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프랑스 오뜨퀴진의 진수…말문 막히는 ‘미식 드라마’

중앙선데이 2021.01.02 00:02 718호 24면 지면보기

[맛따라기] 국내 최정상 프렌치 요리

“미장선(味匠饍). 말문이 막히는 맛, 잘 먹었습니다.” 두 달 전 점심을 먹으러 갔을 때 식사를 마치고 서승호 오너셰프가 내놓은 방명록에 쓴 말이다. 와인을 곁들여 3시간쯤 이어진 프랑스 정찬을 즐기면서 떠오른 말이 미장센(mise en scène)이다. 연극이나 영화의 연출을 뜻하는 이 프랑스 말을 ‘맛의 장인이 만든 음식’이라는 뜻의 한자로 옮겨 말을 만들어 보았다.
 

세종시 ‘시옷&서승호’ 오너셰프
농장·음식연구원·식당 한자리에
셰프가 장보기서 조리·서빙까지

재료·오일·조리법 늘 다르게 조합
힘줄 뺀 닭 종아리살 구이 일품

감자 구름. [사진 서승호]

감자 구름. [사진 서승호]

서울에서 2시간을 달려 도착한 세종시 조치원읍에 있는 레스토랑 ‘Siot & SUHSEUNGHO’. 프랑스 와인으로 시작한 이날 코스 음식은 다음과 같다.
  
 ①브리 치즈를 올린 따끈한 빵. 빵의 온기는 손님을 맞는 셰프의 마음을 대신한다고.
 ②전복구이, 구워 채 친 파프리카에 패션프루트 소스.
 ③대게 다리 살, 말린 토마토, 아스파라거스에 망고 소스. (뉴질랜드 소비뇽블랑 화이트 와인)
 ④바닷가재·샐러리악 수분 요리에 채 썬 트러플. (프랑스 부르고뉴 피노누아 레드 와인).
 ⑤참송이버섯 구이에 랑그르 치즈.
 ⑥우럭 뱃살 스테이크, 익힌 엔다이브·대파에 트러플오일 소스.
 ⑦닭 종아리 살 소금구이에 시금치·마늘 퓌레 소스.
 ⑧소 안심 스테이크, 감자 퓌레, 블루치즈.
 ⑨허브·소금에 재운 뒤 8시간 말려서 화이트 와인에 적신 가지포도를 사이에 끼운 양고기 꼬치구이. (1981년산 포르투갈 마데이라 주정강화 와인)
 ⑩디저트 카눌레·초콜릿(4종)·아마레또·다쿠와즈·크림브륄레 등 8가지.
 ⑪직접 골라 강·중·약으로 따로 배전한 원두를 맛있게 배합(포스트 믹스)한 점 드립 커피.
 
소고기 안심 스테이크와 엔다이브. [사진 서승호]

소고기 안심 스테이크와 엔다이브. [사진 서승호]

서 셰프는 음식을 들고 와서 재료·조리법과 맛있게 먹는 방법까지 설명했다. 그 설명은 오뜨퀴진(궁정문화에서 유래한 프랑스 고급요리)에 낯선 손님의 고민과 긴장을 덜어줘 식사를 편하게 하려는 배려다. 눈으로는 손님의 표정을 읽으면서 최상의 식탁 분위기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살피고 대처했다. 음식은 각각에 어울리는 그릇에 담아 최적의 온도로 내왔고, 맛은 이전의 미식 경험을 압도했다.

 
그는 “재료·오일·조리법·접시를 같은 조합으로 다시 쓴 경우는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코스의 구상부터 조리와 플레이팅까지 요리사가 쏟는 고민과 노력과 내공이 감전되듯 전달됐다. 첫 레스토랑을 시작할 때부터 코스 내용과 손님에 관한 정보를 매번 기록하고, 그 노트를 늘 지니고 일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4년 연속 블루리본서베이 리본 3개
 
시금치 수프. [사진 서승호]

시금치 수프. [사진 서승호]

닭 종아리살 구이 조리과정은 요리가 한두 해 익혀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깨우쳐줬다. 뼈를 발라내고 살 속에 숨은 힘줄 12개 중 11개를 일일이 뽑아낸다. 전부 뽑으면 구울 때 고기 모양이 잡히지 않고 무너진다. 이 작업을 여름 2분, 겨울에는 2분 30초 안에 마쳐야 한다. 더 지나면 닭 모공 기름이 녹아 변질되고 구울 때 모양이 흐트러진다. 서 셰프는 “그 기름을 녹여내서 구워야 고기가 가장 맛있다”며 “힘줄 손질하는 것보다 팬프라잉으로 굽기가 더 어렵다”고 했다. 맛이 순하고 고소한 구이는 바삭하고 졸깃하면서 부드러웠다.
 
‘시옷&서승호’는 서울을 제외한 전국에서 블루리본서베이 리본 3개를 받은 유일한 음식점이다. 이곳에서 손님을 받은 첫해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받았지만 뭔가를 표시하는 어떤 것도 내걸지 않았다. 이곳이 3월부터 무기휴업한다.  
 
서승호 셰프가 ‘허브로 맛을 낸 토마토와 포도, 해산물’ 조리 과정을 보여줬다. 신인섭 기자

서승호 셰프가 ‘허브로 맛을 낸 토마토와 포도, 해산물’ 조리 과정을 보여줬다. 신인섭 기자

1월은 예약이 이미 끝났고, 2월에는 직원 가족들 대접만 하고 남는 날은 직원들 마지막 휴가를 주기로 했다. 이 소식을 전하려고, 아울러 빨리 다시 문을 열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요리하는 손의 감각과 활력은 요즘이 가장 좋은데 어깨와 눈이 안 좋다. 오른쪽 어깨와 견갑골 통증으로 잠을 못 잔다. 서울에서 요리사로 명성이 높던 2014년 문득 고향으로 돌아와 2년 동안 레스토랑 건축하고 농장을 일구면서 몸을 무리했는데 요리하느라 치료도 못 해 어깨가 악화한 듯하다. 2019~2020년에 낸 책 4권의 워드 작업을 하면서 혹사해 눈에도 문제가 생겼다.
 
오는 3월 부터 무기휴업하는 서승호 오너셰프가 레스토랑 ‘Siot&SUHSEUNGHO’ 창가에서 해바라기 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오는 3월 부터 무기휴업하는 서승호 오너셰프가 레스토랑 ‘Siot&SUHSEUNGHO’ 창가에서 해바라기 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그의 결심은 단호했다. “손님에게 감동을 주지만, 나는 잠을 못 잔다면 좋은 일이 아니다. 나도 즐거워야 하니 우선 치료에 전념하려 한다. 더 좋아지려면 잠시 멈추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잠시 멈춤이 될지 종료일지 모르겠다. 앞으로 1년은 치료·회복에만 전념하겠다. 어떤 약속도 할 수는 없지만, 재활 문제니까 좋은 소식을 빨리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4권의 책은 『서승호 셰프의 멘토링 쿡북 시리즈』(아이엔지북스)다. 토마토(여름)·버섯(가을)·감자(겨울)·치즈(봄)를 각각의 주제로 연결한 한 세트 개념으로 구성한 책이다. 소재·계절·조리법 별로 요리를 정리하고 책마다 양념·조리도구·요리책, 테이블 준비와 그릇·와인·커피에 관한 기본사항까지 안내하고 있다.
 
서 셰프는 “읽기는 쉽지만 가볍지 않게,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세련되고 품위 있지만 비싸지 않은 책을 목표로 했다”며 “요리하는 사람이나 먹는 손님이 봐도 도움이 되게 재능기부 한다는 마음으로 음식 이해에 꼭 필요한 핵심을 다 공개했다”고 한다. 아울러 “4권의 책에 조리법·재료 중복이 거의 없어 그것들만 이리저리 연결하면 코스를 수없이 구성할 수 있다”면서 “나에게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이제는 그만 오라는 뜻도 있다”고 말하며 웃었다.
  
어깨·눈 나빠져 3월부터 무기휴업
 
그는 요리를 하게 된 이유를 “운명을 받아들인 거”라고 했다. “좋아하고 아끼는 일이고, 음식을 만들어서 나누는 게 업이라 여긴다”는 것이다. 경주호텔학교에 두 번 합격했지만 집안의 반대로 입학을 못 하고, 그 후 24세 만학도로 끝내 입학하면서 본격 요리학도의 길에 들어섰으니 운명이라 할 만하다. 프랑스에 유학하고 만 30세이던 1997년 귀국해 호텔에서 일하다가 2년 후 압구정 도산공원 근처에 오뜨퀴진 ‘라미띠에(L’amitié·우정)’를 열면서 프렌치 레스토랑의 셰프로서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조치원으로 귀향한 그는 레스토랑과 섭골농장·세종음식문화연구원을 한자리에 갖춘 종합 식문화단지를 조성했다. 생애 정점에서 생산·요리·연구를 한 곳에서 수행하는 총림(叢林)을 설립한 셈이다. 건물 외관은 수십 명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손님은 한 번에 최대 6명 정도만 받는다. 이곳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이동하는 거리는 평균 150㎞라고 한다.
 
3시간의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 기념촬영에도 응하고 대문 앞까지 따라 나온 서 셰프는 마카다미아를 감싼 트러플 초콜릿을 넣고 끈으로 주둥이를 묶은 흰 봉지를 하나씩 건네면서 “여기까지가 오늘 준비한 드라마입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이택희 음식문화 이야기꾼 hahnon2@joins.com
전직 신문기자. 기자 시절 먹고 마시고 여행하기를 본업 다음으로 열심히 했다. 2018년 처음 무소속이 돼 자연으로 가는 자유인을 꿈꾸는 자칭 ‘자자처사(自自處士)’로 살고 있다.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