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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피정 기간, 영성 잘 가꿔 이웃 도와줘야”

중앙선데이 2021.01.02 00:02 718호 2면 지면보기

[SUNDAY 인터뷰] 이해인 수녀

새해 같지 않은 새해다. 새 아침의 기운을 실감하기 어렵다. 코로나와 함께해야 하는 겨울이 길게만 느껴져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이제까지 우리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뒤흔든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접촉, 연결을 타고 번진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의해 공격당하고 있다. 대규모의 재난 앞에 어려운 사람들이 더욱 고통받는다는 점도 문제다. 여유 있는 계층에 비해 소득은 줄고 감염 위험은 커진다.
 

좁은 공간에 갇혀 혼자 지낼수록
자신만 아니라 남에게 눈길줘야
‘넓은 사랑’하지 않으면 괴물 될 것

잘못 인정 리더 나와야 나라 좋아져
정치인들 새해엔 원색 비난 말고
유머 섞어가며 세련되게 싸우길

나쁜 꿈 같은 현실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방법은 뭘까.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서정시의 영성’을 실천해온 이해인 수녀. 중앙SUNDAY에 코로나 극복을 응원하는 신년 시를 보내왔다. 오종택 기자

‘서정시의 영성’을 실천해온 이해인 수녀. 중앙SUNDAY에 코로나 극복을 응원하는 신년 시를 보내왔다. 오종택 기자

‘국민 이모’ 이해인(75) 수녀는 이 시기를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으로 삼자고 제안한다. 지난해 말 출간한 인터뷰집 『이해인의 말』(마음산책)에서 ‘골방의 영성’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코로나의 골방에서 영성을 찾자는 얘기다.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고통은 혼자 방에 머물 줄 모르는 데서 온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생전 수녀와 관계가 돈독했던 법정(法頂, 1932~2010) 스님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 1978년 수녀에게 써 보낸 붓글씨 편지에 이런 문장이 있다고 한다.
 
“수도자에게 있어서 고독은 그림자 같은 것이겠지요. (…) 수도자의 고독은 단절에서가 아니라 우주의 바닥 같은 것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지요. 말하자면 절대적인 있음 안에 서 있는 자신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요. 배부른 상태에서는 고독을 느끼지 못합니다.”
 
수도자의 그림자. 우주의 바닥에서 느끼는 고독. 무슨 뜻일까. 수녀는 골방의 영성의 교훈을 이렇게 해석했다.
 
“우리는 모두 코로나 수련생이다. 코로나 시기에 깨달은 게 있다면 첫째, 인간은 혼자 살 수 없고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 둘째 그렇기 때문에 나한테서 빠져나와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의식하며 이타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성탄절인 12월 25일 오후. 코로나를 고려한 전화 인터뷰에서다. 수녀는 이례적으로 사회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어려운 이웃을 보살피는 사회적인 노력을 거론하는 대목에서 거친 언어를 주고받으며 정쟁을 일삼는 정치권을 질타했다. 여권이든 야권이든 입맛에 맞게 해석 가능한 발언이었다.
 
1978년 법정 스님이 수녀에게 보낸 붓글씨 편지. [사진 마음산책]

1978년 법정 스님이 수녀에게 보낸 붓글씨 편지. [사진 마음산책]

목소리가 맑다. 건강은 어떠신가. (※수녀는 알려진 것처럼 2008년 직장암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명랑 투병’이 고유의 수식어가 될 만큼 적어도 겉으로는 웃음을 잃지 않는다.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난 ‘감자바위 영성’, 씩씩한 영성이다.)
“큰 어려움은 없지만 이빨에 문제가 생겨 틀니를 했고, 양쪽 다리 모두에 인공관절을 해 넣었다. 암환자다 보니 항상 합병증 두려움이 있다. 건강 염려증으로 약간 우울한 성탄절을 보내고 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삶이 어떤 것인지 상상이 안 된다.
“지난해 11월 25일 친오빠가 돌아가셨다. 서울에서 만난 지 2, 3주밖에 안 됐는데…. 곧이어 같이 지내던 수녀 한 분이 돌아가셨고, 그 수녀님을 돌보던 또 다른 수녀님이 심장대동맥박리라는 병으로 기로에 서 있다가 의식을 회복했다. 죽음이 우리 삶 속에 있다는 점을 절감하게 된다. 그래서 죽음에 관계된 책들을 주문해 읽고 있다. 『엄마의 마지막 말들』 『애도의 문장들』, 이런 책들이다. 죽음을 곁에 두고 묵상하면 순간순간 삶에 충실해질 테니 사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에 이르는 투병 과정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어쨌든 끝이 있는 것이라는 사실에서 안도감을 느낀다. 수도자로서 존엄한 죽음을 맞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는데 내 허영심이겠지.”
 
죽음의 정의를 내린다면.
“자신의 본성을 내려놓고 겸손해지는 거다. 수도자인 나도 인간이다 보니 동료의 어떤 행동이 용서가 안 될 때가 있다. 홧김에 확 표현할 수 있지 않나. 그 순간 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일종의 정신적인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교만한 마음에 큰소리치고 내가 옳다고 우기고 싶을 때, 지금 이 사람하고 내가 영원히 사는 것도 아닌데 겸손으로 본성을 극복하자, 평소 정신적인 죽음 연습을 해둬야 나중에 진짜 죽을 때 잘 죽을 수 있어, 스스로 교육한다. 이렇게 몇십 년을 살다 보니 마음이 순해진 것 같다.”
 
죽음의 공포까지는 아니겠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많은 사람이 불안과 공포에 시달린다.
“좁은 공간에 갇혀 지낼수록 골방의 영성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너무 밖으로 나돌았다. 자신을 잘 들여다보되 바깥의 타자에게도 눈길을 돌려야 한다. 코로나 와중에 넓은 사랑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괴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 어떻게 남을 위하는 일로 연결되나.
“법정 스님의 편지는 인간의 고독과 한계를 더 깊이 들여다볼수록 그것을 기초로 남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얘기였다. 3년 전 돌아가신 친언니 수녀님이 평생 바깥에 나오지 않는 봉쇄 수도원에 계셨다. 만나 보면 자기한테는 엄격하면서 남에게는 바다 같이 넓고 쾌활했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는 본의 아니게 봉쇄 수도자 같은 삶을 살지 않나. 갇혀 지내다 보니 사람들이 그리워지고 남들에게 인색했던 부분들을 반성하게 된다. 가톨릭에서는 1년을 잘 살기 위해 8박 9일 피정을 한다. 코로나 시기를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피정 기간으로 생각하면 어떨까. 혼자 있는 동안 영성을 잘 가꿔 코로나가 풀리면 맨발로 뛰어나가 이웃들을 막 도와주라는 피정 말이다.”
 
개인 아닌 공동체 차원에서 형편 어려운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전 사회적으로 가톨릭의 카리타스, 그러니까 애덕(愛德)이나 자선 같은 행동을 운동처럼 실천하면 어떨까. 꼭 돈만이 아니라 재능 기부도 좋고. 가족처럼 서로 보살피며 마을 단위로 말이다.”
 
『이해인의 말』

『이해인의 말』

수녀의 ‘코로나 처방전’은 이 대목에서 정치권 질타로 이어졌다.
 
“그런데 그런 일이 몇 사람만의 이상 갖고는 잘 안 되는 것 같다. 정부 차원에서 움직여야 한다. 맨날 싸움만 하지 말고. 아이들이 신문에서 여당 야당 싸움하는 것만 본다. 공부는 해서 뭐하나, 이런 생각을 할 것 같다. 정치인들이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새해에는 너무 배움이 없는 사람들처럼 원색적인 비난을 하지 말고 유머도 섞어 가면서 세련된 언어로 싸우면 좋겠다. 공동선을 향해 사심 없이 좋은 나라를 만들어가야 한다. 가끔 김수환 추기경님도 생각나고 법정 스님도 생각난다. 그분들처럼 어떤 지침을 줄 수 있는 분들이 아쉽다.”
 
정치인들이 스스로 바뀔 것 같지 않다.
“우리 문제는 모두 남 탓만 한다는 거다.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닌데 어떤 사람이 잘못하는 모습이 혹시 내 모습은 아닐까, 한 번쯤 골방에 들어가 자신을 살펴보면 어떨까. 어떤 잘못을 했을 때 망신당하거나 매 맞을 각오를 하고 약점을 자랑한다고 할까, 그렇게 사과하는 용기를 내는 리더가 나오면 나라가 좀 나아지지 않을까. 모든 국민이 거짓말인 줄 아는데 정작 본인은 아니라고 하니까 정치가 잘 되는 듯하다가도 퇴보하고….”
 
새해 결심 같은 게 있다면.
“환대다. 좋아하는 격언 중에 이런 게 있다. ‘타인을 냉대하지 말라. 그가 천사일지 모르니’.”
 
새해의 기도 -이해인 수녀
코로나 위기 속에
어둡고 답답한 마음으로
한 해를 보내며
참 많이 울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무참하게 희생 된
우리 가족 친지 이웃
수많은 의료진들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며
제대로 된 애도조차 못한
미안함과 회한으로
우리의 눈물은 아직도
마를 날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할지
어떻게 희망의 별을 찾아야할지 몰라
마주 보는 웃음대신 탄식을 앞세우며
시시로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웃음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푸르디 푸른 생명의 힘과
다른 이를 더 먼저 배려 할수 있는
사랑의 지혜를 주십시오
 
설레임과 반가움으로
한 해를 맞아야 할 우리 마음이
아직은 어둠 속에
두렵고 떨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다시 힘을 모아
희망을 향한 발걸음을
시작해야겠지요?
 
일상의 거리두기에서 배운
자신을 위한 절제와
이웃을 향한 그리움으로
더 넓은 사랑을 시작해야겠지요?
 
공간의 균을 소독하는 방역 뿐 아니라
어느 새 몰래 숨어들어 온
미움 탐욕 불신 분노 나태 등등
마음의 균도 제대로 소독하면서
진정한 참회의 기도로 거듭나는
코로나 수련생
치열한 구도자가 되어야겠지요?
 
하얀 소의 해라는 2021년
우리도 소처럼
어리석을만큼 우직하게
순하게 부지런하게
깨어살 수 있길 소망합니다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충실한 참을성과 겸손함으로
가정 속의 나
나라 속의 나
세계 속의 나를
다시 한 번
샘솟는 희망과 용기로 길들이며
2021년을 하나의
선물로 받아 안을 수 있길 원합니다
 
그 어느 날
고난과 시련의 절망스런 위기를
희망으로 극복 한 후의
가장 크고 밝은 웃음꽃이
우리 모두의 것일 수 있도록!
 
2021년 1월 1일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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