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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시시각각] 정운찬 전 총리가 보내 온 책 꾸러미

중앙일보 2020.12.30 00:40 종합 30면 지면보기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최근 정운찬 전 총리가 책을 한 꾸러미 보내왔다. 무거울 정도였는데 박스 안에는 일곱 권이나 들어 있었다. 모두 동반성장에 관한 것들이었다. 서울대 총장을 지낸 정 전 총리는 이명박 정부에서 총리를 거친 뒤 줄곧 동반성장에 열정을 쏟아 왔다. 2010년 민간 협의체로 구성된 동반성장위원회가 출범해 초대 위원장을 지냈다. 위원장에서 물러난 뒤에는 아예 동반성장연구소를 차려 지금까지 70여 차례의 포럼과 심포지엄을 열면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현 정부 들어 쑥 들어간 ‘동반성장’
10년간 활동한 결과물 담아 보내와
정책 실패 보며 안타까운 마음 토로

왜 많은 책을 보내왔을까. 분량 때문에 엄두를 못 내다 며칠 뒤 책을 들여다보자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정 전 총리는 현 정부 들어 쑥 들어간 동반성장의 존재를 환기하고 싶었던 거다. 무엇보다 무상복지를 늘려 경제를 띄운다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도 예단할 수 없어서 직접 얘기를 들어봤다. 우선 개념부터 확실히 하고 싶었다. “동반성장도 소득주도성장이나 비슷한 것 아니냐”고 직설적으로 물었더니 그는 그간의 사정을 훌훌 털어놓았다. “2012년에 이어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가 나를 찾아와 도와 달라고 했다. 서울대 총장을 지낸 사람이 특정인을 공개 지지하는 건 곤란하다고 했다. 그러고는 돌아가더니 ‘동반성장의 세계를 만들겠다’는 문 후보의 TV 광고가 쏟아졌다. 나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취임 후에는  동반성장이라는 말이 쑥 들어갔다.”
 
지난해 4월 청와대 경제원로회의에서 밝혔던 얘기도 들려줬다. 이런 취지였다. “소득주도성장은 최소한의 임금 보장이라는 점에서 인권정책이지 경제정책이 아니다. 청와대가 소득주도성장에 이어 잠깐 주장했던 포용성장도 결국 큰 것이 작은 것을 포용하는 거라서 경제정책일 수 없다. 동반성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존을 통해 함께 성장해 나가자는 개념이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가 만들어낸 불균형을 완화해 함께 멀리 가자는 성장정책이라고 설명해 줬다.”
 
그러면서 “동반성장에서 동반은 사실 위험한 의미로 읽힐 수 있다. 사회주의의 뉘앙스가 읽힌다. 하지만 동반보다는 성장에 방점이 찍혀 있다. 분배와 성장을 동시에 추구한다”고 덧붙였다. 정 전 총리가 보내온 책들의 요점은 한마디로 ‘경제적 불균형이 심화하고 부(富)의 양극화가 확대돼서는 자본주의와 시장경제가 지속하기 어려우니 함께 가자’는 내용이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 그대로다. 요즘 들어 더욱 공감하는 구절 아닌가. 자본주의 세계가 갈수록 양극화의 덫에 빠지게 되면서다. 코로나19는 그 불편한 진실을 적나라하게 까발려줬다. 저성장이 고착화하면서 취약계층의 삶은 벼랑 끝에 섰다. 코로나19 확진자가 1000명을 넘나들면서 영세 자영업자는 재기의 희망조차 희미해졌다.
 
이런 점에서 정 전 총리는 현 정부 들어 쑥 들어간 동반성장의 필요성을 호소하고 싶었던 거다. 책 제목부터 그렇다. 『함께 멀리가자』 『한국사회가 묻고 동반성장이 답하다』 『한반도 르네상스와 동반성장』 『동반성장 원리와 자본주의 정신』 『공동체와 동반성장』 『동반성장과 경제민주화』 『대한민국을 살리는 길 동반성장』 ….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혹자는 동반성장이나 소득주도성장이나 그게 그거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결국은 기업을 규제해 기업인의 창의를 꺾고 무상복지를 늘려 미래 세대의 부담만 늘리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다.
 
하지만 둘 간에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다. 영화 ‘고지전’을 예로 들겠다. 영화 속에서 남북은 고지를 놓고 죽기 살기로 싸웠다. 결과는 공멸에 가까웠다. 수많은 생명이 희생된 뒤 고지를 탈환한들 무슨 의미가 있나. 현 정부의 정책실험이 꼭 이런 경우다. 실업자가 더 늘어나며 빈부 격차가 확대되고 부동산값이 폭등했다. 동반성장을 역설해온 정 전 총리도 안타까워하는 현 정부 정책 참사의 현주소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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