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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lee.youngjong@joongang.co.kr

집권 10년 맞는 김정은…“더 끔찍한 새해 될 수도”

중앙일보 2020.12.31 00:29 종합 23면 지면보기

2021년 김정은의 정치·국제 캘린더 들여다보니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창건 75주년 행사 직후인 지난 10월 14일 태풍 ‘마이삭’으로 피해를 본 대표적 비철금속 생산지인 함경남도 검덕지구 복구 현장을 방문해 조속한 공사 추진을 강조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창건 75주년 행사 직후인 지난 10월 14일 태풍 ‘마이삭’으로 피해를 본 대표적 비철금속 생산지인 함경남도 검덕지구 복구 현장을 방문해 조속한 공사 추진을 강조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2021년 새해는 북한 김정은에게 뜻깊은 시기다. 아버지이자 선대(先代) 수령인 김정일 사망(2011년 12월)으로 절대권력을 세습 받은 지 꼭 10년이 되는 해라는 점에서다. ‘꺾어지는 해’라는 특유의 표현까지 써가면서 5년, 10년 주기를 기념하거나 의미를 부여해온 북한엔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다. 야심 차게 준비한 김정은의 신년 첫 이벤트는 1월 초순으로 잡힌 노동당 8차 대회다. 일당독재와 수령 유일 지배를 양대 축으로 하는 당(黨) 국가 북한에서 당 대회는 새로운 비전 제시와 투쟁 노선, 실적 결산이 어우러지는 잔칫상이다. 그런데 당 대회를 앞둔 평양에선 팽팽한 긴장감이 드러난다. 집권 10년을 맞는 김정은 체제의 고민을 진단하고 2021년을 조망해본다.
  

도쿄올림픽이 한반도 다시 달굴까
9월 유엔가입, 12월 기본합의 30년
백신 국제 논의에서 밀려난 북한
코로나 ‘셀프 제재’ 지속 불가피

말 그대로 “끔찍한 한 해”였다. 누구의 쓴소리가 아니라 김정은 위원장 자신의 평가다.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그는 “끔찍한 올해의 이 시간이 속히 흘러가고 좋은 일들이 차례로 기다릴 그런 날들이 하루빨리 다가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한 달 뒤 노동당 창건 75주년 연설에서 나온 그의 고백은 더욱 절박했다. “가혹하고 장기적인 제재 때문에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비상방역도 해야 하고 자연재해도 복구해야 하는 난관에 직면한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라고 토로했다. 안팎으로 닥친 3각 파도이자 ‘퍼펙트 스톰’이다. “인민들에게 보상 못 해 면목이 없다”고 고백하며 눈물을 보일만 하다.
 
문제는 2021년에 더 험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김정은의 신년 캘린더는 만만치 않은 일정으로 가득하다. 먼저 1월 8일 자신의 37세 생일은 노동당 8차 대회 와중에 맞을 수밖에 없다. ‘2021년 정초’ 개최를 예고했던 북한은 그제 김정은 주재 제7기 22차 당 정치국 회의에서 ‘1월 초순’ 개최를 알렸다. 최근 북한 인사와 접촉한 대북 소식통은 “1월 5일부터 10일까지 닷새 정도 일정으로 열린다고 한다”고 귀띔했다. 2016년 5월 7차 당 대회는 나흘간 개최됐다. 그만큼 논의되고 결정해야 할 일들이 많을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새로운 비전의 부족이다. 특히 경제와 민생 챙기기에서 뾰족한 돌파구가 없다는 건 치명적이다. 김정은은 7차 당 대회 직전에도 “휘황한 설계도를 펼쳐 보이겠다”고 호기를 부렸다. 하지만 속 빈 강정으로 드러났다. 결국 지난해 8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두 손을 들었다. 7차 당 대회 발 ‘5개년 경제전략’의 완전한 실패를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도 북한은 ‘80일 전투’ (10월 12일~12월 30일) 돌입을 선언했다. 어제 북한은 80일 전투가 “8차 당 대회 소집을 위한 훌륭한 조건을 마련했다”고 주장했다. 경제 성과보다는 당 대회 개최의 명분을 축적하려는 정치 선전사업이었음을 고백한 셈이다.
 
놀라운 건 김정은의 지시로 진행되던 대형 프로젝트가 줄줄이 좌초되거나 실종 상황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일이 첫 삽을 뜨고, 지난 10월까지 완공하라고 했던 평양종합병원은 아예 북한 매체의 보도에서 사라졌다. 강원도 원산 해변에 짓다가 만 리조트 단지인 갈마해안관광지구도 마찬가지다. 김정은이 5월 완공식에서 테이프 커팅을 했던 순천인비료공장도 가동 소식이 끊겼다. 최고지도자의 말이 먹히지 않는다는 건 동원 가능한 자원의 완전 고갈을 의미한다.
 
한여름 32회 도쿄 올림픽(7월 23일~8월 8일)의 열기가 김정은 체제와 남북 관계, 한반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지켜봐야 한다.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의 달콤했던 기억을 가진 북한은 ‘어게인 2018’이란 달콤한 유혹에 흔들릴 수 있다. 하지만 같은 경로를 밟을지는 의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호의’를 믿다가 재앙 같은 하노이 북·미 외교참사를 뼈저리게 경험했다는 점에서다. 서울~평창~판문점으로 이어진 무대가 일본 땅으로 옮겨지면서 남북관계 만이 아니라 한반도와 주변 세력의 각축전이 될 게임이라 선택이 쉽지 않다. 올림픽 개막엔 코로나19 상황도 절대적 변수다.
 
이즈음 미·중 간 충돌은 더 거세질 수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이 개최를 공언한 ‘민주주의 정상회담(Global Summit for Democracy)’과 시진핑 주석이 야심 차게 준비 중인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7월 1일) 기념행사는 마주 보며 달리는 기관차 격이다. 한국과 북한 각각 미·중으로부터 선택을 강요받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특히 문재인 정부는 틈바구니에서 외교적 선택의 최적점을 찾아야 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은 용납 않겠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굳은 의지는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과 노선을 압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북전단 금지법 제정에 대한 미국의 날 선 반응과 국제사회의 비판은 그 전조다. “광대놀음을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라”는 김여정의 말이 나오자마자 법 제정을 서두르다 ‘청부 입법’이니, ‘하명법’이나 하는 비판을 받은 정부가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가을엔 다시 한반도의 시간이 다가온다. 9월 18일은 제46차 유엔총회에서 남북한이 유엔 회원국이 된 지 30년을 맞는 날이다. 또 12월 13일은 남북 기본합의서(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한 지 30년이 된다. 남북 모두 그냥 넘기기 쉽지 않은 데다 유엔과 국제사회가 역할을 강조하며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을 벌일 가능성도 있다.
 
12월 김정일 사망 10주기 행사장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중간 성적표를 받아들게 된다. 엘리트와 주민 속에서 어떤 평가와 여론이 나올지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스스로 ‘애민(愛民)’을 표방하며 몸을 낮추는 이미지를 연출해왔다는 점에서다. 7차 당 대회 때의 실패를 8차 카드로 돌려막기를 하는 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김일성·김정일 시기 망하지 않고 그럭저럭 버텨왔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새해 북한 체제와 김정은을 짓누를 핵심 키워드는 ‘코로나19’다. 확진자가 없는 지구상 거의 유일한 청정국이라고 북한은 주장하지만, 긴장과 두려움의 손발 짓은 진실을 말하는 듯하다. 국제사회의 백신 확보 및 접종 어젠다에서 북한은 완전히 밀려나 있다. 천신만고 끝에 보유한 핵과 미사일은 그 효용이 반감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코로나로 인한 전 세계 사망자가 180만명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핵 공갈은 약발이 제대로 먹히기 어렵다.
 
김정은의 희망처럼 ‘끔찍했던’ 2020년은 다 흘러갔다. 하지만 ‘좋은 일들이 차례로 기다릴’ 호시절이 올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포기했던 병진노선…북, 은밀하게 회귀하나
북한이 내달 초 8차 노동당 대회에서 경제·핵 병진노선으로의 회귀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임수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한반도전략연구실 책임연구위원은 29일 발표한 ‘미래로의 은밀한 회귀: 북한 8차 당대회 경제기조 전망’ 보고서에서 “제재로 인한 심각한 자원제약 상황에서 전반적 투자가 감소함에 따라 군수투자의 상대적 비중은 증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임 연구위원은 “대내외 환경 악화 때문에 경제건설 총력 집중 노선을 전략적 과제로 추상화하고, 중단기적으로 경제발전과 국방력 강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병진노선을 추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8차 당 대회에서 이러한 ‘결과론적’ 병진노선의 기조가 반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 연구위원은 그 이유로 지난해 12월 열린 노동당 제7기 5차 전원회의에서도 경제건설 총력 집중노선의 유지를 재확인했지만, 외부환경으로 인해 병진노선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함께 암시했었다고 밝혔다.  
 
실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전원회의 결과 보고에서 “우리의 외부환경이 병진의 길을 걸을 때에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기 위한 투쟁을 벌리고 있는 지금이나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면서 “가시적 경제성과와 복락만을 보고 미래의 안전을 포기할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8차 당대회에서 채택될 새로운 ‘5개년 계획’과 관련해 임 위원은 “악화된 대외환경을 감안하여 군수투자의 필요성이 역설되는 가운데, 최근 실적이 부진한 농업과 금속 부문에 특별한 강조가 두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정영교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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