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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권력과 희생자들

중앙일보 2020.12.30 00:27 종합 29면 지면보기
박진석 사회에디터

박진석 사회에디터

“희생자가 권력을 겁내는 것 이상으로 권력이 희생자를 겁내는 건 흔히 있는 일이다.”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적의 희생을 염원하면서도 후과(後果)를 두려워하는 권력의 속성을 이렇게 표현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희생을 거론하면서다. 프랑스 혁명 주도 세력은 구체제 반동 세력의 대표 격인 왕가에 철퇴를 내려야 했지만, 그게 촉발할 수 있는 반혁명 세력의 ‘반동 소요’에는 겁을 냈다. 권력은 앙투아네트가 처형되던 날 이른 새벽부터 파리 시내에 보병과 기병은 물론이고 장전된 대포들까지 총출동시켰다. 츠바이크는 “죽음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한 여자 때문에 무수히 많은 군대가 집결했다”고 꼬집었다.
 
앙투아네트가 해내지 못했던 ‘희생자의 반격’이 지난주 대한민국 법정에서 두 번이나 이뤄졌다. 그중 한 명, 권력의 반대 세력이 희생자로 지목했던 검찰총장은 두 번째 ‘부활’을 마무리하면서 권력에 비수를 꽂았다. ‘권력의 사람들’을 모두 제치고 차기 대선 주자 후보군 중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면서 권력이 우려했던 ‘희생의 역효과’도 제대로 보여줬다.
 
또 다른 한 명, 권력이 희생자로 명명했던 전직 장관의 부인은 처절한 몰락을 통해 권력을 배신했다. 그의 ‘무고함’을 자신들의 도덕성과 동일시하면서 이른바 검찰개혁의 근거로 삼았던 권력은 경악했다. 당황이 지나쳤던지 예수까지 끌어 붙였지만 구원의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두 희생자의 엇갈린 운명 속에서 그 일각이 무너지기 시작한 권력은 책임을 전가할 또 다른 희생자를 찾아냈다. 법원이었다. 권력의 세 치 혀 속에서 법원은 순식간에 ‘법조 카르텔’의 일원이자 ‘쿠데타’ 세력으로 추락했고, 법관은 ‘자의적 판단’을 남발한 ‘일개 판사’로 전락했다. 사법부가 굳이 그들에게 일개 판사의 (양심에 기반을 둔) 자의적 판단이 바로 헌법이 보장하는 법관의 권한이며, 그 자의적 판단이 실체적 진실과 외떨어진 것일 가능성에 대한 우려 때문에 3심제가 운영된다는 사실까지 알려줄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걸 몰라서 하는 말들은 아닐 것이라서다.
 
굳이 목청 높여 맞설 필요도 없다. 그저 철저하게 법률과 양심, 상식에 따른 판결로 답하면 그만이다. 권력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그것일 게다.
 
박진석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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