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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무능한 장관은 대통령의 무덤”

중앙일보 2020.12.29 00:30 종합 29면 지면보기
서경호 경제·산업디렉터

서경호 경제·산업디렉터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제부총리를 겸하게 하는 것은 기재부가 ‘곳간지기’를 넘어 ‘경제정책의 설계자’가 되어 재정정책을 경제활성화, 복지 확대, 양극화 완화 등 복합적 효과를 가지도록 설계하여 집행하라는 의미다.”(이재명 경기도지사)
 

이해 안 가는 홍남기-이재명 공방
장관 역할 못하면 결국 청와대 부담
‘보이는 장관’ 많아야 성공한 정부

“(법구경을 인용해) 두텁기가 큰 바위는 바람이 몰아쳐도 꿈쩍하지 않듯, 진중한 자의 뜻은 사소한 지적에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홍남기 경제부총리)
 
지난주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페이스북 공방을 보면서 ‘왜들 저러시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격 대상이 하필 왜 홍 부총리일까. 이 지사가 좋아하는 기본소득에 대해 홍 부총리가 ‘시기상조’라고 했고 1차 재난지원금 지급 때 선별지급을 주장했다가 정치권에 밀린 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는 재정 규율을 강조했던 나라의 전통적인 곳간지기라고 하긴 힘들다. 치솟는 재정적자를 굳이 거론하지는 않겠다. 이 지사가 홍 부총리를 비판하며 쏟아낸 “국고지기 역할에 경도된 사명감” “수준 낮은 자린고비” 등의 말은 디스인지, 의도하지 않은 칭찬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곧 개각이 있다 해서 문재인 정부의 장관들 면면을 떠올려봤다. 현 정부는 장관을 오래 쓰는 편이다. 이러저러한 논란이 있었던 장관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2년 정도 자리를 지켰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런데도 추미애 등 일부 시끄러운 장관들만 집중적으로 머리에 떠오를 뿐, 얼굴과 자리가 매치되지 않는 장관이 여럿이다. 묵묵히 제 자리에서 깔끔하게 일하는 장관들도 제법 있을 텐데, 몇몇 장관들이 일으키는 가공할 소음 탓에 아예 존재감 없이 묻혀버리고 말았다.
 
서소문포럼

서소문포럼

어떤 장관이 좋은 장관일까. 과거 정부가 어떤 장관을 원했는지 알 수 있는 참고자료가 있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MB) 정부는 『성공적 국정 운영을 위한 장관 직무가이드』(일명 ‘장관 매뉴얼’)를 발간했다.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8년 1월 처음 만들었고, MB정부는 이를 첨삭해 2010년 6월 새 버전을 내놓았다.
 
두 정부의 장관 매뉴얼은 성공하는 장관의 특징으로 ▶전문성 ▶조직 내 소통 ▶적절한 업무 위임 ▶강직함과 청렴성 ▶핵심 문제에 대한 역량 집중을 꼽았다. 장관은 특정 부처의 장이면서도 동시에 국무회의 일원이기 때문에 국정 전반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매뉴얼은 “장관이 국무위원으로서의 위치를 잊고 부처 이익을 대변하는 장관의 역할에만 집중하다 보면 ‘칸막이의 포로’가 될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국정철학이 다른 만큼 두 정부의 장관론에도 차이가 있었다. “대통령과 더불어 국정 운영을 공동으로 수행하는 자리”(노무현 정부)와 “대통령을 보좌하여 국정을 운영하는 자리”(MB정부)와 같이 표현부터 달랐다. “장관은 (중략) 대통령이 지향하는 가치에 동의하고, 그 가치의 적극적 실현을 위하여 대통령과 ‘한 배’를 탄 것”이라는 노무현 정부 때 매뉴얼 표현은 MB정부에서 사라졌다. 그래선지 MB정부에선 ‘정치적 동지’로서 권한을 충분히 위임받았던 책임장관은 보기 힘들어졌다. ‘만기친람(萬機親覽)형’ 최고경영자(CEO) 스타일의 대통령 때문에 장관의 역할이 줄어들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장관 매뉴얼을 새로 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현 정부에서 장관 매뉴얼을 냈다면 어떤 내용이 들어갔을까. 정치인 출신의 ‘어공’과 직업관료인 ‘늘공’은 태생적으로 다르다, 늘공을 확실히 장악해야 시장친화적인 관료로부터 정권이 포획 당하지 않는다, 뭐 이런 노무현 정권의 ‘반면교사’가 담겨 있지 않았을까. 김현미 국토부 장관 등 정치인 출신 장관의 자신만만한 태도와 홍남기 부총리 등 관료 출신 장관의 모습이 대비될 수밖에 없다.
 
‘청와대 정부’라는 비판을 들을 정도로 장관의 역할이 축소되면 결국 청와대와 대통령의 부담이 커진다. 갈등관리와 같이 골치 아픈 일들이 모조리 청와대 책임이 되고, 정책 실패의 부담도 온전히 대통령에게 향한다. 부동산 정책의 실패는 대통령 지지율을 끌어내렸다.
 
“장관은 국민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국민은 누가 어느 장관인지조차 모르게 된다.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이 모든 일을 챙겨야 하고 일이 잘못되면 대통령 혼자 온갖 비난을 듣게 된다. 무능한 장관은 대통령의 무덤이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후불제 민주주의』에서 한 말인데, 그의 정치적 동지들은 귀담아듣지 않는다. 장관 바꾸는 거로는 부족하다. ‘보이는 장관’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서경호 경제·산업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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