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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대사관서 고문 당해”…흥분한 방화범 설득한 헬스장 관장

중앙일보 2020.12.29 16:43
28일 오후 충북 청주시 청원구 율량동 한 건물 4층에서 방화 위협을 하던 30대 남성이 대치 12시간만에 경찰 특공대에게 진압되고 있다. 뉴스1

28일 오후 충북 청주시 청원구 율량동 한 건물 4층에서 방화 위협을 하던 30대 남성이 대치 12시간만에 경찰 특공대에게 진압되고 있다. 뉴스1

 
“일면식 없는 사람이 헬스장에 휘발유를 뿌리고 집기를 부쉈습니다.”

청주 헬스장 방화범 12시간 대치 끝에 검거
헬스장 관장 “가해자·경찰 안다쳐 다행”
가해자 "불법 약물로 몸 망가져" 횡설수설

충북 청주 ‘헬스장 방화 사건’ 피해자인 P헬스장 박모(36) 관장은 29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헬스장 운영에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면서도 “가해자뿐 아니라 헬스장 안에 있던 회원, 진압에 나선 경찰관·소방관들이 다치지 않아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전날 충북 청주시 청원구 율량동에서는 A씨(33)가 건물 4층 P헬스장을 점거하다가 경찰과 12시간 대치 끝에 붙잡혔다. A씨가 이 헬스장에 나타난 건 28일 오전 11시15분쯤이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건물 4층에 있는 헬스장에 들어서자마자 휘발유를 뿌리고 망치를 꺼내 유리로 된 현관문을 부쉈다.
 
 박 관장은 “당시 헬스장 안에는 트레이너 1명과 운동을 하는 회원 2명, 상담을 기다리던 주민 2명이 있었다”며 “A씨가 흉기를 든 모습을 본 직원이 곧바로 회원을 대피시키고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A씨에게 접근하려 했지만, 헬스장 내부 곳곳에 인화물질을 뿌리고 흉기를 들고 위협하고 있어 접근이 어려웠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자해할 우려가 있어 쉽사리 접근할 수 없었다. 위기협상팀을 현장에 투입했으나 A씨가 횡설수설하는 바람에 설득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A씨는 현금 5억원을 요구했다가 “러시아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건물을 폭파하러 왔다, 러시아 대사관 직원을 데려와라”는 등 알 수 없는 말을 반복했다.
28일 오후 충북 청주시 청원구 율량동 한 건물 4층에서 흉기?방화 위협을 하던 30대 남성이 대치 12시간만에 경찰 특공대에게 진압된 뒤 경찰서로 옮겨지고 있다. 뉴스1

28일 오후 충북 청주시 청원구 율량동 한 건물 4층에서 흉기?방화 위협을 하던 30대 남성이 대치 12시간만에 경찰 특공대에게 진압된 뒤 경찰서로 옮겨지고 있다. 뉴스1

 
 A씨가 난동을 시작할 당시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있던 박 관장은 이날 낮 12시30분쯤 청주로 내려와 현장을 살폈다. 박씨는 “내가 살아오면서 혹시 A씨를 마주치거나 피해를 준 일이 있나 싶어 경찰에게 A씨와 전화연결을 부탁해 그를 설득했다”며 “A씨가 한 말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A씨는 ‘2014년부터 운동을 시작한 뒤 불법 약물 사용으로 몸이 망가졌다’며 국내 유명 보디빌더를 비난했다”고 말했다. A씨는 자신이 러시아 대사관에 억류돼 고문을 당했다거나 인생의 패배자가 됐다는 등 말을 이어갔다고 한다.
 
 박 관장은 2014년 국내 보디빌딩 대회 랭킹 1위를 할 만큼 인지도가 있었다. 박 관장은 “상심한 마음은 이해하겠지만 그렇다고 보디빌더를 원망해서야 되겠냐는 말로 A씨를 달랬다”며 “나중에 집기류를 건물 밖으로 던지는 모습에 화도 났지만, 가해자와 경찰관이 다치지 않고 소동이 해결되길 바랐다”고 했다.
 
 경찰은 지속해서 대화를 시도했지만, A씨는 욕설을 퍼부으면서 유리 파편을 경찰관을 향해 던지는 등 대화를 거부했다. 그는 12시간 동안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준비해간 부탄가스와 휘발유가 가득한 말통 등을 중계하며 위협 수위를 높였다. 경찰은 대치 12시간 만인 오후 11시20분 경찰특공대와 형사, 소방관을 동시에 현장에 투입했다.
 
 특공대원 2명은 건물 옥상에서 로프를 이용해 4층으로 진입했고, 동시에 형사와 소방관들은 주 출입구를 통해 들어가 A씨를 제압했다. 박 관장은 이번 사건으로 헬스장 장비와 체성분 분석기, 컴퓨터와 사무실 집기 등 3000여만 원의 피해를 봤다. 경찰은 A씨를 현주건조물 방화와 특수공무집행방해, 재물손괴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정확한 범행 동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청주=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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