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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현의 미래를 묻다] 자율주행차와 지구온난화…‘길’의 주인을 바꾼다

중앙일보 2020.12.28 00:26 종합 28면 지면보기

도시 공간의 변화

윤승현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

윤승현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

도시의 공간은 시대의 조류와 체제가 구조화된 장소다.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피터르 브뤼헐이 그린 당시 광장 풍경은 떠들썩했다. 엄숙한 종교행사가 치러지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뛰놀고, 흥정이 벌어지고, 술 마시고 난장을 부리기도 한다. ‘인간 중심’을 내세웠던 르네상스 시대 도시 공간의 모습이다. 그보다 앞서 신권과 왕권을 내세웠던 중세시대 광경은 사뭇 달랐다.  
 

근대의 길은 자유·공동체의 영역
자동차 등장으로 공공 의미 퇴색
공유·자율차 기술 눈부신 발달이
도시 공간을 인간에 되돌려 줄 것

광장은 신의 가르침과 왕의 훈령을 전달하는, 꽤 엄숙한 장소였다. 시장과 상인들이 들어서긴 했으나 엄격한 통제를 받았다. 그랬던 광장은 르네상스 시대를 맞아 시민의 품에 안기게 됐다.
 
광장이 아니라 길은 어땠을까. 18세기 이탈리아의 건축가 지암바티스타 놀리(Giambattista Nolli)는 ‘놀리 맵’이라는 유명한 지도를 그렸다. 그는 로마를 흰색과 검정, 단 두 색깔로 표시했다. 흰색은 누구나 갈 수 있는 공공의 장소요, 검은색은 사유지처럼 공공의 사용을 차단한 공간이었다. 이 지도를 통해 놀리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도시의 공공성이었다. 전체에 걸쳐 흰 부분이 끊김 없이 연결된 도시라면 시민 누구든 막힘 없이 도시의 공간을 자유롭게 누빌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도시가 공공성을 띤다는 의미였다.
  
자동차에 뺏긴 길, 자율차로 되찾을까
 
자율 차와 대중교통의 발달은 자동차가 지배하던 도로를 인간 친화적 공간으로 바꾼다. 미래의 간선도로 구상. [사진 인터커드]

자율 차와 대중교통의 발달은 자동차가 지배하던 도로를 인간 친화적 공간으로 바꾼다. 미래의 간선도로 구상. [사진 인터커드]

놀리는 그렇게 ‘길’을 시민 활동의 기반이 되는 편의와 자유·공동체의 영역으로 바라봤다. 여기에 변화를 던진 건 자동차의 탄생이다. 자동차는 속도와 효율을 담보하고, 이용자의 품위까지 드러낼 수 있는 환상적인 존재였다. 그로 인해 인간의 생활 기반이자 자유로운 보행의 공간이었던 도시의 길은 자동차에 주도권을 완벽히 내어주게 됐다. 길은 여전히 시민의 공간이었으나 정작 길을 점령한 것은 인간이 아니라 자동차였다. 마이카 시대가 되면서 자동차는 간선도로뿐 아니라 어릴 때 뛰놀던 골목길마저 점령해 버렸다.
 
시간이 더 흘렀다. 모든 것이 바뀌었다. 드디어 도로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다시 요구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전환의 한 축은 역설적이게도 사람에게서 도로를 빼앗아 갔던 자동차 기술의 발전이다. 또 다른 한 축은 지구온난화다.
 
‘전격 Z작전’의 인공지능 자동차 ‘키트’.

‘전격 Z작전’의 인공지능 자동차 ‘키트’.

1980년대 초반 인공지능 자동차 ‘키트’가 나오는 미드(미국 드라마) ‘전격 Z작전’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스스로 운전하고 판단할 줄 아는 키트는 한마디로 만능이었다. 그 덕에 주인공 마이클 나이트는 천하무적이었다. 40년 전 상상 속의 자동차는 이제 현실이 되고 있다. 자율주행차가 일상화될 날이 머지않았다. 요청하면 언제든 ‘온디맨드카(On-Demanded Car)’라는 자율차가 달려와 원하는 목적지까지 알아서 데려다줄 것이다. 자동차는 소유에서 공유로 바뀌고, 늘 모자랐던 주차장은 불필요한 군더더기 공간이 된다.
 
온난화에 대한 대응은 대중교통과 자전거·킥보드 같은 개인이동수단(퍼스널 모빌리티·personal mobility)의 확산으로 나타나고 있다. 선진 도시가 하나같이 나아가는 방향이다. 서울은 도심 주요 도로에서의 제한 속도를 시속 60㎞에서 50㎞로 낮췄다. 조만간 뉴욕처럼 시속 40㎞가 되리란 예상도 나온다. 자전거·킥보드 전용도로 또한 계속 넓히기로 했다.
 
제한속도를 낮추고, 자전거·킥보드 전용도로를 확장한 결과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승용차의 감소다. 곧 다가올 미래의 시민들은 집에서 승용차를 끌고 나가는 대신 온디맨드카나 자전거·킥보드를 타고 간선도로로 나가 버스나 지하철, 혹은 에어 택시를 타고 움직인다. 자동차가 달리던 간선도로엔 잉여 영역이 생겨 쾌적한 보행의 공간으로 재조성될 것이다.
  
‘속도와 경쟁’에서 ‘공유와 자율’로
 
피터르 브뤼헐의 ‘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 16세기 중반 농민들의 삶을 그린 작품. 당시 떠들썩한 광장의 풍경을 잘 드러내고 있다.

피터르 브뤼헐의 ‘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 16세기 중반 농민들의 삶을 그린 작품. 당시 떠들썩한 광장의 풍경을 잘 드러내고 있다.

자동차가 확 줄어든 골목길은 동네의 모습과 삶을 바꾸는 원동력이다. 사람들에게 돌아온 길에 자라난 정자나무 밑에서 오순도순 대화가 오가기를 그리는 것은 지나친 바람일까. 최소한 분명한 사실은 집 앞의 길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공간으로 거듭난다는 점이다.
 
아파트 주차장과 다가구·다세대 주택 1층 필로티 주차장의 유휴 부분은 복지·문화·창업 등 생활밀착형 공공 공간으로 변모한다. 유아·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아우르는 돌봄센터는 맞벌이 부부의 부담을 덜어주고 어르신들의 고독사·돌연사를 방지할 것이다. 나아가 가족 같은 지역 공동체를 구현할 수도 있다.
 
또 누가 알랴. 빌 게이츠가 차고에서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했듯, 필로티 주차장에 꾸린 창업센터에서 굴지의 글로벌 기업이 나오지 말란 법은 없다. 사람에게 돌아온 길은 이렇게 다가구·다세대 주택이 들어선 마을을 한층 쾌적하고 안전하게 바꿔놓는다. 혹시 이로 인해 집값 잡기가 조금이나마 수월해지지는 않을지 은근히 기대해 본다. 아파트에만 몰리는 수요를 조금은 분산시킬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18세기 건축가 지암바티스타 놀리가 그린 로마 지도. 흰색은 공공 장소, 검은색은 비공공장소를 나타낸다. [사진 인터커드]

18세기 건축가 지암바티스타 놀리가 그린 로마 지도. 흰색은 공공 장소, 검은색은 비공공장소를 나타낸다. [사진 인터커드]

르네상스가 광장과 길을 신과 왕에게서 빼앗아 인간에게 되돌렸듯, 자율차 기술과 지구온난화는 자동차에 빼앗겼던 길을 인간에게 되찾아 주려 하고 있다. 이 또한 ‘사람 중심 사회’로 가는 길 아닐까. 우리는 한국전쟁의 참화를 딛고 경제적 융성을 이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해 개인의 희생쯤은 불사했다. 도로를 앗아간 자동차는 이런 시기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속도와 경쟁의 상징인 자동차는 이제 공유와 자율로 거듭나려 한다. 공유와 자율은 인간관계에서도 바라는 바다. 미래의 시대정신인 건강한 생태환경과 건전한 인간관계가 넘실대는 ‘공유 사회’의 꿈이다. 삐죽이 솟은 아파트는 좁은 공간에 모여 사는 세상을 만들었을 뿐, 함께 하는 세상은 만들지 못했다. 다닥다닥 붙어사는 데도 자살률은 세계 최고요, 고독사는 다반사이며, 지역 공동체는 점점 메말라 간다. 이젠 함께 사는 건강한 도시 환경을 꾸밀 때다. 건강한 도시 환경을 건설하는 가장 거대한 자원은 도시의 길이다.
 
과학기술의 혁명 덕에 도시의 길을 다시 살리고 활용할 길이 트였다. 그러나 도시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도시 속에서 함께 사는 마을을 만드는 일은 20년, 30년이 걸릴 것이다. 그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지금부터 함께 노력하고 실천할 때다.
 
‘규모의 가치’에서 ‘지역의 가치’에 눈뜨는 MZ세대
지난해 말 중국에서 촉발된 코로나19 사태는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전 세계가 바짝 얼어붙을 정도로 위세를 떨치고 있다. 일상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렸고, 세기를 넘어 기억될 정도로 힘겨운 시련을 다 함께 겪고 있다. 바이러스가 사람들 간의 접촉을 통해 전염되기에 어떻게든 접촉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절절하다. 이름하여 ‘언택트(untact)’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디지털 기술 덕분에 이미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은 일상이 됐다. 화상회의 시스템을 개발한 회사들은 일대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되짚어 볼 것이 있다. 우리의 사회적 시스템과 도시 구조에 대한 반성이다. 자본 중심 사회 속에서 대형화·복합화는 도시의 집중도와 밀도를 한껏 높여 놓았다. 세계 최대의 백화점과 100층 높이의 거대 건축물은 익명의 다중이 과밀 접촉하도록 촉발했다. ‘큰 것이 미덕’이었던 결과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있다. 꼭 코로나19로 인한 언택트 때문만은 아니다. 과거가 거대한 정의 구현 또는 야망을 꿈꿨던 거인의 시대였다면, 요즘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아우르는 말)는 건강하고 행복한 현재를 꿈꾸는 세대가 아닌가 싶다. 복합쇼핑몰에 모인 레스토랑보다 동네의 특색 있는 카페와 식당이 오히려 젊은이들에게 환영받는 분위기다. 한때 가족 나들이 공간 역할을 했던 대형마트가 붕괴하는 상황을 온라인 쇼핑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한순간 득세했다가 지나갈 유행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범상치 않은 현상이다. 규모를 존중하던 시대에서 지역의 가치를 품은 사람과 장소를 존중하는 사회로 바뀌어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역의 가치’를 원하는 젊은 세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바로 마을의 길, 동네의 공공 공간이다. 생각해 보라.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길 없이 어떻게 특색과 가치를 품은 동네 카페와 식당이 들어설 수 있을까. 우리는 동네의 길을 되찾아 줄 자율차, 퍼스널 모빌리티 기술과 더불어 젊은이들로부터의 수요까지 확보했다. 길을 사람 중심으로 되돌려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코로나19가 끝나고도 언택트는 계속될 것이라지만, 동네만큼은 사람들의 관계가 풍성히 펼쳐지는 ‘온택트(On-Tact)’의 보고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윤승현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이자 건축사사무소 인터커드 대표.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북촌 마을안내소 홍현, 영주 조제 보건진료소 등의 작업에 참여했다. 한국건축문화대상, 서울시건축상 등 수상.

 
윤승현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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