부 학·석사, 런던대 골드스미스컬리지 문화학 석사, 홍익대 예술학과 박사 과정 중. 저서로 『그림 속 경제학』(2014), 『명화독서』(2018), 『광대하고 게으르게』(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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