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혜란 문화팀 차장
실은 사태 전부터 이들 ‘전문가’에 대해 알 만한 사람은 알았다. 설민석의 경우엔 한국사를 넘어 세계사까지 손댄 게 화근이었다. 굳이 ‘1만 시간의 법칙’을 거론하지 않아도 그가 모든 역사의 ‘그랜드 마스터’일 수가 없다. 그가 인강 스타를 넘어 방송 스타가 된 것은 역사학에 정통해서라기보다 ‘역사 소재로 시청률 끌어올리기’ 전문가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식 오류가 제기됐을 때도 시청률 자체는 영향받지 않았다. 인스턴트 인문학 수요와 예능 쇼맨십의 만남이 본질이라서다.

노트북을 열며
‘못 믿을 전문가’에 지나치게 분개·낙담할 것은 없다. 애초 이번 사태가 빚어진 건 소셜미디어 상의 잇단 폭로 때문이었다. 레이첼 보츠먼의 『신뢰 이동』에 따르면 인간의 역사는 지역공동체 기반의 ‘지역적 신뢰’로부터, 산업시대에 형성된 ‘제도적 신뢰’로 이어졌고 현재는 개인 하나하나가 검증하고 품평하는 ‘분산적 신뢰’의 초기 단계다. 말하자면 이제까진 방송사가 믿음직한 전문가를 띄우고 이에 기반한 권위로 시장이 형성돼 왔다면 이젠 그 명성이 SNS를 통해 탈탈 털리는 세상이다. 다만 명심할 게 있다. 전문가 띄우기의 전문가들만큼이나 전문가 죽이기의 전문가들도 득실댄다. 벌써부터 “설민석 다음은 누구냐”며 유튜버들이 ‘먹잇감’을 찾는다는 말이 들린다.
강혜란 문화팀 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