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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당하겠다" 문파 반발에도...'국시 재응시' 총대 멘 정세균 왜

중앙일보 2021.01.01 17:46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국민의 걱정을 잘 알지만 국민의 이익을 위해 결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1일 SBS라디오 ‘이철희의 정치쇼’에 출연한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달 31일 정부가 내놓은 의사 국가고시(이하 국시) 거부 의대생 구제 방침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 총리는 “지금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상황도 그렇고, 공공의료가 충분하지 않다. 그런데 여론 때문에 2700여명의 의사 배출을 1년을 지연시킨다고 하는 것은 선택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문 대통령도 같은 생각이냐”는 사회자 질문에 정 총리는 “그렇다. 정부 내 이견은 없다”고 답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31일 2021년 국시 실기시험을 상·하반기로 나눠 2회 실시하고 상반기 시험은 1월 말에 시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로써 지난해 9월 정부의 공공의대 설립과 의대 정원 확충 방침에 반발해 국시를 거부한 전국 의대 본과 4년생 2700여명이 이달 말 의사면허를 얻을 기회를 얻게 됐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의 극성 지지층(문파)이 장악한 더불어민주당 당원게시판과 온라인 커뮤니티엔 격한 반발이 쏟아졌다. “정 총리와 민주당은 왜 이기적인 의사집단에 굴복하느냐”는 성토와 “민주당 안과 밖 지지를 잃어 4월 보궐선거가 위태롭다”등의 비관이 다수였다. “‘과정은 공정하다’가 이 정권의 슬로건인데 왜 지키지 않는 거냐”라며 탈당을 거론하는 글도 꽤 있었다. 
 

정세균의 정면돌파

의대생 구제 방침에 대해 처음을 운을 띄운 것도 정 총리였다. 지난달 20일 “코로나 상황을 감안해 조만간 정부가 결정하겠다”(KBS 1TV ‘일요진단’)며 “국민 여론도 바뀌는 것 같다”며 말했고 그때도 친문 지지층의 집중 포화를 맞았다. 그러나 정 총리는 문제 해결을 택했다. 코로나19 확진자 1000명 사태가 조기 진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의료진과 병상 부족 문제를 눈감을 수 없어서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다선 의원은 “의대생에게 재시험 기회를 줘서 의료진을 확충해야 한다고 정 총리가 줄곧 설명해왔다”며 “반대 여론도 잘 알지만 당장의 의료진 공백이 더 큰 문제라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국시 취소 의대생에 대한 재접수 반대' 국민청원. 57만여명이 찬성하자 청와대는 ″국민의 수용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상황이라는 점을 말씀드린다″며 사실상 재시험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쳐

지난해 8월 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국시 취소 의대생에 대한 재접수 반대' 국민청원. 57만여명이 찬성하자 청와대는 ″국민의 수용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상황이라는 점을 말씀드린다″며 사실상 재시험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쳐

코로나 극복에 명운이 걸린 정 총리의 정치적 상황도 작용했다는 해석도 있다. 정 총리와 가까운 다선 의원은 “코로나19 방역 성패에 관리 책임자인 정 총리의 대선가도에 모든 게 걸려 있다”며 “공정이라는 가치 훼손과 국민의 건강과 생명이라는 문제 사이에서 내적 갈등이 컸다”고 말했다. 
 
국시 거부 사태 당시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복지위 소속 김성주 의원)며 의대생들을 향한 격렬한 거부반응을 보였던 민주당은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정 총리가 주도한 구제 결정에 반대 의사를 전달한 의원은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정부가 당과 상의하지 않은 채 결정해서 당이 책임론에서 벗어났다”(복지위 소속 초선 의원)거나 “어차피 누군가는 풀었어야 할 문제인데 정 총리가 총대를 멨다”(청와대 출신 초선 의원)는 등의 반응이 나왔다. 
 

입 다문 이재명, 측근은 “부당한 일”

지난해 9월 “이익을 지키는 투쟁수단으로 포기해버린 권리와 기회를 또다시 요구하는 것은 부당한 특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이재명 경기지사도 이번엔 조용했다. 당시 이 지사는 “힘만 있으면 법도 상식도 위반하며 얼마든지 특혜와 특례를 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주고 사실상 헌법이 금지한 특권층을 허용하는 결과가 된다”라고 지적했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해 9월 의대생 국시 재시험 주장이 나오자 "불법의 합법화, 불합리한 예외 인정, 특례, 특혜는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며 반대했다. 연합뉴스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해 9월 의대생 국시 재시험 주장이 나오자 "불법의 합법화, 불합리한 예외 인정, 특례, 특혜는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며 반대했다. 연합뉴스

그러나 이 지사 주변에선 불만도 감지됐다. 이 지사와 가까운 중진 의원은 “불법·부당한 일을 정부가 스스로 허용하는 굉장히 잘못된 일”이라며 “이 지사의 말처럼 원칙을 지켰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 지사의 한 측근은 “한 집단이 힘이 세고 숫자가 많다고 그 민원을 들어주는 것은 안된다는 게 집단민원을 대하는 이 지사의 원칙”이라고 말했다.
 
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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