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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혁신학교가 빛바랜 이유

중앙일보 2020.12.28 00:19 종합 30면 지면보기
천인성 사회기획팀장

천인성 사회기획팀장

2013년 3월 서울시교육청에서 있었던 일이다. 선거부정으로 중도에 하차한 곽노현 전 교육감에 이어 ‘보수 단일 후보’로 출마·당선된 문용린 전 교육감 시절 얘기다. 예정에 없던 교육청의 설명 자료가 기자실에 배포됐다. ‘혁신학교를 선호하는 학부모가 몰려 주변 집값이 오른다’는 부동산 전문지의 기사를 반박하는 내용이었다.
 
교육청은 기사가 사례로 든 아파트들의 시세를 하나하나 따져가며 “집값 상승은 혁신학교 때문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건축 연도, 평형, 교통 요건에 따른 차이이지 학교의 인기와는 무관하다는 설명이었는데, 살펴보던 기자들 사이에서 수차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자료 곳곳에서 혁신학교를 비판해온 보수 교육감의 ‘초조함’, 부랴부랴 학교 주변 부동산을 뛰어다녔을 장학사들의 ‘절박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자에겐 ‘진보교육의 최대 히트상품’이라는 혁신학교의 인기와 관심을 방증하는 일화로 남아있다.
 
노트북을 열며

노트북을 열며

요새 혁신학교는 딴판이다. 적어도 서울에선 천덕꾸러기나 다름없다. 2018년 12월 이후 주민 반대로 혁신학교 지정이 좌초된 사례가 10여 건에 이른다. 최근 서초구 경원중학교엔 교장 실명과 함께 “너를 죽어서도 잊지 않겠다”고 적은 현수막도 등장했다. 기자는 물리력 행사, 언어폭력에 모두 반대한다. ‘혁신학교 지정→학력 저하→집값 하락’이란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혁신학교의 인기가 줄고, 반감은 커졌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체험·토론·참여 위주 수업으로 주목받던 혁신학교가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됐을까. 진보 교육 인사들은 ‘줄 세우기 대입과 학력주의’ ‘일부의 집값 욕심’ ‘정부의 정시 확대’ ‘이념 공세’ 등을 탓한다. 글쎄, 기자 생각엔 ‘최대의 적’은 ‘내부’에 있지 않나 싶다. 양적 확대에만 매달린 진보 교육감들 말이다. “2022년까지 250개로 늘리겠다”(조희연 교육감)는 식의 접근이 문제란 얘기다.
 
10년 전 혁신학교 도입에 관여했던 A교장은 기자에게 “초기 성공 학교엔 ‘아이들을 위한 살아있는 수업’을 위해 목숨이라도 내놓을 듯 노력하는 교사가 많았다”고 했다. “수업 개선에 의욕 높은 교사들이 모여야” 학교가 변하는데, “붕어빵 찍듯 학교만 늘리니 교사의 열정도, 변화 노력도 그저 그런 학교가 늘었다”는 걱정했다.
 
요컨대 ‘품질 관리’를 외면하고 ‘판매 실적’에만 매달려 창의 교육, 학생·학부모의 감동이란 ‘상품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는 거다. 크고 작은 논란을 빚긴 했지만, 도입 초기 혁신학교엔 분명 학생, 학부모, 교사를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 초심을 회복 못 한다면, 혁신학교를 ‘혁신’해야 할 때가 온다는 걸 교육감들이 깨닫기 바란다.
 
천인성 사회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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