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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새해엔 마음속 꿈나무가 적당한 욕심으로 자랐으면

중앙일보 2020.12.30 07:00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72)

푸르던 나무들이 모두 옷을 벗고 겨울 찬바람을 맨몸으로 맞으며 죽은 듯이 서 있다. 요즘은 틈틈이 마당 앞 밭에 심어놓은 100여 그루 나무에 전지작업한다. 저녁에 누우면 내일 다듬어야 할 나무의 그림이 그려진다. 겨울철 일거리가 있어 좋다. 나무의 수형을 잡으며 내년에 자라게 될 키와 좌우로 뻗어 나갈 기운을 가늠한다. 부지런한 사람은 이미 전지를 끝냈고 느림의 미학을 즐기는 사람은 순이 물오르기 전 막바지에 한다.
 
사람마다 일 방식이 다른데, 나는 퇴비 내는 일도 이미 끝냈다. 겨울잠 자는 나무를 위해 자면서도 많이 먹어야 배고프지 않을 거라며 가을에 주는 사람도 있고, 일 년 내내 고생했으니 잠이라도 푹 자라며 봄에 듬뿍 뿌려 주는 사람도 있다. 모종 한 개를 갖고도 어떤 이는 순이 잠잘 때 옮겨 심어야 한다며 땅이 녹지 않은 이른 봄에 옮겨 심고, 또 다른 이는 모종이 몸살 날까 봐 따뜻한 봄날 꽃눈이 나올 즈음 옮겨 심는다. 정답은 없다. 밭농사나 인생 농사나 자기 스타일대로 지으면 되는 거다. 나무는 저 스스로 알아서 클 만큼만 큰다. 욕심부리지 않는다.
 
코로나19 재난과 무력감에 지치지 않고 정신도 건강하니 다행이다. 재난이 끝나면 다시 뻗어 나갈 희망의 가지 수형을 그려본다. [사진 pixabay]

코로나19 재난과 무력감에 지치지 않고 정신도 건강하니 다행이다. 재난이 끝나면 다시 뻗어 나갈 희망의 가지 수형을 그려본다. [사진 pixabay]

 
나무 전지에 일가견이 있는 이웃이 지나가다 들어와 전지 방법을 알려주신다. 제법 안다고 자만했는데 몰랐던 부분이 많다. 사인펜으로 엑스 표시를 해가며 이 가지를 왜 잘라야 하는지 설명해 준다. 돌아서면 잊어버려도 그분의 설명이 재밌어 오래 기억할 것 같다. 시골 살면서 농업인 대학, 농업 아카데미 등 온갖 교육을 다 받았는데도 퇴비나 비료 각각의 성분이 아직도 헷갈리니 부끄럽다. 그런데 설명을 참 쉽게 해주신다.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무식한 학생보다 가르치는 선생님이 문제라 핑계 댄다.

 
일을 끝내고 들어와 조용히 명상하며 올해의 마지막 주말을 보낸다. 새해, 내 마음에서 자랄 ‘미리 보는 2021년의 10대 뉴스’도 수형을 잡아본다. 올해는 작년에 계획한 10대 뉴스를 반타작했다. 그나마 코로나19 재난과 무력감에 지치지 않고 정신도 건강하니 다행이다. 재난이 끝나면 다시 뻗어 나갈 희망의 가지 수형을 그려본다. 너무 높이 올라갈 욕망 가지도, 영역을 넓히려는 욕심 가지도 적당한 선에서 자르고 잔가지도 쳐낸다. 이 겨울, 기운을 돋우기 위한 명품 퇴비로 수준에 안 맞는 비싼 굴비와 홍삼도 택배 주문해놨다. 하루 만보 걷기와 30분 스트레칭을 꼭 하여 미생물과 질소, 인산, 가리에 버금가는 알뜰한 체력도 챙길 것이다. 빨리 코로나가 물러나고, 일 년 동안 자라지 못한 마음속 소망 나무가 새해에는 적당한 욕심으로 가지를 뻗고 자라길 기원한다. 마음 수형 잡기도 2월 전에 끝내야 잘 자란다.
 
 
마음마저 넓은 이웃집 가마솥에 뜨거운 김이 펄펄 올라온다. 주위에 둘러선 사람들의 입김이 추운 겨울을 녹인다. 코로나를 막아주는 비법을 만드는 중이란다. 설득력 있는 누군가의 ‘카더라’ 유튜브 방송을 듣고 온갖 비법이 들어간 코로나퇴치 약물을 곤다. 밭에 널브러져 있던 고춧대가 비싼 몸값을 한다. 고춧대 몇 kg, 대추 몇 kg, 마늘, 양파 껍질 등을 푹 고우면 다른 병균도 다 물러날 것 같은 보약이다. 그나마 이곳에선 고집 센 주장보다는 즐거운 화합의 마당놀이가 된다. ‘하하’, ‘호호’ 웃음과 사랑을 약재로 첨가한다. 위정자들이 피 터지게 싸우든 말든, 우린 스트레스 받지 말고 건강하고 즐거운 인생을 살잔다. 구리색으로 변한 코로나 신약 한 사발씩 나눠 마시고 들고 온 병에 가득 담아 돌아가는 어르신의 뒷모습이 정겹다.

 
집에 돌아와 노곤한 몸을 눕히니 내 맘 속의 허튼 대립 갈등이 투덕거린다. “추워, 만보 걷기는 봄이 오면 시작하는 게 어떨까?”, “콜레스테롤 문제로 밀가루 음식을 자제하라지만 이번 겨울까지만 먹고 봄이 오면 자제해야겠다.” 이런 갈등과 주장이 잘 타협되고 이기면서 나의 역사도 만들어질 것이다.

 
올해는 어쩔 수 없이 무기력하게 보낸 날이 많다, 새해엔 멋지고 드라마틱하게 사는 인생은 아니어도 올해보다는 나아지길 바란다. 수형을 잡아 멋지게 전지한 마음 나무가 타의에 의해 꽁꽁 묶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힘들어도 올해만큼만 또 이겨내다 보면 다시 새로운 날이 오겠지. 새해엔 우리 마음속 꿈나무가 탈 없이 잘 자라길 기원합니다. 또 모두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올해도 참 아주 고마웠습니다. 해피 뉴 이어.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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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옥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필진

[송미옥의 살다보면] 요양보호사 일을 하다 평범한 할머니로 지낸다. 지식은 책이나 그것을 갖춘 이에게서 배우는 것이지만, 인생살이 지혜를 배우는 건 누구든 상관없다는 지론을 편다. 경험에서 터득한 인생을 함께 나누고자 가슴 가득한 사랑·한·기쁨·즐거움·슬픔의 감정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쓴다. 과거는 억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이웃과 함께 남은 인생을 멋지게 꾸며 살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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