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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미리 VS 도루묵, 겨울 동해바다의 양대 진미 승자는?

중앙일보 2020.12.31 05:00
서민 생선 양미리와 도루묵은 영동지방의 겨울철 소울푸드다. 양미리와 두루묵구이를 먹어야 비로소 겨울나기를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최승표 기자

서민 생선 양미리와 도루묵은 영동지방의 겨울철 소울푸드다. 양미리와 두루묵구이를 먹어야 비로소 겨울나기를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최승표 기자

“동해안 사람들은 서쪽의 웅장한 산들 중턱에 단풍이 내려오는 10월 중하순이면 은근히 입맛을 다신다. 올해 양미리가 언제쯤 나올까 기다리는 것이다.”
 
속초 토박이 엄경선 작가의 『동쪽의 밥상』(온다프레스, 2020)에 나온 대로 늦가을부터 초겨울은 양미리 철이다. 올해는 다르다. 수온 상승 때문에 양미리 어획 시기가 늦어졌다. 겨울 한복판인 요즘 양미리 조업이 한창이다. 고성부터 삼척까지, 강원도 바닷가 어디 가나 양미리 말리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양미리 곁에는 어김없이 도루묵도 함께 볕을 쬐고 있다. 기름진 양미리와 알 그득 밴 도루묵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시기다. 연말연시, 정부가 관광명소를 폐쇄한 까닭에 동해안이 썰렁하다. 그러나 여느 겨울처럼 동쪽 바다 포구에는 양미리와 도루묵을 말리고 굽는 배릿한 향이 넘실댄다.
 

알배기 양미리, 지금 맛 절정

양미리는 까나리 사촌뻘 물고기다. 서남해에서 잡히는 젓갈용 까나리와 달리 양미리는 동해에서만 잡힌다. 최대 산지는 속초와 강릉이다. 강원도 환동해본부에 따르면, 2020년 12월 22일까지 강릉은 453t, 속초는 478t의 양미리를 잡았다. 양미리 어획량은 감소 추세다. 1980~90년대에는 한 해 1만t 가까이 잡았는데 최근엔 강원도에서만 1000t 정도가 잡힌다. 조업을 나가는 배 자체가 줄었고, 양미리를 그물서 떼는 중노동을 모두 꺼린다. 그래서일까. 양미리를 찾는 사람도, 양미리를 파는 식당도 예전처럼 많지 않다. 
늦가을부터 겨울까지, 강원도 포구에서는 양미리와 도루묵 말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최승표 기자

늦가을부터 겨울까지, 강원도 포구에서는 양미리와 도루묵 말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최승표 기자

저렴하게 양미리구이를 맛볼 수 있는 곳은 속초 동명동 오징어 난전이다. 여름엔 오징어 회를, 겨울엔 양미리·도루묵구이를 파는 천막이 10여 개 몰려 있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되면서 모두 문을 닫았다. 올겨울 양미리구이를 먹고 싶다면 동명항, 장사항 주변 생선구이 집이나 실내 포차를 찾는 게 낫다. 동명활어센타 앞에 줄지어 선 튀김집 중에도 양미리·도루묵구이를 파는 곳이 있다. 보통 1만원에 10마리를 준다.
속초 동명항 한쪽에 자리한 '양미리 부두'.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양미리 배가 드나들고 그물에 걸린 양미리를 떼는 작업이 이어진다. 해종일 허리를 숙이고 양미리를 떼는 중노동은 나이 지긋한 아낙이나 외국인 노동자가 맡고 있다. 최승표 기자

속초 동명항 한쪽에 자리한 '양미리 부두'.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양미리 배가 드나들고 그물에 걸린 양미리를 떼는 작업이 이어진다. 해종일 허리를 숙이고 양미리를 떼는 중노동은 나이 지긋한 아낙이나 외국인 노동자가 맡고 있다. 최승표 기자

동명항에는 ‘양미리 부두’가 따로 있다. 11월부터 3월까지 쉴 새 없이 양미리 배가 드나든다. 12월 26일 양미리 부두의 어민들은 손놀릴 틈이 없었다. 아낙들은 양미리를 그물에서 떼고 사내들은 눈삽으로 양미리를 쓸어담는다. 군불 쬐며 양미리를 구워 먹는 이들도 있었다. 주름 깊게 팬 사내가 “지금부터 보름 정도가 알배기 양미리가 제일 맛있을 때”라며 한 마리 건넸다. 노란 알이 그득 밴 양미리를 한입 물었다. 숯 향이 덧입혀진 살은 유난히 고소했고, 단단한 알은 감칠맛이 응축돼 있었다.
어둑한 밤, 양미리 부두 한쪽에서 뱃사람들이 군불을 쬐며 양미리를 구워먹고 있었다. 최승표 기자

어둑한 밤, 양미리 부두 한쪽에서 뱃사람들이 군불을 쬐며 양미리를 구워먹고 있었다. 최승표 기자

해변에 떠밀려 온 도루묵 알

동명항 튀김집 ‘삼진호’에서 도루묵구이를 맛봤다. 양미리가 기름기 많고 고소한 반면 도루묵은 담백했다. 살이 보들보들한 수놈도 먹을 만하지만 겨울 별미라면 역시 알 도루묵이다. 낫토처럼 점성 강한 알이 뭉쳐 있는데, 씹을 때마다 톡톡 터지는 식감과 고소한 향이 일품이다. 찌개나 조림으로 먹는 것보다 직화로 구우면 감칠맛이 훨씬 도드라진다. 알 도루묵도 철이 있다. 이중섭 사장이 “조금만 더 추워지면 도루묵 알이 질겨져 못 먹는다”고 말했다.
동명항에서 알배기 도루묵을 말리는 모습. 알이 가득 차 배 밖으로 흘러나오는 도루묵도 많다. 최승표 기자

동명항에서 알배기 도루묵을 말리는 모습. 알이 가득 차 배 밖으로 흘러나오는 도루묵도 많다. 최승표 기자

어획량이 줄고 있는 양미리와 달리 도루묵잡이는 활황을 보인다. 국립수산과학원이 2006년부터 개체 복원 작업을 벌인 결과 1980년대 수준으로 어획량이 늘었다. 강원도와 경북 바다에서 한해 약 3000t이 잡힌다. 11~12월은 도루묵 산란 철이다. 먼바다에 살다가 해초 더미에 알을 낳기 위해 얕은 바다로 온다. 
고성 가진 해변 백사장으로 떠밀려 온 도루묵 알. 몇 년 새 도루묵 개체 수는 늘었지만, 알이 안착할 해초가 부족해 빚어지는 현상이다. 최승표 기자

고성 가진 해변 백사장으로 떠밀려 온 도루묵 알. 몇 년 새 도루묵 개체 수는 늘었지만, 알이 안착할 해초가 부족해 빚어지는 현상이다. 최승표 기자

산란 철에는 이따금 기이한 풍경이 펼쳐진다. 도루묵 개체 수는 급격히 늘었는데 산란처인 해초가 부족해 아무 데나 낳은 알이 해변으로 떠밀려 온다. 26일 고성 가진 해변에서도 이런 풍경을 마주쳤다. 탁구공처럼 뭉쳐 있는 형형색색의 도루묵 알이 백사장을 뒤덮고 있었다. 도루묵이 너무 흔해 비료로 썼다는 70~80년대가 재연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동해안의 겨울 별미인 알배기 도루묵구이. [중앙포토]

동해안의 겨울 별미인 알배기 도루묵구이. [중앙포토]

겨울 별미로 도루묵찌개도 빼놓을 수 없다. 영동지방 식당이나 술집 어디 가나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심지어 여름에도 판다. 겨울에 잡은 걸 급랭해서 한 해 내내 먹는다. 그러나 제철 생물 도루묵 맛에 비할 순 없다. 강원외식저널 황영철 대표는 “도루묵찌개는 언제 먹느냐에 따라 국물에 뜨는 기름이 확연히 다르다”며 “1월 말이면 도루묵의 기름기가 빠져 국물 맛도 얕아진다”고 설명했다.
알배기 도루묵은 찌개로도 많이 먹는다. 최승표 기자

알배기 도루묵은 찌개로도 많이 먹는다. 최승표 기자

 
속초=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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